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월길] 레 호이-국물음식의 가격과 맛 외삽하기
지난 금요일에 사람 만날 일이 있었는데, 그가 여기로 가자고 제안했다. 생각 안하고 무조건 OK다. 뭐니뭐니해도 난, 내가 먹고 마실 장소를 정하지 않는 모임이나 그걸 주최하는 사람이 가장 좋다. 어떻게 먹었느냐 물어보지 않으면 더더욱 좋다. 나는 사람과 음식을 분리하고, 전자가 위주라면 후자는 신경쓰지 않기 때문. 그러나 정반대의 이유에서 사람들은 나에게 잘 제안하지 않는다.
각설하고, 맛있게 먹었다. 포는 꽤 오랜만인데 적당히 달달한 국물에 부드럽지만 뻣뻣하지 않은 고기, 굵은 면발의 조화가 좋았다. 나중에서야 라임(또는 레몬), 좀 더 적극적인 향채(고수를 주지만 향도 썩 두드러지지 않고 많이 주는 편도 아니다), 숙주 등등의 부재에 대해 생각했지만, 어쨌든 능수능란하면서도 직관적인 맛이 좋았다. 반 미 샌드위치도 마찬가지. 단맛 양념의 돼지고기를 불에 캐러멜화 되도록 굽고 부친 계란을 곁들여 빵 사이에 끼우면 웬만해선 맛이 없기가 더 힘들다. 포 다 먹고 남은 달달한 국물과 함께 먹으면 행복해진다. 어제 트위터에서 말했던, 즉각적으로 와 닿는 맛. 잘 먹어서 일요일에 다시 가서 분짜도 먹었는데, 포 쪽이 조금 더 나았다.
먹고 곰곰이 되새김질해보면, 사실 맛이 없어서는 안 되는 가격(12,000원)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흔히 ‘파스타 대 비빔국수’로 대표되는 한식 대 양식의 대결각을 사람들이 즐겨 쓰는데, 이제 그것도 ‘한식 대 나머지 음식’으로 재정의해야 할 때가 됐다. 적어도 서울만 놓고 본다면 거의 대부분의 세계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현실이기 때문. 또한 그건 근거 없이 선동하는 부류가 잘 써먹는 카드인 ‘문화사대주의’가 ‘약발’을 잃었음도 시사한다. 비단 서양 음식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속으로 우리보다 열등하다고 단정짓는 제삼 세계의 음식조차도 비슷한 형식의 한식보다 비싸게 파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바로 이 포가 좋은 예다. 더군다나 계절까지 여름이다 보니,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 국수 한 그릇에 12,000원이 문제 없다면, 평양냉면 한 그릇이 11,000원인 것이 문제인가? 그렇다고 인식/주장하는 사람들의 근거는 무엇인가? 만약 그것이 ‘한식=익숙한 음식=대중음식=서민적인 것=싸야 한다’라면 말도 안되는 논리며 대단한 착각이다. 평양냉면은 먹는 이에게 익숙할 수 있어도 만드는 이에게 그렇지 않으며(희소성을 생각해보라. 함흥냉면에 비해 소수만이 만든다. 냉면은 함흥식을 팔며 만두만 평양식을 파는 식당을 본적 있는가?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서민적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우리에게 아주 일상적인 뜨거운 국물 음식으로 범위를 넓혀도 마찬가지다. 일단 가격의 문제. 국 또는 탕류의 음식이 6-7,000원인 건 정당할까? 고기로 국물을 내는 목적이 ‘없는데서 쥐어짜 최대한 고르게 나눠 먹기’인 시대를 벗어 났다면, 즉 맛으로 국물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시대가 왔다면 가격과 그에 딸린 기대를 총체적으로 수정해야 한다. 더 이상 멀건 국물에 밥 말아 퍽퍽 퍼먹는 시대여야 할 이유가 없다면 물에 삶은 고기의 맛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맛에 대한 재고도 당연히 필요하다. 우리의 국물은 덩어리 고기나 뼈 마늘, 파 등의 향신채를 한꺼번에 넣고 팔팔 끓여 만든다. 각 단계를 전부 재검토해봐야 한다. 덩어리 고기를 끓여서 국물과 함께 먹는 게 효율적인가? 국물을 내는데도 한참 걸리고, 그 단계에서 고기는 이미 물에 맛을 다 줘버린 상태다. 표면적이 줄어들 수록 육수 추출 시간이 줄어드니 자투리 고기를 잘게 썰거나 갈아 국물을 내고, 그 국물에 맛을 위해 먹을 고기를 따로 삶아 준비할 수도 있다. 다음은 온도. 팔팔 끓이면 온도에 의해 물리적인 대류가 일어나니 국물이 탁해진다. 우리는 탁한 국물을 선호하는가? 아니라면 굳이 이런 방식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 그렇게 끓여대지 않아도 맛은 얼마든지 뽑아낼 수 있다. 또한 이는 재료의 크기와 맞물린다. 마지막은 맛. 자체만 놓고 보면 ‘담백’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거기에 (신)김치를 곁들여 먹는다는 것까지 감안한다. 국물의 기름짐-밋밋함을 덜어내기 위한 조치를 취하는데, 그건 우리가 익숙하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언제나 굉장히 거칠고 세다. 마늘, 생강, 파 등 향채는 생것이라, 또 고추가루는 말려 매운맛을 극대화한 것이라 그렇다. 김치-반찬까지 감안한 전체 맛의 경험을 좀 더 세심하게 조정할 수는 없을까? 오디오의 이퀄라이저를 조절하듯 각 맛의 ‘파라미터’를 들여다봐야 한다. 그 방법을 문자 그대로 도입하지 않더라도, 포의 국물은 참고할만한 방법론을 보여준다. 역사만 생각하더라도 짐작하기 어렵지 않듯, 베트남의 음식 문화는 프랑스의 영향을 받았다. 포의 맑지만 향신료 가득한 국물을 마시면 콩소메가 생각난다. 국물 자체는 맑지만 직화에 그을린 양파와 생강, 팔각이나 계피 등의 향신료를 쓴다. 그래서 맑은 국물 밑으로 다양한 표정을 읽을 수 있다(물론 이렇지 않은, ‘거세’된 국물을 많이 만나지만. 아니면 한방 재료를 썼다는, 다소 역한 국물도). 한편 서양에서는 닭뼈나 소(송아지) 뼈를 오븐에 구워 맛을 끌어낸 다음 국물을 낸다. 이들과 한식 국물을 비교해보자. 모든 재료를 물에 간접 가열해서 끌어내는 맛이 최선일까? 아주 맑지도, 또 맛이 또렷하지도 않아 김치 없이는 넘길 수 없는 국물을 계속 먹어야 할까?
종종 가는 음식점인데 반갑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