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벚꽃
아, 작년엔 경주에 갔었지. 아주 늦게서야 기억해냈다. 마치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연습도 제대로 못해서 5km쯤에서 포기하고 걸었으며 꽤 오랫동안 써왔던 손수건을 흘려 잃어버렸고 결승점에서 파란 토마토를 사와 집에서 튀겼으나 단맛이 너무 강했다. 대회 진행은 엉망이었지만 그래도 벚꽃만은 아름다웠다.
올해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봄이네. 꽃이 피었군. 심드렁했달까. 어딘가 가고 싶지도 않았고, 이미 생명이 다한 꽃은 굳이 사다가 꽂아놓기를 원했지만 삶이 한창인 꽃에는 관심을 주지 못했다.
그러다가 사진의 벚꽃을 우연히 발견했다. 교정지를 우체국이 문 닫기 20분 전에 간신히 보내 놓고 저녁이지만 점심 같은 끼니로 파김치가 빛나는 5,000원짜리 백반을 먹은 밥집 근처 어딘가의 골목이었다. 벚꽃을 보자 10년쯤 전 샌디에이고의 솔크 연구소(루이스 칸 설계)를 견학했을때 안내인으로부터 들은 안도 다다오의 일화가 기억났다.
그가 견학을 와서 안내했는데, 어느 벽을 발견하고는 앞에 서서 ‘I’m fullfiled’라고 말했노라고. 나는 이제서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로 그때 그 장소도 아니고, 무려 10년이나 지나 우연히 발견한 벚꽃을 보고 나서야. 애초에 찾고 싶은 마음이 없기도 했지만, 올해의 벚꽃을 그것도 우연히 발견했으니 그걸로 되었다. 적어도 당분간은. 적어도 올 봄이 끝날 때까지는.
*후일담: 이렇게 생각해놓고 한 번만 더 보고 싶어 이틀만에 도둑 밤 꽃놀이 가는 기분으로 찾아가 보았으나 이미 순간은 사라진 뒤였다. 찾아간 걸 후회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