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이프 케이크: 먹는 법과 완성도의 관계
우연히 트윗에서 ‘크레이프 케이크를 한 켜씩 벗겨 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다른 데서도 같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한마디로 말이 안된다. 다른 레이어드 케이크도 한 켜씩 벗겨 먹나? 당연히 아니다. 그럼 왜 크레이프 케이크만 벗겨 먹어야 할까? 생각해보면 이는 아무래도 시중의 크레이프 케이크 완성도와 관련이 있다. 재작년인가, 어느 디저트 카페에 갔다가 평소 안면 있는 주인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당시 새로 생긴 “전문점”에 가서 크레이프 케이크를 시켰는데 케이크를 수직으로 자르기가 무척 어려웠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왜 갑자기 만들어 파는 곳이 늘었는지 모르겠지만, 크레이프는 쉬운 음식이 아니다. 하늘하늘하도록 얇고 동시에 부드러워야 하는데, 이는 꽤 잘 흐르는 반죽(batter)을 글루텐이 발달하지 않도록 만들어 재빠르게 부쳐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케이크 가게에서는 케이크팬과 오븐을 쓰지 않아도 되므로 메뉴에 포함시킬 수도 있겠지만, 대신 엄청나게 많은 크레이프를 실시간-케이크는 일단 오븐에 넣으면 어느 정도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으로 불 앞에서 서서 부쳐야 한다. 만약 이걸 숙련되지 않은 인력자원이 만든다면? 두껍고 질길 가능성이 높아진다. 아니면 얇게 부쳐 20장이 들어가는 걸 그보다 두껍게 부쳐 15장으로 ‘쇼부’치려 들 수도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크레이프 케이크는 부쳐서 겹치는 의미가 무색하게 질기고 단단한 케이크가 될 수 있다. 이걸 가리기 위해 ‘크레이프 케이크는 한 켜씩 벗겨 드시면 맛있습니다’라고 제안할 가능성도 있다는 말이다. 다시 한 번, 오히려 켜가 많은 크레이프 케이크 같은 종류일 수록 한꺼번에 수직 단면을 잘라 먹는 것이 훨씬 즐겁다.
‘내가 맛있게 먹으면 그만이지, 굳이 지켜야 할 먹는 법이라는 게 따로 존재하나?’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또한 거기에 반감이 스며 있다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재료와 조리법의 특성 등등을 따지면 같은 음식을 더 잘 만드는 방법, 더 맛있게 먹는 방법이나 논리는 분명히 존재한다. 모든 재료나 음식의 결합이 음식으로서 가치를 획득하지 못하는 이유도 같다(치즈케이크 빙수?). 또한 이를 뒤집어 생각하면, 여태껏 통하던 방법과 다른 것을 제안하는 이유는 사실 그 뒤에 존재하는 다른 문제를 가리려는 것일 수도 있다.
*사진은 예전 고베에서 먹었던 것.
저도 크레이프 케이크를 벗겨 먹는 것에는 의문이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먹을 경우 굳이 크레이프 케이크라는 형태를 취하기 보다 크레이프 전문점에서 갓 구운 크레이프를 즐기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되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