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볶음탕 무용론
고백하건대 ‘닭도리탕’이라는 음식에 신경을 써 본 적이 없다. 내 가족의 메뉴엔 없는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친가에선 삼계탕/곰탕 이외의 조리 방법으로 닭을 먹은 기억이 없으며, 외가에선 언제나 ‘닭찜’이었다. 간장 바탕으로 맵지 않았으며, 자작한 국물에 큼직하게 깍둑썰기한 당근과 감자가 들어 있었다. 밥상 한 가운데 놓인, 꽃무늬 박힌 하얀 법랑 냄비는 아직도 기억이 난다.
어쨌든, 그런 닭도리탕을 국립국어원에서 ‘닭볶음탕’으로 “순화”시키셨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창구에서 설명을 잘 해놓고 있으므로, 나는 그에 대해 전반적으로 동의한다는, 즉 국립국어원은 순화가 아닌 개학을 하고 있다는 입장과 함께 링크를 남기는 수준까지만 논하겠다. 그리고 더 중요하다고도 할 수 있는 음식 및 요리의 측면에 대해 살펴보겠다.
1. 왜 하필 ‘탕’인가?
‘도리탕’이든 ‘볶음탕’이든, 이 음식이 정말 ‘탕’인지 모르겠다. 저런 식의 국어 “순화”가 너무 많아서 기관에게 공신력을 주기가 어렵지만, 어쨌든 사전을 찾아보면 탕은 ‘1. 국의 높임말, 2. 제사에 쓰는, 건더기가 많고 국물이 적은 국’을 일컫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에게는 국물과 건더기의 비율, 국물의 원료 두 가지가 걸린다. 전자부터 따져보자면, 분명 제사상에 오르는 탕은 국보다 건더기의 비율이 높지만 통상-구글 이미지 검색으로 걸리는-적인 닭도리탕과는 다르게, 거의 대부분의 건더기가 국물에 잠긴다. 게다가 국물의 점도(아주 진하지는 않아도 통상적인 탕보다는 탁하고 걸쭉하다)나 내는 원료(닭 그 자체)까지 감안한다면 탕은 절대 아니고, 찜보다는 오히려 찌개에 더 가깝다.
2. ‘볶음’ 무용론
‘닭을 물에 넣고 끓인 다음, 양념을 풀어 넣고 더 푹 끓인다’가 통상적인 닭도리 및 볶음탕 조리법의 핵심인 것 같은데, 이는 닭의 맛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조리법이 아니다. 끓인다고 해서 양념이 닭살 속까지 배이는 것도 아니며, 조리 시간을 늘려 봐야 가슴살 같은 부위는 퍽퍽해지다 못해 부스러질 것이다. 게다가 껍질은 불어서 누글누글해질테니 질감이 기분 나쁠 것이니 차라리 벗겨내고 먹는 편이 낫겠다. 또한 양념에 재워둔다고 해서 능사가 아닌 건, 오래 끓여 별 효과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재움(marinade)는 표면에만 침투하니 불고기처럼 얇게 저민 부위에나 효과적인 조리법이다. 도리든 볶음이든, 우리가 현재 통상적으로 쓰고 있는 조리법은 최선이 아니다.
요즘은 여기에서 한 술 더 떠 국립국어원에서 ‘볶음탕’이라 “순화” 시킨 다음 아예 닭을 볶다가 끓이는 레시피가 나왔다던데, 그건 더 비효율적이다. 우리나라에서 통하는 ‘볶음’은 낮은 온도의 팬에 재료를 최대한 많이 넣어 조리하므로 통상적으로 볶음에서 얻을 수 있는 효과, 즉 부드러운 재료의 그 부드러움을 간직하는 빠른 조리와 마이야르 반응 등으로 인한 맛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재료에서 나오는 수분이 수증기로 변해 열원의 온도를 떨어뜨리니, 재료는 분명 식욕 떨어지는 회색빛으로 변하고 맛의 혜택을 입지 못할 것이다.
그럼 대체 어쩌라는 건가? 닭이라는 재료의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 껍질과 살 사이에 지방층이 있으며, 껍질은 마이야르 반응의 훌륭한 후보다. 따라서 냄비 등에 기름을 두르고 연기가 날 정도로 달군 뒤, 껍질면이 그 바닥에 먼저 닿도록 지진 다음, 물이든 육수든 그 팬 바닥에 붙은 맛 덩어리를 긁어내고, 양념과 닭을 더해 끓이면 된다. 국물이 삼삼하게 졸아들때까지 기다리면 살이 부서질 수 있으므로, 더 공을 들이고 싶다면 적당한 시점에서 닭 및 건더기와 국물을 분리한 다음 국물만 적절히 졸여 닭에 끼얹으면 된다. 그리고 조금 더 신경을 쓰고 싶다면 금방 퍽퍽해지는 가슴살은 아예 빼놓고 허벅지나 봉 위주의 부분육으로 만들면 된다. 맞다, 사실 이건 꼬꼬뱅 등, 서양식 닭 스튜의 조리법이다. 이것이 서양식이므로 우월한가? 당연히 아니다. 다만 이러한 접근이 닭이라는 재료와 잠재적인 맛을 더 잘 이해하고 있으므로 응용하자는 것 뿐이다. 현재 우리의 주요 조리법은 다른 방법으로 얻을 수 있는 복잡한 맛의 가능성을 전부 차단하고 압도적인 양념에만 기대어 비효율적이다. 조미료를 넣지 않으면 여운도 없이 모든 맛이 거의 점으로 수렴한다. 도리든 볶음이든 이 “탕”도 마찬가지의 한계를 가지고 있으니, 말의 적확한 사용을 따지는데 그쳐서는 안된다.
*사족
위에서 언급한 방식으로 간만에 닭”찜”을 해보았다. 압력솥을 써 조리 시간을 30분으로 단축했고, 마지막에 국물을 더 조려 끼얹었다. 많이 자란 닭일 수록 근섬유가 질겨 조림에 맞는다고 생각해 가장 큰, 그래봐야 1.3kg 밖에 안 되는 “토종”닭으로 끓였는데, 살이 뼈에서 발려 나올 정도로 끓여도 너무 질겨 씹을 수가 없었다. 다리, 특히 봉 부분이 볼록하지 않으면서 긴 “토종”닭을 사면 늘 이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토종닭…. 전 개인적으로 아예 닭죽처럼 흐물흐물해질때까지 고아 버리지 않으면
일반적인 조리법으로는 너무 찔기다고 생각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