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앙의 문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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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했다. 식물처럼 자다가 일어나 정신을 차리고 에스프레소라도 한 잔 마실까 잠깐 밖으로 돌았다. 어느 곳도 문을 열지 않았고, 그저 나간 김에 전구와 우유 등을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진눈깨비가 내리고 있어서, 단지 한가운데에 둔 차를 보며 ‘창문이라도 열려 있었으면 난리가 났겠네, 비든 눈이든 물이 막 줄줄 들어오고’라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나의 요즘 정신머리로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이었기에, 정말 설마하는 심정으로 차를 확인했다.

그런데 정말 조수석 창문이 열려있었다. 그것도 완전히. 활짝. 지난 주에 운전할 일이 없어서 예방 차원에서 잠시 시동을 걸어 두었는데 그때 창문을 열었다가 닫지 않은 모양이었다. 운전석 창문은 스위치를 올리기만 하면 자동으로 닫기지만 조수석은 그렇지 않으니까. 충격으로 그자리에 쓰러질 뻔 했으나 정신을 가다듬고 살펴보니 바로 옆에 다른 차가 꼭 붙어 있어 물기가 심하게 들어온 상황은 아니었다.

우산을 열린 창문에 대놓고 자동차 열쇠를 가지러 집에 올라가며 생각해보았다. 작년에는 그럭저럭 몰고 다녀서 배터리가 나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조금 길게 운전을 하지 않았고 적어도 화-수요일부터 창문이 열려 있었다. 그럼 큰 차이로 보아야 할지 모르지만 자동차 전체의 온도가 더 떨어질 수 있고, 그 결과 배터리의 방전도 가속될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두세 번에 걸쳐 헛시동을 걸려 창문은 간신히 닫고, 그 사이에 서비스를 불렀다.

절차는 잘 안다. 배터리가 방전된 차의 시동 걸기는 아주 간단하다. 그리고 30~40분 정도 운전해서 재충전하면 된다. 딱히 이런 날씨에 차를 몰고 나갈 생각이 없었으므로 세워둔 채로 시동만 걸어 둘 생각이었는데, 문제는 기름이 거의 바닥이었다. 과연 1시간 동안 시동을 걸어 둘 만큼의 양인가?

최후의 수단으로 그대로 차를 끌고 나가서 시동을 끄지 않은 채로 주유하면 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시동을 걸어놓고 30분에 한 번씩 확인했는데 큰 문제는 없었다. 결국 1시간을 채우고 차 걱정을 마쳤다. 눈이 아니고 비였다거나, 옆에 차가 없었다거나, 아무 생각도 없어서 살펴보지 않았다거나… 하여간 재앙으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고 대부분 자초하는 것이므로 스스로를 믿으면 안된다. 그럼 재앙의 문턱을 지나 결국 파멸로 향한다.

2 Responses

  1. RainyDays says:

    재앙의 문턱에서 멈춘 이야기라 다행이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