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드로잉’ 후기의 후기-인연과 위안
‘인연’이라는 단어를 남발하고 싶지 않은데 자꾸 그럴 일이 생긴다. ‘뉴욕 드로잉’의 역자 후기를 쓰는데 참고하려고 오랜만에 ‘완벽하지않아 (Shortcomings)’를 폈다가 끼워 두었던 번역 샘플을 찾았다. 당시 블로그의 이웃이 재미있게 읽었다고 해서 찾아 본 뒤, 한국에 돌아와서 이리저리 번역 가능성을 타진했던 책 가운데 한 권으로 삼았었다. 글 위주의 책이 아니므로 샘플을 어떻게 만들기 고민하다가 스캔해 포토샵으로 자막을 지우고 다시 출력해 손글씨를 써 완성했다. 전문 출판사에 보냈는데 마침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었다고 해서 정말 우연찮게 번역을 맡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인연으로 이번 책 ‘뉴욕 드로잉’을 작업했다. 글이 길어지는 데다가 좀 사변적이라 망설이다가 뺀 이야기가 있다. 대학 시절 서양건축사를 가르쳤던 아무개 교수의 이야기다. 그는 버클리에서 학부를 나온 뒤 하바드에서 대학원을 졸업했는데, 어느 수업 도중 기후 포함한 두 동네의 분위기를 비교하면서 ‘버클리에서 행복했는데 하바드에 가니 좀 암울했다’고 이야기했다. 나중에 나도 두 동네와 인접 지역을 차로 훑고 다니며 그의 감상에 동감할 수 밖에 없었다.
정확하게 보스턴은 아니지만 버클리에서 동부로 터전을 옮긴 에이드리언 토미네의 감상 또한 그렇게 이해했다. 후기에서 언급했지만 다섯 시간이 걸리고, 따라서 서부에서 동부로 넘어갈 때는 주로 ‘레드 아이’, 즉 밤샘 항공편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나도 첫 서부 여행 때 샌디에고로 들어가 자동차로 쭉 북상한 뒤 시애틀에서 자정인가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고 애틀랜타로 돌아갔다. 하필 시애틀이라 비가 주룩주룩 내렸으니, 비록 동부로 돌아가더라고 크게 아쉬움은 없었지만 아마도 그의 여정은 달랐을 것이다. 한마디로 더 엄격하고 빡빡한 곳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셈이다.
정확히 그래서인지는 살짝 헛갈리지만, ‘뉴욕 드로잉’에 가득 남긴 뉴욕에서는 나의 예상보다 따뜻함이 훨씬 더 많이 묻어났다. 남발하고 싶지 않은 두 번째 단어, ‘위안’을 느꼈다. 기억이 분명치 않아 후기를 확인해 보니 정작 거기에는 들먹이지 않은 단어. 왜 그랬더라. 장담은 할 수 없지만 아마도 단어 자체의 존재 또는 가능성에 대해 아예 생각을 못 했던 것 같다. 평소에 그런 단어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그랬는데 어느날 밤에 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상자를 다음날 아침에 뜯어 책을 확인하는 순간 생각났다. 그때 후기에 쓰려고 했으나 생각나지 않았던 단어가 위안이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