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에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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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녕 내가 에머이에 대한 글을 쓰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아마도 의미가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었으리라. 첫 매장이라고 알고 있는 종각점에서, 나는 대접을 받아들자마자 당황했다. 이게 뭐지. 한식의 그것처럼 뜨거운 국물에 소위 ‘생면’이 담겨 있는데 이미 면발의 질감적 정체성을 잃은 상태였다. 그리고 국물에는 켜가 하나도 없었다.

이후에 그 매장이 일종의 ‘플래그십(?)’ 같은 존재며 프랜차이즈화가 예정되어 있고 그 주체가 어느 누구도 아닌 봉추찜닭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도 모르게 ‘헐 대박(영어라면 ‘Holy S@#t!’이었을 듯)’을 내뱉었다. 맛이 없는 게 문제가 아니고 그 방식이 굉장히 교묘하다고 느꼈다. 뜨거우면 다 좋다고 여기거나, 아니더라도 맛을 인식하기가 어렵고, ‘생면’이라니 뭔가 대단한 것 같지만 쌀 바탕 면이 밀가루처럼 늘려 뽑아 만드는 것도 아님을 감안하면 크게 의미가 없다. 한마디로 그럴싸한 모조품 같은 걸 만들고 다른 쪽으로 정신 팔리게 만드는 전략이 참으로 노련해 보였다.

맛이 없는 건 문제지만 단지 맛만 없다면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나는 에머이가 일궈내는 맛없음의 방법론에 큰 거부감을 느낀다. 현지의 조리 인력을 데려다가 기본조리를 맡긴다. 그들의 손에서 적절히 튀겨지고 국물은 뜨겁다. 얼핏 맛있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가만히 뜯어보면 이들의 공헌은 음식의 정체성을 일정 수준 이상 재현하는데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단지 식종을 불문한 음식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완성도를 눈가리고 아웅하듯 적당히 구현해서 내놓는데 쓰일 뿐이다. 한마디로 나는 이런 음식에 (한국의 ‘이모-찬모’의 밥집 음식과는 또 다른 결의) 착취와 더불어 속임수가 배어 있다고 본다. 달리 말해 ‘머리’가 아닌 ‘손’만 빌어다 만드는 음식이다.

좀 더 나아가 이런 음식의 정체성이 궁극적으로는 조미료라는 점을 감안하면 덤으로 허무함까지 얻는다. 엄청나게 고급이어야 할 필요도 없고, 한국의 식당 음식이 조미료를 안 쓰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런 음식에서는 지워진 채로 식탁에 오른다. 요즘은 동네 골목길에도 3,900원 쌀국수 같은 것들이 등장했는데, 그런 수준이라면 굳이 고민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2 Responses

  1. sneaker says:

    근 2년간 가본 집 중 고수바이하수와 함께 가장 마음에 안들었던 집이었습니다. 많은 핫한 집들이 맛보다는 인스타 사진을 요리해서 내놓더군요.

  2. Sonofman says:

    맛집은 사진 찍기 좋은 조명과 소품에 의해 결정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