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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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과 같은 마감을 예상했으나 뚜껑을 열어보니 의외로 여유가 있다. 이유를 헤아려 보니 별 생각 없이 지하철에서 원고를 조각조각 나눠 꾸역꾸역 쓰고 있었다. 때로 완전히 쫓기는 시기에 백지를 앞에 놓은 상황만으로 패닉에 빠질 때가 있는데, 이렇게 회의를 차단한 글쓰기는 그 부담을 상당히 덜어준다. 회의를 품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일단 쓰는 것이다. 집에서는 대개 이렇게 쓰지 못한다. 처음부터 일정 수준 이상 다듬어진 글을 강박적으로 쓰려한다. 그래서 중간부터 쓴다거나, 일단 채워 놓는 등의 요령을 부리기가 어렵다.

하지만 밖에선 그렇게 생각을 할 수 없으니 십분 활용해 대강 쓴다. iOS의 노트패드는 훌륭한 도구니 일단 써 놓고, 앱등이는 책상에 앉아서 노트를 열어 스크리브너에서 조각을 맞춘다. 아주 썩 잘 맞아 떨어지지 않더라도 일단 어느 정도의 덩어리를 갖췄음을 알면 그때부터 마음이 편해진다. 이후엔 잇고 다듬은 다음 줄이면 된다. 지하철에서 쓸 수 있으면 집에서는 소파에 누워서도 쓸 수 있다. 똑같이 적당히 생각을 차단하고 전화기로 쓴다.

덕분에 오늘은 좀 여유를 가졌다. 취재를 나갔다가 머리를 자르고 들어왔다. 다음 마감인 역서를 위해 ‘더 뉴요커’의 종이책을 살까 교보에 들렀으나 없었고, 인터넷 서점에서도 의외로 잘 팔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전자책으로는 금방 살 수 있지만 종이책을 꼭 봐야 할 것 같다. 꽤 많이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