소설 속 그 요리 (3)-‘바늘 없는 시계’와 코카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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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안나 카레니나(레프 톨스토이) 문장이다. 소설의 문장으로 가장 훌륭하다고 꼽히는 가운데 하나다. 그만큼 유명세를 타지는 않지만, 비슷하게 울림을 주는 첫문장이 있다. ‘죽음이란 언제나 죽음일 뿐이다. 그런데도 인간은 저마다 자기 특유의 방식으로 죽는다(Death is always the same, but each man dies in his own way).’ 인간, 아니 살아 있는 모든 것의 가장 불행이 어쩌면 죽음이라는 감안하면 의미도 비슷하게 다가온다. 미국의 소설가 카슨 매컬러스의 1961 , <바늘 없는 시계> 이렇게 막을 연다.

그렇게 죽음은, 소설의 막을 올리고는 이야기 내내 서려 있다. 끈적하기가 시공간적 배경인 1950년대 미국 남부 같다. 약사인 J.T. 말론은 갑작스런 무기력증에 시달린다. 중이 머리 깎으려는 격으로 강장제를 처방하지만, 증세는 쉽사리 나아지지 않고 체중도 줄어들기 시작한다. 그제서야 병원을 찾은 그는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길어봐야 15개월, 원인은 백혈병. 여름은 무덥고, 삶은 시들어 간다. 한편 위로 사회적 문제가 슬금슬금 고개를 들이민다. 가시지 않은 인종차별, 흑인 인권 문제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인 미국 최남부 지방(deep south) 문제의 근원이었다. 노예 해방 이후에도 오랫동안, 흑인과 백인은 따로 화장실을 썼으며 전자는 후자의 가정부 노릇에 힘겨웠다.

이런 시공간적 배경 덕택에 소설 식탁은 풍요롭다. 착취가 수놓인, 역설적인 풍성함이다. 2011 개봉작 <헬프(The Help)> 그려낸, 프라이드 치킨과 비스킷, 초콜릿 파이의 식탁이다. 하지만 온갖 음식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존재는 따로 있다. 공장 대량 생산품인 코카콜라다. 일단 섭씨 40 가까이 올라가는 무덥고 눅눅한 날씨 속에서( 동네에서 가까이 살아서 안다) 청량감을 안겨주는 존재로, 등장인물들이 종종 마신다. 음식 본연의 기능에 충실한 동시에 소설 분위기 전환의 도구로도 쓰이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죽어가는 주인공의 소외감을 가중시키는 장치 역할도 한다. 아내가 코카콜라 주식이 그녀의 독립과 번창을 상징하는 한편, 나날이 시들어가는 주인공의 운명에 비루함을 끼얹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코카콜라는 <바늘 없는 시계> 달라붙는다.

이러한 설정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 날씨 이전에 코카콜라의 고향이 근방이기 때문이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인 밀란(milan)에서 220km 떨어진, 같은 조지아 주의 소도시 콜럼버스(Columbus). 남북전쟁 참전자였던 팸버튼은 부상의 고통을 덜어주는 모르핀 대체품으로 쓰고자, 코카 이파리가 주원료인 음료를 개발했다. 말하자면 코카콜라의 시작은 약용이었던 . 1886 동남부의 대표 도시 애틀랜타에서 판매를 시작해, 드럭스토어(drugstore)에서 팔려 나갔다. 약국(pharmacy) 기능을 중심으로 음료수, 생필품 등을 파는 일종의 슈퍼마켓으로, <바늘없는 시계> 시절에는 동네 사랑방 역할까지 맡던 공간이다.

코카콜라 최초의 형식은 현재 패스트푸드점에서 마실 있는 것과 흡사했다. 시럽을 당시 건강에 좋다고 여기던 탄산수에 희석시킨 . 1800년대 이미 병입 판매를 시작했으나, 코카콜라의 상징인 잘록한 유리병의 디자인은 1915년에 처음 선보였다. 알려진 것처럼 특유의 맛을 내는 향료의 배합은 은행 금고에 90년째 보관하는 기업의 비밀이다. 따라서 신경 필요 없지만, 탄산음료의 다른 핵심인 단맛이 지역마다 다르다는 점은 알아둘만하다. 미국의 경우 특유의 쏘는 맛이 강한 고과당 콘시럽을 감미료로 , 탄산음료라는 감안해도 독하다. 그래서 맛을 안다고 자부하는 이들은사탕수수 설탕 쓴다는 멕시코산을 수입해 마시는 경향이 있는데, 그게 사실 백설탕으로 맛을 코카콜라며 우리나라에서 판매되는 것과 같다. 따라서 건강이야 모르겠지만, 적어도 걱정만큼은 필요 없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