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윅: 리로드’와 오리 기름, 감자 튀김
‘존 윅: 리로드 (원제는 존 윅: 챕터 2)’를 보았다. 하필 ‘로건’을 보고 난 다음이라 상대적으로 엉성해보였지만 1편에 이어 못 만든 영화는 아니다. 적어도 뭘 좋아하고 잘 하는지 알고, 그를 바탕으로 보여주고 싶은 것을 집중해서 보여준다. 달리 말해 시간 때우기/스트레스 해소용 B+ 영화로는 크게 손색 없다.
그래서 별 생각 없이 보다가 영화 막바지, 의외의 장면에서 정신이 좀 들었다. 존 윅(키아누 리브스 분)의 상대 악역인 산티노(잘생긴 전현무 분)가 컨티넨탈 호텔로 피신해 바에서 식사를 한다. 영화의 설정상 컨티넨탈 호텔에서는 ‘직업 할동’을 할 수 없다. 그럼 파문되고 활동에 필요한 혜택을 누릴 수 없게 되며, 궁극적으로 죽어야 한다.
컨티넨탈 호텔에 발을 들였으니 죽지 않을 거라 철썩같이 믿고, 산티노는 존 윅에게 음식 이야기를 한다. ‘여기 메뉴가 계속 바뀌는데 먹어 봤나? 오리 고기가 정말 맛있는데…’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이런 대사를 읊으며 포크로 찍어 입에 넣는 음식은 감자였다. 대관절 이게 어찌된 노릇인가. 대사는 역시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지는 않지만 ‘감자가 맛있는데, 오리 기름이 비밀이지 (Duck fat makes all the difference)’였다.
영화에 등장하는 건 재료의 특성을 감안하면 삶아서 한 번 설익힌 다음 오리 기름에 지진(Sauteed) 감자인 것 같은데, 역자가 귀찮거나 또는 오리 기름에 익히는 감자를 몰라서 그냥 ‘오리 고기’라고 퉁친 것 같았다. 오히려 몰랐다면 이해가 되는데, 아니라면 이런 경우는 굳이 뭉개지 않아도 적당히 전달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오리 기름에 익히는 감자는 딱히 요즘의 현상도 아니다. 주로 프렌치 프라이의 기름으로 유명세를 누린지도 한참 지났다. 내가 7년 전에 옮긴 ‘모든 것을 먹어 본 남자’에도 등장하는데, 그 책에 실린 글 가운데 20년 넘은 것도 있음을 감안하면 이미 15년 이상 현재형으로 통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미국에선 주 생산지가 뉴욕 주 윗쪽의 허드슨 밸리로, 궁극적으로는 푸아그라의 부산물이다. 링크를 따라가 보면 녹여내 정제를 해서 ‘액체 금’이라 홍보하며 팔고 있다.
그럼 오리 기름을 구하면 맛있는 감자 튀김을 먹을 수 있는가? 안타깝게도 한국에선 선뜻 그렇다고 말하기 어렵다. 나는 오랫동안 한국의 떨어지는 감자 다양성, 즉 수미든 남작이든 전분 함유량이 높은 2~3종만 존재해 맛있는 프렌치 프라이를 만들기가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재고의 여지가 있다.
감자가 다양한 세계에서도 튀김에 적합한 종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기 때문이다. 유콘 골드처럼 다소 단단한 종을 선호하는 무리가 있고, 러셋처럼 전분이 많은 종을 선호하는 무리도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러한 논쟁조차 한국에선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설사 한국에 현존하는 종의 감자가 전분의 함유량에 상관 없이 프렌치프라이에 적합하다고 해도 맞는 길이를 확보할 만큼 크거나 길지 않기 때문이다. (불평을 더 하자면 한국에서 유통되는 감자는 삶아 으깨어도 거칠음이 가시지 않아 삶기 외의 조리법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책을 뒤지지 않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만 늘어놓아도 서너 가지는 족히 넘을 프렌치프라이 조리법을 생각해보면, 이런 감자의 현실은 또 다른 한국 식문화의 불행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프렌치 프라이는 바삭한 탕수육과 비슷한 접근 방식으로 튀겼다. 일단 초벌로 낮은 온도(135°C)의 기름에서 전체를 조리한 뒤, 더 높은 온도(190°C)에서 겉을 한 번 더 튀겨낸다.
그렇다면 굳이 초벌 튀김을 할 필요가 있을까? 굳이 감자를 속까지 한 번 익히는 게 목적이라면 기름 아닌 물에 데쳐도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게다가 물이 훨씬 싸고 또한 안전하다. 그래서 요즘은 물에 한 번 데쳤다가 물기를 걷어내고 210°C선의 높은 온도에서 튀기는 레시피가 가장 잘 먹히는 것으로 통한다. 한편 조엘 로뷰숑이 고안했다는, 초벌 조리 없는 레시피도 집에서는 유용할 수 있다. 감자를 차가운 기름에 담가서 그대로 온도를 올려 튀긴다.
맛있는 프렌치 프라이를 위해 이 모든 걸 시도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도, 웬만하면 집에서는 판을 크게 벌리지 않을 것을 권한다. 그만큼 보람을 느끼기가 어렵다. 따라서 프렌치프라이가 먹고 싶다면 1. 최고일 수는 없지만 가까운 맥도날드에 직접 가서 웬만하면 금방 튀긴 걸 사가지고 온다. 배달은 눅눅해질 수 있으니 권하지 않는다. 2. 좀 더 수고를 들일 수 있다면 소위 “수제” 버거를 잘 하는 집이 프렌치프라이도 그나마 신경 써서 튀길 가능성이 높으니 찾아간다.
물론 언제나 통하는 진리는 아니다. 최근의 다운타우너 버거 리뷰에서도 잠깐 언급했듯 레스팅을 하지 않거나, 소금간을 제대로 하지 않고 소스에 기대는 경우가 흔하다. 기름에 담그지만 결국 오븐조리와 원리는 크게 다르지 않은 튀김은, 조리 직후 재료 또는 튀김옷의 수분과 열에너지원인 기름이 표면에 혼재하는, 일종의 약한(vulnerable) 상태에 잠깐 처한다(극장에서 ‘너는 지금 치킨이 땡긴다’라며 기름에서 막 꺼낸 걸 보여주는 광고를 보여주던데 바로 그 상태). 이때가 튀김이 눅눅해질 수 있는 물+기름을 걷어내거나 또는 간을 적절히 할 수 있는 기회의 문인데 대부분의 경우 적절히 활용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비단 프렌치프라이 뿐만 아니라 치킨 등 다른 튀김도 마찬가지다.
3. 모든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집에서 굳이 튀겨보겠다면, 굳이 시장에서 감자를 사오지 말고 냉동으로 존재하는 미국산 등을 사는 편이 훨씬 낫다. 종도 잘 골랐을 뿐만 아니라, 튀김에 적합하도록 잘 가공되어 있어 실패 확률도 적다. 대부분의 “수제” 버거집에서도 국산 감자에 목을 매지는 않을 것이다. 들이는 노력 만큼의 성과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오역과 왜곡과 반역(…)이 난무하는 영화 자막 이야기는 언제나 듣다보면 어이가 어디론가 막 막 사라지는 그런 느낌입니다. 오리 기름… 저런 걸 제대로 번역 할 리 없죠. (깊은 한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