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산 2014
지난 주, 예년처럼 통영에 갔다. 늘 가던 시장 횟집에서 굴국밥을 시켰다. 뭔가 허전해서 생선을 한 마리 구워달라고 했다. 돔이 있다던가. 삼 만원이라고 했다. 네, 주세요. 20~25분은 족히 걸려 내 팔뚝보다 더 큰 생선이 등장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죽은 생선이었다. 아무리 큰 생선이라지만 20분을 넘게 구워댔으니 과조리 안 될 재간이 있겠나. 뻣뻣한 살덩어리가 닭가슴살처럼 뚝뚝 떨어졌다. 소금을 뿌려 구웠는데 씁쓸하고 두터웠다. 맛소금인가. 그런것 같았다. 그래도 굴국은 예년과 비슷했다. 아니, 조금 더 나았던 것도 같다. 그릇이 예년과 달라져서 그런 것일 수도 있으리라. 별로 없는 손님과 가게 아주머니가 텔레비전의 통진당-헌재 관련 뉴스를 보고 한 마디씩 말을 보탰다. 물론 들어서 좋을 말들은 전혀 아니었다.
두 번 죽은 생선의 뻣뻣한 살덩어리를 꾸역꾸역 쑤셔넣고 나니 마음도 몹시 뻣뻣해졌다. 사후강직과도 같은 무력함을 느꼈다. 이 생선처럼 뻣뻣한 현실에 내가 뭘 보탤 수나 있는 걸까. 설사 보탤 수 있다 쳐도, 이게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인 걸까. 이 모든 현실이 좋든 나쁘든 결국 ‘문화’라는 울타리 안에 한데 모여 있는 것일텐데 그게 과연 내가 손을 댈 수나 있는 대상이기는 한 걸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니 나름 괜찮게 보냈다고 자부해온 올 한 해가 갑자기 나락으로 확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한참 우울했다.
가장 큰 이유는, 올해 결국 내 이름을 달고 책이 한 권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일을 하지 않았느냐고? 그럴리가. 올해는 참 열심히 일했다. 두 권을 옮겼고, 한 권을 쓰기 시작했다. 새로운 일도 꽤 해보았다. 일간지에 글도 써보았고, 강의도 해보았다. 아, 팟캐스트도 시작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 트레이너를 찾아 예전보다 더 규칙적이고 체계적으로 운동을 꾸준히 해서 체력을 길렀고, 덕분에 3~4년 동안 포기했던 하프 마라톤도 두 번이나 완주했다. 40대의 개시에 찾아온 불안감을 떨치고자 더 열심히 살려고 했고, 돌아보면 목표를 어느 정도 이뤘다. 한마디로 부끄럽지는 않게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책이 한 권도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나는 우울했다. 마치 글로 먹고 사는 사람의 자격을 박탈 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물론, 올해 나오지 않은 책은 내년에 나올 것이다. 여러 외부 요인 때문에 각자의 자리에서 끌탕하던 책이 드디어 제작에 들어갔노라는 편집자의 전화를 받고 우울함을 조금 덜었지만, 그래도 올해가 이렇게 지나간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2014년은 이렇게 지나간다.
녹사평역 육교인 것 같군요.
올해 나오는 책 기대하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네, 맞습니다.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