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호프 미팅의 아무말 메뉴 대잔치
1995년이었다. 공동주택의 설계에 도가 사상을 언급하는 이가 스튜디오를 맡았다. 서대문 교도소를 부지로 삼아 유관순 추모시설 같은 것의 디자인이 그 학기의 과제였는데, 늘 수업의 패턴은 같았다. 넓고 황량한 설계실의 한가운데에 너덜너덜해진 제도대를 하나 놓는다. 학생들이 차례대로 나와 그 주의 진척 상황을 구현한 모형 등을 그 위에 올려 놓고 옆에 서 발표한다. “형상화”라는 개념이 반드시 등장한다. “이 00(건물의 요소)는 xx(주제 또는 그 일부인 사건)을 형상화한 것으로…”
학생의 발표가 끝나면 겸임 교수가 말한다. “자, 공격해 봐.” 그는 그렇게 한 학기 내내 수업을 진행했다. 기억하기로 학생 개별 작업에 대한 비평은 거의 없다시피했다. 다른 학생들이 쭈볏쭈볏 한 마디씩 하고 난 뒤 그걸 정리해서 한두 마디 하는 정도에 그쳤다. 물론 할 말은 언제나 많았다. 그 ‘형상화’라는 건 언제나 누구에게나 구멍 투성이었다. 주제와 개념에서 형태를 뽑아내면 기능을 욱여 넣어야 한다거나, 대체로 몇 단계의 비약 정도는 우습게 거칠 정도로 일관성이 없었다.
하지만 1995년이었고 그들은 고작 스무살에 2학년이었다. 게다가 끝까지 설계를 진로로 삼은 학생도 소수였을 것이다. “공격해 봐”의 주 목적은 결국 “포기하라”였다. 이건 어렵고 고귀한 세계니까 너희 같은 애들이 할 일은 아니라고. 학기 말의 학점이 한 글자로 압축해 메시지를 완결했다.
1995년에 대학교 2학년이었다면 그럭저럭 넘길 수 있는 수준의 사고를 2017년에 국가의 최고 통치자가 주최하는 만찬의 미담처럼 접한다. 웃기지도 않고 심지어 슬프다. 건축은 건축이고 음식은 음식 아니냐, 그렇게 반문할 이들도 계실텐데 다를 게 없다. 원하는 게 있다. 심리든 생각이든, 표현하고 싶은 ‘거리’가 있다. 그게 한마디로 ‘개념’이다. 이를 건축은 형태와 공간으로, 음식은 맛이나 질감, 냄새 등등으로 구현한다. 물론 그게 끝도 아니다. 음악은 음표와 박자로, 미술은 구도와 색체 등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 여기에도 동의를 못한다면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으니 넘어가자.
음식을 통해 메시지를 던지고 싶다면 일단 맛에서 출발해야 한다. 예를 들어 보자. 고생 끝에 낙이 오는 상황 같은 걸 연출하고 싶다면 한국인이 그렇게 사랑해 마지 않는 매운맛이 두드러지는 음식을 낸 뒤 지용성 물질을 씻어주는 유제품을 바탕으로 한 단맛의 디저트 등으로 마무리할 수 있다. 이는 재료나 그에 딸린 소위 ‘스토리’의 선택에 선행해야만 하는 과정인데, 주말에 벌어졌다는 ‘호프 미팅’에서 그런 것을 고려했다는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맛이 아닌, 그저 재료의 가공 과정이나 형상에 아주 느슨하게 기대어 벌이는 ‘아무말 대잔치’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식의 접근이 이전 정권에서 선호했다는 오방색의 논리 등과 딱히 다를 게 있나? 전혀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다.
위계 질서를 다시 한 번 강조하자. 맛이 최종 목표고 재료는 구현의 수단이다. 이 위계 질서를 이용해 맛으로 이야기를 자아내는 건 셰프의 일이고, 그런 능력을 가진 실무자가 한국에 단 1명도 없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선택된 이는 하필 60대의 ‘방랑식객’이다. 그의 음식 세계에서는 앞에서 언급한 위계질서가 정확하게 뒤집혀서 존재한다. 재료를 찾아서 스토리를 짜내고 그걸 바탕으로 음식을 만든다. 이를테면 ‘벼랑 쪽으로 난 소나무 가지의 기운이 더 좋다’는 식의 논리다.
유사 자연이 식탁을 지배하는 이러한 논리가 과연 한편으로는 한없이 이성적이어야 할 국가 통치자의 만찬에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있다니 실망스럽기 그지 없다. ‘적폐 청산’을 기치로 내세웠던 후보가 결국은 주술적인 논리이자 적폐로 구축한 메뉴를 만찬 식탁에 올리는 이 현실, 정말 웃기지도 않다. 음식을 향한 시각이 이런 수준이라면 가문 날씨에 굿하자는 이야기가 나오더라도 이상할 게 전혀 없다.
가시적인 세계만을 보는 사람하고
음성의 세계를 느끼고 보는 사람하고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글이군요.
방랑식객의 수준은 글쓴이가
판단할 수준을 훨씬 넘어섰습니다.
글쓴이의 수준이 걸음마단계라면
방랑식객은 진즉부터 날아다니는
수준이라는 사실만 잊지마시길…
수준 운운하는 거 보고 큰 웃음 짓고 갑니다
도를 아십니까?
흠 이쯤되면 유사과학도 거의 종교수준…
진짜 수준 하고는…
방랑식객은 그저 웃음만 나오는 수준입니다. 잡초 몇가지 알고 있다고 다가 아닙니다.
오랜만에 크게 웃었습니다.
창익아 방랑 식객이 하는 요리들 보면 간독성이랑 신장독성으로 몸 망치기 딱 좋아 보이던데??
곧 양념범벅되시겠군요
대사각하의 요리사란 만화가 있는데, 거기선 요리사가 음식만으로 표현하죠. 만화답게 그의 만찬에 참석하는 대사들은 전부 미식가고요.
사람은 거개가 비슷하더라도 입맛이 다른 경우가 종종 있죠. 매운 맛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그 후에 나오는 단 맛에 불쾌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스토리를 만든다는 건, 요리사가 자기확신이 있고, 요리사를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일 경우에 들어맞지는 않는가요?
이번에, 요리사는 각각의 요리의 의미를 소개하고 핑거푸드로 내놓았다고 하더군요. 과연, 그 요리사의 고민이 없었을지 모르겠네요.
글을 다 읽어도 무슨 주장을 하는 지 정확히 잘 모르겠다. 내가 난독증인듯
그에 대한 제 생각을 잘 적어주셨네요.
25년전인가….YS의 칼국수 이후로 의식이나 수준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증거겠죠……
정치수준이나 음식수준, 의식수준, 생활수준이 모두 따로 노는게 아닌데…..
그걸 모르는 사람도 많고 무시하는 사람도 많죠.
‘결과 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문장을 전가의 보도처럼 팔아먹는 이들이 있죠. 결국 감각을 통해 지각하는 건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이 재료가 어느 산신령의 기운을 받은 산삼이니, 어느 강에서 어느 철에 잡힌 조개이느니 하는 스토리텔링도 결국 맛 이라는 기준 앞에서는 약간의 조리 실수에도 아무 의미가 없어지는 것을… 결국 그들은 그런걸 먹고 싶었나 봅니다. 맛있는 음식이 아닌 맛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음식을.
방랑식객이 다녀간 일본 레스토랑의 뒷이야기를 일본인 쉐프에게 직접 들었습니다. 그저 웃음만 ㅋㅋㅋ
쉽게 말해, 유치하단 얘기려나요. 공감합니다.
뭐 그렇게 잘 짜여진 작품은 아니었고 좀 아마추어 같다는 생각은 했지만 비선실세의 샤머니즘과 비교하고 적폐로 구축했다고 하신 건 너무 오바가 아닌지… 재벌들 줄세우고 비밀스럽게 지시 하달하고 그런 모습에서 탈피하겠단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한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