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바나나 안 든) 바나나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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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고 음식에 대한 추억이 없을리 없다. 다만 추억은 추억이고 맛은 맛일 뿐이다. 특정 음식에 대한 추억이 현재의 경험을 과장시키는 걸 원치 않는다.  아니, 경계한다. 현재가 딱히 좋지는 않지만 과거라고 좋았을리는 없다. 특히 음식과 추억을 결부시켜 만들어 내는 콘텐츠의 시간적 배경으로 많이 쓰이는 유년기~20대까지를 돌아보면 정말 별게 없다. 연탄불로 난방하고 곤로로 취사하다가 가스불로 전환되던 순간까지 기억나는 시대를 거쳐왔다. 딱히 맛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음식이 존재했는지 의문이다. 하물며 더 이전 세대라면.

각설하고, 어쨌든 추억거리는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인 바나나빵을 오랜만에 발견했다. 망원역에서 시장으로 들어가는 골목 어딘가의 빵집이었다. 한 개 1,200원, 세 개 3,000원. 한때 친가와 외가가 모두 살았던 충남 예산의 ‘본정통(혼마치)’에 있던 빵집의 대표 메뉴가 바나나빵이었다. 상호는 태극당이었던 것도 같은데 워낙 흔하니 혼동의 가능성이 너무 높아 확신은 못하겠다. 친가에 있을 때는 먹어본 기억이 없고, 외가에나 가거나 친척이 모여야 한 개씩 먹을 수 있었다.

그래봐야 퀵브레드에 속하는 반죽을 바나나 모양 틀에 부어 구운 빵이다. 식용유나 마가린을 썼을 테고 바닐라도 가루일 확률이 높다. 물론 빵집에선 찾아보기가 다소 어려워졌지만 겨울에 노점에서는 종종 볼 수 있다. 이래저래 회상을 위한 매개체 이상으로는 맛보지 않은 가운데, 이 음식의 기표와 기의가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생각했다. 진짜로 바나나를 넣은 바나나빵 말이다.

이 빵이 추억으로 각인되던 시절에는 바나나가 귀했다. 유치원의 월간 생일잔치에서 1/3토막씩 먹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런 시대는 이미 오래 전에 지났고 이제 바나나는 한편 흔해서 안 먹는 음식이 되었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제과제빵의 재료이며 묵은 바나나를 처리하는 최고의 용도는 이런 틀에 넣어서 구울 수 있는 퀵브레드다. 게다가 초코파이를 필두로 바나나를 거의 욱여넣다시피한 대량생산 과자류가 유행을 타고 있다(조금 과장하자면 바나나 지옥).

그런데 의외로 바나나를 넣은 바나나 모양 빵은커녕 일반적인 파운드 케이크 틀에 구운 바나나빵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종종 영등포 청과물 시장을 지날 때마다 아주 싸게 파는 묵은 바나나가 눈에 들어온다. 맛있게 먹을 상태는 살짝 지났지만 빵에 넣기엔 대체로 좋다. 심지어 껍질을 벗겨 짚백 등에 담으면 장기 냉동보관도 가능하다. 한마디로 엄청나게 돈이 많이 드는 빵도 아닌데… 없다. 엄청나게 고민하고 머리를 쥐어짜지 않더라도 다양성의 여지는 아직 많다고 믿고 있다.

붕어빵에 붕어를 굳이 넣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바나나빵에 바나나를 넣을 수 있는 시대는 사실 이미 오래 전에 찾아왔다. 엄밀히 따지자면 이제 붕어빵에 붕어를 넣을 수 있는 시대도 되었다. 그런데 흔히 맛볼 수 있는 넌센스의 대부분은 바나나빵에 바나나를 넣는 고민을 하기 전에 붕어빵에 붕어를 욱여 넣으려다가 불거진 부작용의 산물이다.

1 Response

  1. 서영 says:

    바나나빵을 보니 그저께 리치몬드에서 먹었던 바나나빵이 생각납니다.. 생바나나를 넣었다고 자랑하고 있었으나 맛은 정말 “쓰레기”였습니다. 조리과정도 문제가 있어보였고 애초에 그 빵을 만든 목적이 뭔지도 모르겠는 맛이 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