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지옥의 도래?
깜짝 놀랐다. 코스트코의 아이스크림이 바나나-초콜릿으로 바뀌어 있었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종종 사먹기 시작한 시점부터 코스트코의 아이스크림은 꿀-요거트였다. 달아서 꿀이 아예 빠져도 상관 없었지만 맛의 조합이나 표정 모두 2,000원짜리치고는 훌륭했다(물론 회원-양판가임을 감안해야 되겠지만). 가격을 아예 감안하지 않더라도 양산 및 대중 음식치고 완성도가 좋았다. 자체 브랜드 구축 등을 이유로 코스트코가 독자 및 별개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바나나-초콜릿 아이스크림은 달랐다. 즉각 불길함이 엄습했지만 그래봐야 2,000원이니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하고 주문했는데, 아이스크림 기계 앞에서 직원이 허쉬 초콜릿 시럽 끼얹는 걸 보고 나는 속으로 울었다. 않되. 그것은 정녕 미국발 싸구려 대량생산 음식의 철저한 재현이었다. 모사 바나나와 모사 초콜릿의 만남. 각각 같은 수준으로 모사되었으니 만남 자체는 훌륭했지만 그 결과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음식이었다. 한 두 입째에 나는 시공간을 거슬러 올라가 미국 시골 어딘가의 월마트 복도를 헤매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곳에서나 먹을 수 있는 초콜릿과 바나나의 랑데뷰. 아마도 갑자기 싸늘해진 가운데 아이스크림을 쑤셔 넣어서 느낀 현기증 탓이었으리라. 입안에서 두 독한 모사품의 주도권 싸움에 지쳐 에스컬레이터-영수증 확인처 앞의 쓰레기통에 아이스크림을 버렸다. 그렇게 먹을 수 있는 선택 하나가 사라졌다.
집에 오면서 생각했다. 이것은 바나나 지옥의 본격 도래를 알리는 신호인가. 지난 3월 바나나 초코파이의 출시에 맞춰 글을 썼다. 당시만 해도 초코파이의 제품군을 넘어 바나나가 압도할 거라 예상을 못했다. 바나나가 새로운 맛의 열쇠도 아닐 뿐더러 바나나 우유에서 드러나는 모사 표정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틀렸다. 이제 초코파이는 뒷전으로 밀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온갖 제품이 (모사) 바나나의 손길을 입고 새롭게 등장해 묻혔다. 덩달아 나도 전혀 노력하지 않고 이것저것 먹어보았다. 바나나 보름달(굳이 먹을 필요 없다), 자기 참조 및 복제의 괴물 바나나킥 감자칩 (진짜 감자가 아닌, 프링글스처럼 만들어낸 과자의 질감이 더 잘 어울릴거라 보았다), 콘푸로스트 바나나 파워 등등이다.
개중에 콘푸로스트처럼 재구매가 가능한 제품들도 있다. 궁합 자체보다 조합의 균형 덕분이라고 본다. (모사) 바나나는 웬만한데 쉽게 쑤셔 넣을 수 있다. 하지만 언제나 즐거운 결과가 나오지는 않는다. 요소를 정하고 조정하지 않으면 코스트코의 재앙처럼 먹을 수 없는 것도 쉽게 나온다. 그나마 콘푸로스트가 먹어본 것들 가운데서는 싸구려에 대한 증오를 키우지 않을 만큼 다듬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머지는 큰 의미 없었고, 몇 가지는 괴식의 경계에 발을 디딜락말락하는 수준이었다.
심지어 균형을 잘 잡은 제품조차 새롭다는 느낌은 애초에 줄 수 없는 재료가 바나나이기에, 나는 이 본격적으로 도래하는 현상을 지옥이라 규정하고 회의의 눈길로 바라본다. 대체 무슨 의미인가. 바나나 초코파이를 다루며 가볍게 언급했듯, 수많은 모사 과일향과 맛의 제품 가운데 하나로 등장했다면 대수로울 게 전혀 없다. 바나나만 가능할리 없으니 망고, 파인애플 뭐 이런저런 미친 과일 향과 맛을 끼워 넣은 제품이 다양하게 존재한다면 그건 또 나름대로 대량생산의 세계에서 의미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전혀 다양하지 않은 가운데 전혀 새롭지 않은 것이 등장하면 끊임없이 복제되어 지평을 뒤덮는다. 하나가 시장을 지배하다가 다른 하나에게 주도권을 넘겨준다. 설사 하나가 아니더라도 손가락을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선택이 다양해지지는 않는다. 바나나든 체리든 모사의 향과 맛이 지배하는 세계만 그렇지 않다. 소위 “자연”의 음식 세계 또한 선택이 전혀 다양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들조차 천편일률적이다. 모든 과일을 지배하는 수동적인 단맛이 가장 두드러지는 예다.
다들 트렌드를 물어본다. 나는 관심이 없을 뿐더러, 중요하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다양성이 확보된 가운데 한 가지가 두드러져서 선도하면 의미 있을 수 있지만, 애초에 다양하지도 않은 가운데 하나가 계속해서 자리를 바꾼다. 주도권을 빼앗긴 건 뒤로 물러나 다시 다양성에 기여하지 않고 그냥 멸종에 가깝게 사라져 버린다. 꼬꼬면이 있었고 허니버터가 지나갔으며 지금은 바나나다. 다음은 또 뭐가 될까. 이쯤되면 ‘대체 왜 먹는가?’라고 매일 되물을 수 밖에 없다.
(아마도 그 이전부터 이미 계속되어 왔다고 생각하긴 합니다만) 제가 꼬꼬면서부터 느낀건데 맛을 소비한다기보단 어떤 유행을 소비하는 느낌입니다. 맛은 평균을 밑돌지만 않는다면 별로 중요하지 않고 유행을 소비하는 멋진 나 자신이 더 중요한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