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왜관 성 분도 수도원 소시지 2종
성경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한 나머지 ‘신학교에 보내지 않겠느냐’라는 이야기마저 듣던 소년은 결국 자라 무신론자가 되었다. 덕분에 성당 근처에만 가면 마음이 찔려, 소시지 두 종류를 먹어 보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서울에선 명동성당에서만 살 수 있는 경북 왜관 분도 수도원 소시지 이야기다. 그냥 에두르지 않고 결론만 말하자면, 맛있다. 제대로 만든 소시지처럼 맛있다는 말이다. 먹기 전엔 경계했다. ‘첨가물을 넣지 않은 소시지’라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인가. 소시지는 기본적으로 가공식품, 과정의 원활함을 위해 첨가물이 필요하다. 아질산염은 보툴리늄균의 번식을 막고, 결착제는 수분 손실을 막아 촉촉함을 지켜준다. 딱지를 읽어보니 후자는 쓰고 전자는 쓰지 않은듯. 아질산염이 맛과 색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감안하면, 이 결정이 자발적인 것인지 아닌지 궁금하다. 질산염도 쓰는 게 좋다고 생각하지만 구매자의 정서를 감안해 뺀 것인지 알고 싶다는 말이다.
기사에서 알 수 있듯, 정말로 수사가 만들기 때문에 선택의 폭은 다양하지 않다. 겔브부어스트(gelbwurst, ‘gelb’는 노란색이라는 뜻)과 마늘 소시지 두 가지 뿐이다. 맛은 전자가 낫다. ‘독일 것이 약간 짜다고 보면 된다’고 밝히고 있지만 제품군의 간이 소극적이지는 않다. 가공식품으로서 소시지가 품어야 할 맛을 굽히지 않고 낼 수 있을 정도로는 적극적으로 간했다. 늘 소시지가 ‘분해 후 재조립’의 개념으로 만든다고 말해왔는데, 그에 맞게 질감이 매끈하지만 아주 조금만 더 치밀해도 좋을 것 같다. 한편 마늘 소시지는 이름과 달리 마늘맛이 아주 적극적으로 나지는 않는다. 제품군 다각화의 산물이라고 말하기엔 겔브부어스트와 큰 차이가 없다. 어차피 둘 가운데 하나니까, 그냥 전자를 택할 것 같다.
그 재조립 과정을 거쳤으니 딱히 뭔가 더 보탤 필요가 없다. 그저 탄수화물, 즉 빵이나 밥만 받쳐주면 잘 먹을 수 있다. 지방을 지방에 얹으면 더 맛이 좋아지므로, 빵을 먹는다면 녹지 않은 버터를 사이에 끼운다. 밥일 경우 뜨거운 것에 차가운 소시지를 얹어 온도 대조로 인한 자극을 즐기는 것도 바람직하다. 한경햄 같은 브랜드도 일정 수준 먹다 보면 일종의 감각적 포화 상태에 이르는 걸 감안하면, 별 차별점 없는 두 종류 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만이 단점이다. 4~500g 짜리 10,000원인 가격은 품질로 어느 정도 정당화 할 수 있다.
대구 동성로에 윈도우가 넓은 좁고 긴 가게에서 이 소시지를 성당과 관련된 여러 물건들과 함께 밖에서도 보기 좋게 진열해 판매하는 모습을 발견하고, 걸으며 드물게 볼 수 있는 아름다움에 끌려 오가며 구경하던 기억이 있어요. 이년 전인가 아쉽게도ㅜㅜ 그 가게가 없어지고 꽃집이 되었는데, 근처에 가면 자주 떠오릅니다. 이곳에서 만나니 반갑네요. 그때는 신문 자료나 분도 수도원의 인상만으로 아득하게 머릿속으로 맛을 그리기만 했었는데, 이제는 제 부엌이 조촐하지만 만들어 졌으니 곧 맛을 보고 싶습니다. 평소 블로그를 통해 식생활의 즐거움을 배웁니다. 틈틈이 외식의 품격도 잘 읽고 있습니다. 다른 번역하신 책들도 기대되고요.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