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 다음날
아마도 술은 죽을 때까지 좋아하겠지만(링겔 또는 입에 깔대기를 꽂아 로마네 꽁띠나 샤토 페트루스 같은 걸 몸에 넣으면서 임종을 맞이하고 싶다. 그걸 위해 적금이라도 부어야 할듯…), 언젠가부터 술자리를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스스로 빚어내는 ‘술+말’의 조합을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 음주의 정당한 목적일 수도 있고 또 어쩌면 그래야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점차 싫어진다. 혹 그건 불특정한 상대, 또는 크게 보아 사람을 향한 불신은 아닌가? 생각은 거기까지 가지를 뻗는다.
그래서 음주 다음 날은 언제나 기분이 좋지 않다. 물론 알코올은 기본적으로 ‘다우너’이므로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겠지만, 늘 ‘그게 전부는 아니다’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기분을 해결하는데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고 믿는다.
1. 집구석에 틀어박혀 있는다: 대부분의 경우 음주 다음날엔 숙취에 시달리므로, 이래저래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이다. 아무 말도 안해서 이틀 동안 쏟아낸 말 총량의 균형을 맞춘다.
2. 밖에 나가 또 사람을 만난다: 1과 반대로 아예 더 말을 많이 해버리는 거다. 무감각해질때까지. 어쩌면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애초에 직장 등등에 다니지 않는 나로서는 원하더라도 자주 써먹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3. 또 술을 마신다: 어제를 잊어버리기 위해 오늘 또 술을 마시는 거다. 말하자면 ‘hair of the dog’의 수법일텐데, 그럼 분명 그 다음 날도 그 전날과 전전날을 잊기 위해 마시고, 또 그 다음 날은 그 전날과 전전날과 전전전날을 잊기 위해… 아마도 음주 후유증이 복리로 덩치를 불려 사람을 잡아먹을 것이므로 써서는 안되는 방법이다.
오늘은 동네 맥도날드에서 빅맥 하나를 허겁지겁 씹어 먹고 드물게 2를 썼다. 주문을 하고 나서 디럭스 슈림프를 먹어볼 걸 그랬나, 후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