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수육과 간장
그러니까 문제는 간장이라는 말인가. 주말 트위터 타임라인을 장식했던 글을 읽으며 나는 고민했다. 왜 탕수육으로 고민해야 하나. ‘찍먹’과 ‘부먹’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나의 음식을 놓고 그만큼 고민하면 된 것 아닌가? 이제는 거기에다가 간장까지 올려 놓아야 한다. 경우의 수가 몇 가지로 늘어나는 것인가. 단 둘이었던 것이 넷으로 늘어난다(찍먹과 부먹에 각각 ‘간장 찍음’과 ‘안 찍음’이 따라 붙는다). 이쯤되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격이다. 무엇보다 그런 수준으로 고민할 만큼 좋은 탕수육이 드물기 때문이다. 웬만한 중국집의 탕수육이란 냉동 튀김+달아 빠진 과일소스(후르츠 칵테일은 덤)의 조합이다. 그리고 음식을 좀 신경 써서 한다는 곳에서는 굳이 탕수육을 시킬 필요가 없다. 더 나은 선택이 얼마든지 널렸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많은 이들이 ‘탕수육 맛집’이라 꼽는 방배동의 주에서 정작 가장 맛 없는 요리가 탕수육이다. 이제 탕수육은 중식당의 계륵 같은 존재가 되었다. 식사류만 먹기엔 허전한데, 그렇다고 군만두를 시킬 수는 없다(그것은 또한 탕수육 만큼 열화로 고통받고 있는 군만두의 처지를 반영한다). 탕수육은 그럴때 선택 받는다. 의미 있는 중식당의 요리 경험에 기여하는가? 아니라고 본다. 실제로 나는 탕수육을 거의 먹지 않는다. 부먹이든 찍먹이든, 살짝 숨 죽은, 중간지대의 미묘한 튀김 질감을 내는 중식당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기회에 탕수육과 간장의 관계를 한 번 진지하게 들여다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무엇보다 그 속에서 가장 널리 적용되고 있는 맛내기의 논리를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적인 경우라면, 간장에게 자리가 없지는 않다. 탕수육은 돼지고기를 튀겨 새콤달콤한 소스를 끼얹은 음식이다. 기름기가 적당히 도는 한편 신맛과 단맛이 두드러진다. 무엇이 빠졌는가? 짠맛과 감칠맛이다. 간장이 이를 메워 다섯 가지 맛의 완결성을 확보해준다. 기름기를 잘라내주는 것과 지나치게 찐득할 수 있는 소스를 입에 넣는 지점에서 수분이 살짝 풀어주는 건 덤이다.
이상적으로는 그렇지만, 현실은 또 다르다. 가장 큰 문제는 간의 ‘몰아주기’다. 100%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탕수육의 간은 전부 소스로 몰린다. 고기와 튀김옷에 간을 하지 않는 것. 이유는 여러 갈래일 수 있지만, 지배적인 건 대량조리의 관리 문제로 본다. 튀김옷에 미리 간을 하면 글루텐이 생기고, 돼지고기는 수분이 빠져 나온다. 집에서 먹을 만큼만 조리하는 경우라면 부분 및 순간적으로 간을 할 수 있지만, 음식점에서는 번거로울 수 있다(물론 용인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거기에 간이 전혀 안 된 밥에 반찬으로 간을 맞춰 먹고, 짠맛보다 단맛이 이끄는 식문화를 감안해보자. 이상적인 경우라면 선택 가능한 간장의 존재가 의무로 바뀐다. 간장이 없으면 먹기 어렵고, 그 과정에서 많이 찍어 먹으니 쓸데없이 나트륨을 섭취해야 한다. 글쓴이가 분노한 지점도 결국 거기 아니었을까. 한국식 중식은 기본적으로 기름기가 충만한 가운데 간이 너무 싱겁다. 느끼해서 많이 먹을 수가 없다. 게다가 ‘더블 딥핑(double dipping, 찍은 음식 또 찍어 먹기)’을 하지 않더라도, 2인 1종지를 고수하면 소스는 남의 탕수육 소스로 인해 금방 묽어지는 한편 끈적거린다. 내 소스로 인해 간장이 맛 가는 것도 때로 견디기 어려운 마당에 남의 소스라니, ‘분노는 나의 것’이다.
그렇다고 170만이 보는 신문에 저렇게 글을 써야만 하는가. 그건 물론 전혀 별개의 일이다. 당연히 안된다. 사적 자아를 공적 지면에 투사하는 것도 보기에 좋을리 없지만, 그보다 굳이 지면에 분노하지 않아도 방법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 필요가 전혀 없었다. 최선은 역시 개인 간장을 갖추는 것이다. 간장통을 들고 다니라고? 그것도 안될 것은 없다. 조금만 검색하면 좋은 간장과 괜찮은 통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한국 남자들은 대부분 취사도 집안일도 못하지만, 통에 간장 붓기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으리라 본다. 회식자리에서 폭탄주 마는 요령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좋은 언론 문화 배양을 위해 애쓰는 분들이 회식 안 할리 없고, 폭탄주 안 말아 드실리 없지 않은가. 그것도 번거롭다면 1회 포장된 간장을 사면 된다. 휴대성이 좋아 지갑에 끼워서 가지고 다니다가, 간장이 필요한 상황에서 꺼내 쓰면 된다. 1일 한 봉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아도 맛내기의 논리가 완전 뒤틀려서 달고 맵지만 짠맛과 감칠맛이 딸리는 한식이다. 소금과 간장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한 상자 200봉이라니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것이다.
개인 간장을 가지고 다니는 게 이상한 일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최근 읽은 책에는 프랑스의 빵 문화를 탐구하는 미국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친불주의자지만 최근 쇠락하는 프랑스의 빵, 특히 바게트를 안타깝게 여기는 것. 그래서 레스토랑에 자기가 진정 맛있다고 여기는 바게트를 들고 간다. 내주는 빵이 더 맛있으면 그걸 먹지만, 아닐 경우라면 이의를 제기하고 들고 온 걸 먹는다. 레스토랑에서 모욕이라 생각하지 않겠느냐고? 음식 문화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빵을 나눠 먹고 문제에 대해 공감한다고 한다. 다음 번엔 더 나은 빵을 내겠노라고 약속한다고. 눈에 뻔히 보이는 빵도 가능한데, 1회용 포장된 간장이 안 되겠는가? 오히려 저 프랑스의 경우처럼 중국집에 작은 자극이나마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기꼬망 간장이 당연히 고급은 아니지만, ‘2인 1종지’까지 고집하며 지키려 드는 중국집의 간장보다는 나을 수 있다. 같이 나눠 먹고 간장 맛, 더 나아가 중국 음식의 맛에 대해 토론하면 좋지 않을까. 마침 음식 전문 기자까지 계시는 매체이니 이왕이면 모여서 맛에 대한 고민도 좀 같이 하면 참 좋겠다. 설득력 전혀 없는 순위 매기기, 170만부 지면에 좌절을 투사하기 보다는 훨씬 생산적일 것이다.
*사족: 한편 간장을 굳이 찍어 먹어야 하는 경우라면 적당히 희석시켜 주는 것이 좋다. 탕수육이라면 신맛이 이미 넘치므로 물이 낫고, 나머지 음식에는 식초다. 물론 기본 장류의 낮은 품질은 어떻게 해도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http://m.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1368
엉엉 뒤로 가기 버튼 잘못 눌러서인지 지금 새번째 댓글 달고 있어요. 저 위의 링크글 보고 간장에 찍어먹으면 탕수육이 별로인 건가..하고 궁금해져서 와봤는데 때마침 이런 좋은 글이 있어 행복합니다. 전 부먹+간장(+식초+고춧가루 섞어서)파인데 담에 언젠가 먹게되면 식초 대신 물을 섞어볼테예요 물!!
간장의 향을 즐기는 것도 좋죠 🙂 그런 간장이 드문 것이 문제일 뿐…
포스팅 주제가 공감이 안갔지만 다 읽어봤네요..
2인1종지에서 개인간장까지의 연결도 부드럽지 않고 빵얘기 나오는 대목에
내주는 빵이 더 맛있지만 그걸먹지만 이라는오타도 좀 있구요..
저는 탕수육을 먹기위해 짜장면을 시킵니다.
왜냐면 간장도 좋지만 짜장면을 다 먹고 남은짜장에 한번 더 찍어서 먹는걸 좋아하기 때문이죠..ㅋㅋ
공감도 안 가는데 끝까지 읽어주시고, 궁금하지도 않은데 짜장 찍어 먹는 취향 알려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어디서 맛없는 탕수육만 드시고 탕수육을 함부로 평가 하세요
레몬과 파인에플로 소스를 만들고 굵게 쓴 고기에 염지를 해서 숙성을 시켜서 깨끗한 기름에 두번 튀겨 바삭한 식감에 입안에 넣는순간 행복감이…
진짜 맛있어요
네 많이 드세요.
전 원래 부먹파였는데, 요즘 탕수육은 너무 달고 시어서 ㅠㅠ 부먹이 불가능해서 슬퍼요.. 숨어지내는 팬입니다.^^ 좋은 글 감사해요~
네 감사합니다 🙂
ㅋㅋㅋ삼성태블릿에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뉴스란에 떠서 들렀다가 재미있게 보고 갑니다. 즐찾해두고 종종 들릴께요
그런게 있는 줄 몰랐습니다. 어떤 경로로 거기에 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글 읽고 혼자 웃었어요. 간장 종지 사건에대해 조목조목 짚어주신 데에 공감이 가서요.
공감을! T_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