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자전 못 간 후기-수요 예측의 문제

41

출처는 과자전 홈페이지(http://gwajajun.com/?p=371)

열리기 일주일 전, 과자전의 표를 예매해두었다. 지난 몇 년 동안 행사의 흐름을 보며, 아마추어리즘이 지나치게 덩치를 불린다고 생각했다. 그 현장을 내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었다. 속단일 수 있으니까. 게다가 ‘굳즈’가 너무 훌륭해서 사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토요일, 두 시 못 되어 나와 지하철 역에서 현장의 상황을 알리는 트윗을 보고는 그대로 우회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기다리는 것까지는 그럴 수 있다 쳐도, 상품 매진이라면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글을 쓰기 전 망설였다. 결국은 음식 행사니 먹어 보아야 판가름 할 수 있기 때문. 물론 사진만으로도 판단할 수 있는 수준은 분명 존재하지만 위험한 발상이다. 따라서 음식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다만 못 가게 된 원인을 살펴 보려 한다.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사람이 많이 몰렸다고 했다. 과자전 측의 사과문에 의하면 예매 등으로 최대 16,000명의 참가 인원을 예상했다고 한다. 한편 주최측에서 추산한 올림픽 보조 경기장의 최대 수용 인원은 7,000명이다. 일단 최대 수용인원의 정의가 궁금하다. 혹 정적인 관람을 위한 인원은 아닐까? 달리 말해, 경기나 공연 등을 서서 보는, 입퇴장을 제외하고는 움직임이 많이 필요 없는 행사의 인원 말이다. 만일 그렇다면 움직이거나 줄을 서서 상품을 보고 사야 하는, 공연보다 움직임 많은 소그룹을 형성하는 행사의 수용 인원으로는 적용하기는 어려웠으리라 본다.  동시에 입퇴장을 하는 행사가 아니므로 훨씬 더 여유를 두어 계산했어야 한다는 말이다.

사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최대한 정확한 수요의 예측이다. 유동 인구 계산을 잘못해서 입퇴장 통제가 잘 안 되고 대기 시간이 늘어났고 가정하자. 그래도 상품을 살 수 있는 상황이라면 문제는 덜 심각했으리라고 본다. 이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설사 실패하더라도 이런 문제가 생길 경우를 대비해 최소한의 근거를 댈 수 있는 여건은 만들어 놓아야 한다. 일종의 시나리오 수립을 통한 수요 예측이다. 예를 들어 최악의 경우를 17,000명이 한 부스에서 불특정한 상품을 단 한 점씩만 산다고 가정해보자. 그래도 17,000점의 상품. 즉 과자가 필요하다. 한편 주최측 홈페이지에 의하면 참가 업체는 118곳이다. 120으로 반올림해서 나눠보자. 한 부스당 최소 114점의 상품을 갖춰 놓아야 한다. 쿠키든 마카롱이든 초콜릿이든 114점이다.

과연 이 수치가 행사에 참여하는 준-아마추어 업체로서 소화할 수 있는 것일까. 게다가 과자 또한 식품이다. 지방과 설탕을 많이 쓰니 쉽게 부패되지는 않지만, 질감 등은 하루 이틀이면 저하될 수 있다. 물론 같은 물성 덕분에 미리 만들어 냉동 후 해동해서 팔 수도 있지만, 그래도 행사 전 2-3일이 생산의 최적기라 본다. 역시 상황을 가정해서 계산해보았다. 내가 초콜릿칩 쿠키로 참가하는 시나리오다. 45g짜리 쿠키 48개분을 만드는데 다음의 과정과 시간이 걸린다.

  • 반죽 30분(재료 준비부터 마무리까지)
  • 휴지 1시간(최대 24시간까지도 가능하다)
  • 딱 들어 맞는 팬에 반죽을 6개분씩 담아 4단으로 24개씩 오븐에 굽는데 14분
  • 따라서 48개 구우면 팬을 뺐다가 오븐 온도가 다시 올라가기를 기다리는 시간 10분(팬을 복수로 준비해서 동시에 넣고 빼면 이 시간을 줄일 수 있지만 준-가정용으로는 열 손실이 클 수 있고, 전체를 한꺼번에 할 공간이 부족할 수도 있다)을 포함하면 약 45분
  • 포장은 완전히 식힌 다음에 해야 하므로 넉넉히 1시간 뒤에 시작하면 개당 1분, 총 20분이다.
  • 다 감안하면 48개에 전부 3시간 45분
  • 114개라면 48개의 약 2.5배. 시작부터 끝까지 대략 9시간 반이 걸린다.

이는 정말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할 때의 단순 계산이다. 1인당 단 하나의 부스에서 단 하나의 상품만 산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트위터에 올린 ‘전리품’ 사진을 보면 대략 10점 수준이었다. 그럼 부스당 1,000점에 이르는 물건을 준비해 놓아야 기다림으로 몇 배는 증폭될 기대에 맞는 물량을 준비할 수 있다. 물론 이는 정말 아주 단순한 계산이다. 업체와 상품의 인기-선호도를 아예 변수로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리 밝혔듯, 중요한 건 이러한 시나리오가 필요하다는 발상 그 자체다. 주최측은 이러한 수치에 대한 계산을 했을까? 또한 했더라도, 참가 업체는 이 정도 물량을 행사 기간에 맞춰 준비할 여건을 갖추고 있었을까? 시간보다 틀이나 팬 등의 집기를 대량생산에 맞게 갖추기 어려운 상황일 가능성이 높다.

과자전이 그냥 보기만 하는 행사였다면 불만은 이보다 덜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경험은 물건을 사지 않고서는 완성될 수가 없다. 그럼 수요에 대비하고 문서화를 통해 근거를 마련한 다음, 이런 문제가 발생할 경우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여태껏 어떤 조건으로 업체를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이번 상황을 바탕으로 참가 가능한 물량의 하한선을 조건으로 내세우는 것이 좋다. 아마추어를 위한 행사라도, 그것이 이런 수준으로 덩치가 커지고 또 판매를 통한 수익이 나오는 상황이라면 최소한의 질서를 보장하는 프로페셔널리즘을 도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냥 물건 나눠주는 것도 아니고, ‘다음’이 존재하지도 않는 상황에서 ‘다 팔리면 끝’이라는 생각으로 준비했다면 지극히 안이하다. 특히 이런 행사를 완전한 프로 진출을 위한 ‘간보기’로 활용하려는 업체가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나는 과자전 주최측과 참가 업체가 ‘굳즈’와 나머지의 간극에 대해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말했듯 과자전의 굿즈는 너무나도 훌륭하다. 하지만 준비와 진행은 그렇지 않다. 이 수준의 차이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음식까지 한데 묶어 결론을 내리고 싶지만 먹지 못했으니 일단 보류하자. 이는 좋든 싫든 내년의 행사를 기다린다는 말이다. 누군가 최고의 사과는 ‘내년에 더 좋은 행사를 열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나도 동감한다. 지방 교통비 보상 등 벼라별 항의가 나왔다고 알고 있지만 입장료 전액 환불이면 적절하게 조치했다고 믿는다. 내년에는 가볼 수 있기를 바란다.

*사족: 과자전은 왜 굳이 한국 제과제빵계에서 최악의 업체인 태극당을 끌여 들었을까. 프로든 아마추어든, 과연 태극당이 누군가에게 적용 가능한 역할 모델인가? 전혀 아니다.

 

3 Responses

  1. 과자전 가서 텀블벅에서 예약한 굳즈만 가져온 1인입니다. (말씀하신대로 훌륭합니다!) 태극당은 저도 의아했는데 최근 인스타그램 계정(https://instagram.com/taegeukdang/)을 보니 고전 내지는 키치함으로 브랜딩을 하고, 호응도 좋아 보이더군요. 과자전도 시각적인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주도하고 있는 것 같은데 비슷한 맥락으로 참여한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과자전, 귀여운 과자 그림(>_<), 마카롱, 태극당 모두 한 덩어리로 다 "좋아보이는 스타일"로 소비되는 것 같아요.

    • bluexmas says:

      태극당은 뭔가 전환점을 찾으려는 것 같은데 여전히 맛이 없으니 할 말이 없습니다… 그나저나 과자전 굿즈 사셨다니 부럽습니다… 제가 굿즈 욕심은 웬만하면 안 부리려 하는 사람인데 좋더라고요>_<

  2. 왜 태극당이냐고 물으신다면 관련들이 서로 있어서라고ㅎㅎㅎ

    주최랑 기획하신 분이 부르셨는데 못가서 핀잔 무지 먹었단;;;근데 못가도 별로 아쉽지는 않았습니다.

    작년 나왔던 수준들을 고려해 보면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