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 한 상자에 얽힌 문화적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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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의 귤 관련 기사를 읽고 생각이 나서, 오픈 마켓을 통해 귤을 한 상자 주문했다. 카카오 귤? 그런 거 잘 모른다. 어차피 카카오톡도 깔아본 적 없는 인간인지라… 하여간 일을 마친 새벽 시각 소파에 누워 오픈 마켓을 검색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게 어려운 현실이고 농업도 당연히 예외가 아니다. 아니, 아마 농업이 가장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링크의 기사가 현실을 상세히 설명해주고 있고 공감도 간다. 대개 큰 고민은 해결하기 어렵다.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들먹이는 ‘구조’의 문제가 가운데 단단히 도사리고 있다. 완전히 구조적이지 않더라도 통제가 불가능한 문제도 가세한다. 이를테면 과일의 다양화와 선호도의 변화 같은 것 말이다. 바나나가 존재했듯, 한때 비 거주민에게 제주도에는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이국적인 매력 또는 호소력이 있었다. 하지만 다양한 수입과일을 먹을 수 있는 지금, 그런 매력은 거의 전부 가셔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모든 문제가 구조적이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당장 해결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당장 바꿀 수 있는 작은 것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변화의 가능성이 보인다면 검토해봐야 한다. 가장 쉽게 들 수 있는 예가 상품의 정보나 분류다. 판매자는 많지만 상품의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는 이는 의외로 드물다. 귤이라면 일단 분류를 통한 가치 기준을 알아야 한다. 대개 가장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요인을 기준으로 삼을 테니, 크기가 대표적이겠다. 겨울에 귤은 어쨌든 흔한 과일이다. 그냥 대형마트, 심지어 집 앞 슈퍼마켓에서 눈에 띄는 대로 한 상자 집어올 수 있다. 그래봐야 10kg에 1-2만원선일테니 실패의 부담도 적다. 게다가 대형마트라면 선별자, 즉 마트 자체의 기준을 믿고 고를 수도 있다.

오픈 마켓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일단 판매자도 생산농장이거나 조합 등일 수 있다. 일단 거리가 좁아든다. 잠재적 소비자의 동기나 관심도 수준이 다를 수 있다. 따라서 이에 맞춰 최대한 상세하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적극적인 홍보책으로 작용하는 한편 상품의 가치도 올려 줄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썩 잘 되는 것 같지 않아 보인다. 단적으로, 귤 값이 쌀 수록 정보도 부족할 뿐만 아니라 상품의 분류나 배송 등도 떨어진다. 크기를 세세히, 아니면 아예 분류하지 않고 담고,  ‘터져 왔어요’라는 평이 많다. 오픈 마켓에서 판매자와 소비자의 거리는 가까워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실물은 확인할 수 없다. 이렇게 불확실성이 일정 수준 존재하는 상황에서 신용을 담보해 ‘구매’ 버튼을 누르게 하는 건 정보나 분류 등의 디테일이다. 말하자면 상품의 포장-물리적인 것이 아닌-도 안 중요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이것도 과연 현실이나 구조 때문에 실행에 옮길 수 없는 걸까? 문화의 변화가 절실하다.

한편 이 많은 문제 위에 생래적인 맛의 문제가 언제나 도사리고 있음도 기억해야 한다. 다른 모든 과일이 그렇듯 귤 또한 단맛의 멍에를 벗을 수 없다. 타이벡 감귤이라는 것이 대안 또는 고가치 상품으로 등장했다. 그게 아니라도 귤은 이미 너무 달다. 내가 산 것도 마찬가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신맛이 없어졌고, 그만큼 균형이 떨어졌다. 과일, 또한 귤에서 기대할 수 있는 즐거움이 전혀 없다. 귤은 물론 고부가 가치 개량종이 인기가 없다면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표정과 개성이 없다. 소비자는 왜 수입 과일을 찾는가? 혹시라도 ‘외국 또는 거대 자본의 생산물=천편일률적인 맛’의 혐의를 씌우고 싶다면 자제하는 것이 현명하다. 과일 맛, 또는 표정의 기준이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