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보다 의식: 비스킷과 바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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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여유를 부린 광복절 사흘 연휴, 한반도를 방문하신 프란치스코 교황 성화의 은총에 힘입어, 의식에 더 가까운 두 가지 빵에 도전했다. 미국 남부의 비스킷과 프랑스의 바게트. 먼저 비스킷부터 따져보자면, 이건 도전한지가 이미 십 년은 족히 되었는데 아직 단 한 번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오죽하면 이런 글까지 썼겠는가. 만들 때마다, 즉 실패할 때마다 트라우마가 커져서 요즘은 별로 도전하지 않는데 “브런치” 아이템도 돌아가며 먹다먹다 질려 또 간만에 도전했다. 토요일 밤, 소파에 누워 늘 읽던 레시피를 쭉 읽다가 이거다 싶은 것도 없고, 뭔가 놓치는 게 있는가 싶어 유튜브를 뒤졌는데 다음과 같은 비디오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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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디오와 딸린 레시피 또한 크게 다를 건 없다. 또한 비스킷 성애자가 본다면 덜 부풀어오른 것일 수도 있다(그들은 이 정도는 되어야 진정한 남부의 비스킷이라 말할 것이다). 하지만 ‘글루텐 발달은 비스킷의 적’이라 믿어 여태껏 반죽을 자제해온 나에게 최소한의 도전정신을 불어넣어 줬다. 물론, 이러한 방법을 몰랐던 건 아니다. 내가 참고로 하는 비스킷/스콘/쇼트브레드 레시피만 찾아봐도 반죽을 접거나, 얼린 버터를 강판에 갈아 밀가루와 섞거나 하는 각양각색의 방법을 소개한다. 다만 그것이 ‘케바케,’ 즉 다른 비스킷이나 스콘마다 달리 적용하도록 되어 있어 일관성을 찾지 못했던 것일 뿐. 어쨌거나 그래서 ‘실패해봤자 더 이상의 트라우마는 없다’는 생각에 반죽을 접어보았고 내가 만든 것치고는 적당히 부풀어 오른 비스킷이 나왔다는 이야기. 높은 온도에서 구워 색이 많이 났는데 난 이 편이 더 좋다. 비스킷 반죽은 늘 버터밀크로 하라고 하는데, 산성의 걸쭉한 유제품이면 되므로 요즘은 그릭 요거트와 물, 또는 무지방 우유를 1:1로 섞으면 충분하다. 레시피는 모든 비스킷 레시피가 그렇듯 간단해서 굳이 내가 옮길 필요는 못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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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은 바게트. 사실 바게트라는 건 에피, 불르 등등과 더불어 반죽의 모양을 의미하지만 그래도 이것이 바게트라면 뭔가 더 특별한 것만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그리고 만들어 보면 그 형태 잡기며 그에 따른 굽는 방법 등등이 만만치 않다는 걸 확인도 할 수 있다. 그래서 별로 도전할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개중 친절한 레시피를 발견, 도전해보았다. 프랑스 밀가루의 비율을 재현하기 위해 체로 겨를 걸러낸 통밀가루를 일부 더하고, 반죽을 30분에 한 번씩 손으로 뒤집어 주고, 냉장고에서 24시간 이상 저온 발효했다가 몇 번의 휴지를 거쳐 모양을 잡고… 특유의 색깔을 내려면 가수분해성 몰트(Diastatic Malt)를 소량 더하라는데, 방산시장에서 파는 영국산은 당화되지 않도록 열처리를 거친 것이라 주로 맛을 위한 용도로 쓰고, 열처리를 거치지 않은 몰트는… 바로 식혜를 만드는 엿기름으로 동네 슈퍼에서 한 봉지 2,500원에 살 수 있다. 고풍스런 포장에 ‘아주존’ 상표의 위엄까지. 하여간 이걸 곱게 가루 내어 써보았는데 일단 같은 효과는 났다. 부피가 좀 더 커졌어야 하는데 최소한 바게트 같은 모양과 색, 맛은 났다(실무자님들 혹시 이게 그 몰트가 아니라면 뭘 써야되는지 제보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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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만들지 않고 앞으로도 심신의 안녕을 위해 잘 만들지 않을 두 가지(특히 바게트)를 만들며 ‘의식/표상으로서의 음식’에 대해 생각했다. 이런 음식이 그런 취급을 받는 근본적인 요인은 단순함이 아닐까. 재료의 가짓수도 단순하고, 공정 또한 특별하달 건 없다. 그래서 결과는 뚜렷한데 거기에 이를 수 있는 과정에서 해석의 여지가 많이 생긴다. 재료와 그 다루는 방법 모두에서 너무나도 복잡해 고안해낸 사람이 아니면 만들 수 없다시피한 요리들, 말하자면 현대요리류와 비교할때, 바로 그러한 차이가 단순한 음식을 역설적으로 음식 이외의 지위에 앉히는 것은 아닌지.

 

2 Responses

    • bluexmas says:

      네 근데 제가 알기로 이건 열처리를 거쳐 주로 맛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