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 스푼’ 출간 기념회

2017-11-25 15.25.52

저자로서의 나와 역자로서의 나는 다른 기능과 역할을 해야한다고 믿고, 사실 그 의식적인 구분 자체를 즐기므로 출간 기념 행사가 열리며 참석은 물론 간단한 ‘말’을 하는 상황에 한 단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한식의 품격’과 더불어 지난 2-3년 간의 초대형 프로젝트였던 ‘실버 스푼’이니 이런 자리가 적나라하게 감개무량한 건 사실이지만 책이 제자리를 찾는 것은 물론, 사랑받는 걸 이왕이면 한두 발짝 물러나서 보고 싶었다고 할까.


게다가 솔직히 말하자면 그 두 권의 책을 작업하는 기간의 기억이 별로 남아있지 않아서 때로는 어리둥절하다. 이 책을 내가 작업했던가? 실제로 2014~2016년의 기억은 굉장히 흐릿해서 가만히 앉아 떠올려 봐도 별게 올라오지 않는다.

그러다가 책을 펼치면 그제서야 좀 생각나기 시작한다. 주로 당시 들었던 피아노 소나타와 그 선율이나 리듬에 맞춰 타자치는 소리가 기억난다. 대부분의 기간 동안 나는 저 먼 옛날에 수십수백점의 상세도면을 급박한 마감에 맞춰 그리는 멘탈로 접근했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밀어 붙인다. 한 페이지를 끝낼 때마다 쪽을 나타내는 숫자에 엑스표를 친다. 많은 소나타를 듣고 또 듣고, 엑스표를 치고 또 쳤다.

마침 번역 기간 동안 떠오른 기억이 있어서 그걸 간단하게 준비했다. 이왕이면 자리에 맞게 준비하고 싶어서, 우연히 며칠 전에 산 만년필로 행사날 아침에 찬찬히 썼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존중이랄까. 책은 물론, 행사를 비롯해 ‘말’에 등장하는 기억까지 전부.

1 Response

  1. ㅁㅁ says:

    오 어떻게 생각되실지 모르겠으나 다른 어떤 포스트보다도 저 원고에서 선생님의 먹고 마시고 이를 비평하는 일에 대한 애정이 잘 느껴지는 것 같아요. 좋은 하루 보내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