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흐테르-하이든 잡담


친구에게 이야기를 들어 알게 된 다음 정확히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로 몽생종의 리흐테르 다큐멘터리를 세 번 정도 보았다. 하지만 더 이상하게도 그의 연주를 즐겨 듣지는 않는다. 음반이 없느냐면 그렇지도 않아서 재작년인가 국내 발매된 평균율과 RCA-콜럼비아의 연주를 모은 소니의 박스 세트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잘 듣지 않는다. 싫어하느냐면 그렇지도 않다. 오히려 반대로 때로 너무 좋거나, 내가 대체로 피아노 연주를 듣고 싶은 상황의 감정과 방향이나 결이 달라서 못 듣는다. ‘내가 좋아하는 것=좋은 것’ 또는 뒤집어서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나쁜 것’의 지나치게 단순한 감정적 호불호의 등식을 삶에 적용해봐야 좋을 게 없고, 리흐테르의 연주도 그렇다. 좋은 건 알겠는데 잘 듣지는 못하겠다.

그런 가운데 요즘 그가 연주한 하이든의 피아노 소나타 앨범 두 장(1/2)을 즐겨 듣고 있다. 언제나 기억이 희미한데 듣자마자 너무 좋아 바로 흡수한 소나타-외의 클래식은 거의 듣지 않으므로-는 없는 것 같다. 대체로 기본적으로 호의적이지만 전체를 이해할 수 없는 상태로 다가온다. 이를 되풀이해 들어서 조금씩 익숙하게 만든다. 그래서 정말 좋아하게 되었다는 방증은 두 갈래다. 일단 맥락-환경의 측면으로는 노동요로 쓸 수 있게 된다. 틀어 놓고 공기를 채울 만큼은 익숙하고 때로 선율이나 박자가 일의 흐름에 영향도 미칠 수는 있지만 크게 동요하지는 않는다.

다음은 감상의 측면인데, 오른손보다 왼손이 더 잘들리고 좋아진다. 이렇게 뭔가 마음 속의 규정하기 그저그런 재생목록에 추가하더라도, 곡 자체를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번호나 악장 등등의 분류 규칙을 잘 모른다. 그래서 960이니 899정도를 빼놓는다면 선율, 그도 아니면 자켓 등으로 기억한다. 그래도 예의상 한 번씩은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찾아 보는데, 하이든의 곡은 분류 체계가 두 가지라고 한다. 미안하지만 아직 거기까지는 신경쓰지 못하겠다.

한편 이런 과정을 거쳐 어떻게든 곡이나 앨범이 익숙해지면 다음은 다른 연주자의 앨범을 찾아본다. ‘매달 가장 잘 쓰는 10달러’인 애플 뮤직을 뒤진다. 처음 곡을 알게 해준 연주보다 나중에 발견한 게 더 좋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그게 한편 클래식의 매력이라고 알고 있다. 어쨌든 이런 과정에는 매일 한 번씩 들어도 앨범 한 장 또는 연주 한 곡에 2주일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데, 나름의 재미와 보람이 있다.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모르는 세계를 알아가는 재미와 보람일 것이다. 아니, 사실은 그보다 모르는 세계는 내가 죽을 때까지 찾고도 남을 만큼 존재할 텐데 그게 무엇이든 아직 희망을 완전히 놓지 않고 무엇인가 찾으려 든다는데 가장 미약하게나마 의미가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