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의 상식

IMG_0793상식이란 무엇인가. 얼핏 간단할 것 같은 개념이지만 의외로 그럴듯한 답이 금세 떠오르지 않는다. 이유가 뭘까. 개인이 인식 또는 규정하는 개념의 범위가 너무 다르기 때문은 아닐까? 트위터를 돌아다니다가 흔히 보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프로필에 ‘상식이 통하는 사회’ 같은 문구를 써놓은 이들이다. 얼마 전에는 그와 더불어 대화명이 ‘부역자 능지처참!’인 사람을 목격했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에서 과연 부역자라고 능지처참이 가능할까. 극단적인 예겠지만 각자가 상식이라고 여기는 개념의 간극이 때로 너무 커 보일 때가 있다.

범위를 좁혀 음식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음식의 세계에는 상식이 존재하는가? 음식을 위한 상식이 필요하고 또 존재한다면 과연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할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고서야 사전을 찾아본다.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지식’을 상식이라 일컫는다고 한다. 현재 (한국의) 음식에 그러한 지식이 존재할까? 만약 이를 음식을 향한 일종의 동의나 합의(consensus)라고 간주할 수 있다면, 과연 현재 한국 사회에서 통하는 동의나 합의가 먹는 이에게 실제로 도움을 주고는 있을까?

이에 대해서 한참 동안 생각하다가 어제 우연히 동네에서 빵집을 발견했다. 문을 연지 얼마된 것 같지 않아 보였는데 ‘식빵 전문’을 표방했다. 마침 빵이 떨어지기도 했고 귀찮아서 통 굽지 않고 있었으므로 나름 반가운 마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블루베리부터 찰떡(?)을 채운 너덧 종류의 식빵-내가 사지 않을-과 더불어 아무 것도 넣지 않은 우유식빵이 한 가지 있었다. 가격은 400g에 4,500원(집에 가져와서 저울로 달아보았다). 계산대 뒤로 열려 있지만 그탓에 정리가 전혀 안 된 주방을 적나라하게 들여다보며 계산을 하다가 명함의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유기농 밀가루 100% 사용 / 비정제 코코넛 슈가 사용.’ 마침 왼쪽으로 태국어라 추정되는 글자가 쓰인 설탕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IMG_0795 2유기농 밀가루와 비정제 코코넛 설탕의 만남. 그리고 400g에 4,500원.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나빴다. 먹을 수가 없었으니까. 사면서 예상은 했지만 식빵은 덜 익어 있었다. 대체로 겉을 보면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이렇게 색깔이 나지 않았다면 속이 덜 익는 건 피할 수가 없다. 질척함과 축축함이 남아 있다.  더불어 밀도도 낮아 빵보다는 솜뭉치 같은 느낌이었다. 조직에 공기가 들어가야 빵이 된다는 정체성을 악용한 솜뭉치. 토스터에 구워도 종잇장 씹는 느낌만 난다. 그럭저럭 토스터에 구워 아침 겸 맛은 보았지만 나머지는 버렸다. 굳이 가벼워야만 부드러울 수 있는 게 아닌게 둘을 구분할 줄 모르는 빵이었다.

의식적으로 목적지를 특정해 찾아가지 않으면 식종 불문하고 같은 특징을 지닌 음식을 만나므로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거의 대다수가 이렇기 때문에, 이런 음식의 원동력으로 작용하는 것이 한국 음식의 상식이며 그건 결국 다수가 맞다고 믿고 있지만 틀린 게 아닐까. 그렇다면 과연 ‘같은 특징’이란 무엇인가. 무지를 물씬 풍기는 음식이다. 생산자도 모르고 소비자도 모른다. 원리도 모르고 맛도 모른다. 재료 여건도 모르고 자신의 기대도 모른다. 그래서 음식을 궁극적으로 완성시키는 요인을 모르고, 자신이 지불할 수 있는 가격대에서 기대할 수 있는 핵심 조건을 모른다.

다시 빵으로 돌아와 살펴보자. 난 유기농 밀가루를 내세우는 것까지는, 설사 맛과 직결되지 않더라도 일정 수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비정제 코코넛 설탕은 너무 말이 안된다. 어째 대한민국의 개국 시점부터 떠들어 온 것 같지만 일단 설탕만 놓고 생각해도 비정제의 매력이랄게 없으며, 또한 빵을 놓고 본다면 어차피 단맛 위주의 빵이 아니라 소량의 설탕만 쓸 것이므로 더더욱 의미가 없어진다.

그렇지만 생산자는 마치 이 두 요소가 자신의 빵에 결정적인 역할을 미치는 양 내세운다. 빵이 무엇이며 자신이 어떤 과정을 거쳐 완성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소비자라고 다르지 않다. 유기농 밀가루나 비정제 설탕에 이끌리던 소비자가 그대로 생산자의 길을 걷는다. 한국에서 존재하는 모든 음식이 이런 현상에 자유롭지 않다. 음식이란 무엇이며 맛은 어떻게 만들어 내는가? 사회의 발전을 감안한다면 정말 사소하고 쉬운 질문일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통하는 음식의 상식에는 맛이 빠져 있다. 진짜로 모른다면 따져볼 것도 없이 문제다. 한편 음식과 의미는 그렇게 재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에 알고 싶어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이는 음식의 의미에 가치를 더 부여하려다가 결국은 깎아 먹게 되므로 그냥 모르는 것보다 더 나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둘의 경계선에서 내부거래하듯 한쪽을 다른 한쪽으로 정당화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최악이다.

IMG_0798동네에 유난히 오래 못 버티는 가게 자리가 하나 있다. 주로 음식점 자리였는데 역사가 다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바뀌었다. 잠깐 속옷 떨이 가게였다가 아예 닫았는데, 그 전에는 개업 준비 중에 짬뽕 가게로 바뀌어서 장사를 하다가 마지막으로는 쌀국수를 팔았던 것 같다. 3,900원이지만 좋은 재료와 좋은 음식을 팔겠다는 의지. 당연히 말도 되고 나는 믿지 않는다. 그러나 저것이 실제로 가능하다거나, 그 수준을 넘어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에서 통하는 음식의 상식이다. 다수가 그렇게 생각하니까 맞다고 여기기엔 너무 비합리적이다.

 

2 Responses

  1. Jediwoon says:

    어느순간 음식은 입으로 먹는게 아니라 이미지로 먹는게 된것 같습니다.
    적당한 비주얼과 적당한 수식어들….
    다수가 그걸 따르니 그게 상식처럼 통용되는거겠죠.
    빵은 이런 음식이다라는게 아니라 빵은 이렇게 생기고 이런걸로 만들어야 한다는….

  2. 안준표 says:

    식탐이 있어야 좋은 식당을 할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음식에 대한 이해나 애정없이 좋은 식당을 하기는 어려운 일이겠지요. 빵집이라고 다르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