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동] 로스옥-냉동 고기의 숨은 미덕?
아주 얇지는 않게 저민 등심 접시를 앞에 놓고 세 가지를 생각했다.
1. 마이클 폴란은 ‘고기는 냉동으로 인한 열화가 크지 않다(거의 없다?)’며 가급적 대량의 고기를 사다가 소비할 것을 권했다. 그처럼 돼지 반 마리를 사다가 소비할 수는 없지만, 덩어리가 큰 고기를 살 수록 이득이기는 하다. 가공비가 빠지니 아무래도 가격이 조금이라도 내려가고, 칼질을 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원하는 용도에 맞춰 썰어 쓸 수 있다. 또한 한 덩어리에서 다양한 용도의 부위를 얻을 수도 있다.
2. 우래옥에서 소혀를 시키면 냉동된 것을 내와서 불판 위에 올린다. 가스불+볼록 솟은 불고기판의 조합에서 냉동 소혀는 수증기를 올리며 회색으로 익는다.
3. ‘역 지지기(reverse searing)’을 필두로 한 요즘의 스테이크 조리법 가운데 한 가지는 아예 고기를 냉동고에서 꺼내 바로 익힌다. 온도로 인한 겉과 속의 영향 차이를 가급적 크게 줄 수 있는 환경을 찾다 보니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것이다.
굳이 이 세 가지를 생각한 이유는, 이 얼린 등심이 아주 단순한 ‘가성비’ 추구의 산물인지 아니면 저 셋 가운데 한 가지라도 고려한 결과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모두가 생고기를 선호하지만 같은 두께라면 숯불의 복사열에 훨씬 빨리 익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냉동시킨 채로 내오기 때문에 이런 두께에서도 고기는 숯불 위에서 생각보다 오래 버틴다.바로 그 ‘생’을 향한 습관적인 선호도를 떨쳐낼 수 있다면 로스옥의 고기는 예전에 투뿔등심의 리뷰에서 언급한 것처럼 ‘고기를 먹는다’는 경험을 만족시켜 주기에는 준수하다.
투뿔등심 이야기가 나온 김에 비교하자면, 나는 이쪽이 더 낫다고 본다. 무엇보다 간을 하지 않는 고기를 뺀 나머지 요소에서 단맛이 적다. 이 정도로 단맛을 빼고 맛을 구성할 수 있다면 왜 굳이 투뿔등심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지 궁금해질 정도다.
냉면은 그다지 열심히 먹지 않아서 일단은 판단을 보류하고 싶은데, 굳이 압박이라도 받아서 당장 느낀바를 말해야 한다면 역시 준수한 편에 속했다. 한편 국물의 뒤에 깔리는 감칠맛의 켜-존재한다는 것도 신기한 일?-에서 신기하게도 차게 식힌 콩나물국의 느낌을 받았는데, 정확한지는 모르겠으나 누군가 시도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뻥스크림’이라는 디저트가 존재하는데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쌀뻥튀기를 뭉친 과자 사이에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발랐다(‘끼웠다’고 말하기엔 아이스크림의 질감이 굉장히 무른 편에 속하므로…). 뻥튀기도 딱딱하기 않고 가벼워서 소프트 아이스크림과 질감의 결이 잘 맞는데다가 차갑고 달아서 고기 먹은 뒤의 디저트 자체로는 나쁘지 않지만, 직화구이 고깃집이 한국 고급 외식의 대표 양식인데다가 그나마 SG 다인힐 계열의 매장들의 현대화 시도를 감안하면 격이 좀 더 높아질 여지는 아직 많이 있다.
규모에 비해 서비스 인력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아쉬웠지만, 무엇보다 외국인을 데리고 ‘이것이 한국의 대표적인 외식 형식이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을 때 좋은 선택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식탁에 여느 불보다 뜨거운 열원을 놓아야 하고 최선의 배기로도 연기 등을 막을 수는 없으니 편안함의 확보에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고 보지만, 비교적 넉넉한 자리 간격이라든지 현대적인 인테리어, 가짓수를 줄인 반찬 등등은 ‘고기를 먹는다’를 먹는 경험을 하기에는 준수하다.
굳이 엄청나게 내키지 않더라도 SG 다인힐의 브랜드는 어쨌든 먹어보게 되는데, 역시 양식보다는 한식 쪽이 낫다. 때로는 그냥 한식 쪽에 집중해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할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