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도시락

img_5344-1블로거가 쓴 글인 줄 알았다. 편의점 도시락의 성장에 대한 이 글 말이다. 기억이 맞다면 허니버터칩 리뷰에 ‘대중의 취향을 저격한다’는 반응을 보인 이의 이름-성까지는 모르겠다-이 같아서 잠시 착각했다. 찬찬히 보니 아니다. 전반적으로 동의 못할 구석은 없다. 학교에 적을 둔 연구자가  사업적 측면에서 편의점 도시락을 다루고 있다. 다만 온도에 대한 언급은 공감하기 어려웠다. 비단 법이 강제하지 않더라도 편의점 도시락이 따뜻해질 필요가 있을까? 편의점 도시락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았다.

편의점 도시락의 방점은 ‘도시락’보다 ‘편의점’에 찍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비슷한 가격대의 도시락 전문점이 존재하고, 온도가 더 높은, “따뜻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 하지만 편의점 도시락은 여전히 선택 받는다. 품질과 가격의 고려-소위 ‘가성비’-외에도 접근성이 영향을 미친다. 편의점은 흔하다. 쉽게 찾아갈 수 있기도 하지만, 선택과 결제 과정 또한 다른 창구에 비해 에너지를 덜 소비할 가능성이 높다. 식사가 지극한 일상의 선봉에 설 때, 찾아가고 고르고 기다려 돈을 내고 받아오는 모든 과정은 한없이 번거울 수 있다. 단 1초도 낭비하고 싶지 않을 수 있다. 그럴 때 편의점의 도시락이 가장 효율적인 해법일 수 있다. 이를 가능케 하는 요인은 결국 편의점의 네트워크와 이를 물건으로 채워주는 유통이다. 그 과정에서 도시락이 필수적으로 차가워야 한다면, 사용자는 이를 감수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앞서 말한 것처럼 식사가 지극한 일상의 선봉에 설 때는 어떤 선택도 최선이 아닐 가능성이 아주 높고, 그럼 차선 가운데 선택적 요인에 부담 덜 주는 걸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온도가 과연 그렇게 큰 문제인가? 나는 아니라고 본다. 물론 찬 밥과 반찬이 맛이 없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이미 이를 보완할 여건을 편의점은 충분히 갖췄다. 일단 기계적 해법으로 전자레인지가 있고, 음식으로서는 라면이나 즉석 국도 있다. 그리고 둘 사이에 즉석밥 마저 존재한다. 반찬이야 애초에 상온이 기준점이니 그렇고, 밥은 차가움이 (일시적인) 신선함 담보의 수단임으로 먹어보면 크게 문제 된다는 느낌이 안 든다. 한마디로 밥솥에서 오래 묵은 더운 밥보다 차갑게 유지한 새 밥이 낫다는 말이다(노파심에 사족을 달자면 냉장 상태에서 전분은 금방 노화된다).

img_5496또한 현재 편의점의 맥락에서 온도를 목표로 삼는다면, 그 순간 다른 선택지가 눈에 들어온다. 편의점에서 따뜻함을 찾느니 차라리 따뜻함 또는 일정 수준의 생동감을 음식의 완성도나 맛, 수준 등등보다 우선 과제로 삼는 창구를 선택하는 편이 낫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사진의 돈까스는 대학가 음식임을 감안해도 6,000원에 나쁜 선택은 아니다. 다만 고기의 양이 굉장히 적고, 튀김도 아주 훌륭하지는 않다. 나머지는 편의점의 요소와 비슷하거나 못한 수준이다. 다만 따뜻하다. 포만감은 ‘무한리필’ 해준다는 밥쪽에서 찾아야 한다. 윗 사진의 도시락과 비교하면 핵심인 돈까스는 꽤 다르다.

아니면 소위 ‘미각 파괴’ 백반 같은 것도 있다. 모든 동네에 존재하지 않겠으나, 사무실 밀집 지역에 존재하는 밥집들이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는 5,000원이면 너무 강한 간에 미각은 파괴되지만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편의점 도시락과 이 음식이 정확하게 호환 가능한 대상인지는 모르겠다. 편의점 도시락을 선택하는 부류는 나름의 이유로 편의점 쪽에 집중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편의점이든 아니든, 도시락의 미래는 어디로 흘러가야 할까. 일단 위에서 소개한 글이 언급하는 아침 식사의 가능성부터 생각해보자. 아침 식사 시장을 ‘블루 오션’이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설사 그렇다고 해도 그걸 채울 수 있는 음식의 형식이 도시락, 특히 한식의 밥과 반찬을 담은 것이어야 한다고 보지 않는다. 현대인의 생활에서 빠르고 효율적인 식사는 반드시 필요한데, 그 측면에서 가장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면 아침 식사의 조건에 들어맞는 음식 형식은 이미 존재하고, 편의점은 물론 그 외의 창구에서도 갖추고 있으니 질적 향상이 과제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아침 식사 니즈’ 가 (나의 표현을 덧붙이자면) 일종의 백지상태라면? 그건 아마도 1. 먹을 만한 음식이 없거나, 2. 먹고 싶은 음식이 없거나, 3. 애초에 아침을 먹지 않기 때문 아닐까. 물론 1과 2가 3에 영향을 미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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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편의점 도시락으로 돌아와 생각해 본다면, 나는 궁극적으로 선택과 집중이 좇아야 할 가치라고 믿는다. 비효율적 반찬 문화를 그대로 투영한 도시락보다, 쓸데 없는 요소를 줄이고 몇몇 주요 요소의 질을 높이는 편이 낫다. 그를 바탕으로 요소가 겹치지 않는, 다양한 제품군을 개발해 선택의 폭을 넓히는 게 먹는 이들에게 나을텐데, 이미 등장하기 시작한 ‘셰프의 도시락’ 같은 것을 볼 때 그쪽으로 갈지는 잘 모르겠다.

또한 그런 다양화의 일부로 다양한 요소를 아우르는 도시락이라면 괜찮다. 밥과 다양한 반찬의 조합을 시도하기 어려운 1인 가정에게 결국 도시락의 호소력이 클 텐데, 이들을 겨냥해 만들어 먹기 힘든, 자질구레하다고도 할 수 있는 요소-나물?- 등으로 채우는 도시락을 얼마든지 개발할 수 있다. 이미 한가위 특선 도시락 같은 제품이 나오고 있지 않은가. 전체 비용은 올라갈 수 있지만 즉석밥 등과 연계시킬 수 있다면 다양한 반찬에만 집중하는 가능성도 있다. 쌀 소비 감소도 결국 밥을 차려 먹어야 하는 여건의 번거로움이 미치는 영향이 클 텐데, 내 수고를 최대한 줄이면서 밥을 먹도록 북돋아 주는, 편의점 도시락 같은 시스템의 구축 및 배양이 큰 역할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