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꽃
지난 토요일이었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느닷없이 꽃을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냥 나를 위한 꽃 말이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그런 생각을 한 게 처음이었다. 웃기는 일이군. 이것은 혹시 중년의 뭔가 불길한 정신적 조짐 아니냐. 정말 느닷없었다. 그런데 날씨가 너무 좋았다.
하지만 꽃을 사지는 못했다. 어쩌다 보니 해가 진 뒤 밖에 나갔고, 그와 동시에 꽃을 사고 싶은 마음도 사그라들었다. 일요일도 마찬가지였다. 낮에 밖에 나갔지만 미세먼지에 바람도 쌀쌀해서 역시 내키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날씨가 토요일 만큼 좋은지는 일에 파묻혀 헤아리가 어려웠지만 어쨌든 어제보다는 나았기에 기회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영영 그런 마음이 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심지어 외출복을 입고 근처 꽃집에 갔다.
선택이 썩 좋지 않을 거라는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근처에 좋은 꽃집이 없다. 작년 5월이었나, 강남역 화장실 살인 사건 당시 인터넷을 뒤져서 나온 곳을 찾아갔는데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꽃을 살 일이 별로 없으니 기준이랄게 없다고도 볼 수 있지만 난 꽃집에서 사람을 본다. 사람이 좋으면 꽃도 좋다. 물론 꽃만 좋고 사람이 좋지 않을 수도 있기는 하다. 그러면 꽃도 따라서 마음 속에서 좀 시든다. 그래서 더더욱 사람을 본다.
그리고 예상대로였다. 노란색 튤립을 사고 싶었는데, 흰색(?)과 보라색 밖에 없다고 했다. 난 보라색을 좋아하지만 이런 계절과 날씨에 꽃으로 즐기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프리지아를 한 다발 사왔다. 7,000원이라고 했다. 바람이 좀 많이 불어 한 송이가 꺾어져서는, 집 바로 앞에서 기어코 떨어졌다. 주워 집에서 버릴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꽃이다 싶어 그대로 두고 왔다.
집에 돌아와서는 지난 금요일에 마셨던 탄핵 축하주 병에 일단 꽂아 책상 위, 눈에 보이는 곳에 두었다. 이 책상을 12년 쯤 쓰고 있는데 꽃을 올려둔 것도 처음이다. 생각했다. 그나마 아름다운 것이라도 찾으려 든다면 다행이다. 그런 마음조차 들지 않고 욕망조차 사그러드는 시기가 찾아올까 두렵다. 7,000원에 다만 며칠이라도 갈 수 있는, 미동조차 하지 않는 행복이 존재하더라도 손조차 뻗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