돔페리뇽 빙수-실패한 고급화의 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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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of is in the pudding’이라는 표현이 있다. 역사가 1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All the proofe of a pudding, is in the eating’라는 의미다. 즉, ‘먹어봐야 안다’라는 뜻이다.

원래 음식이라는 게 이렇지만 굳이 안 먹어봐도 되는 것들도 많다. 특히 비싼 음식일 경우, 컨셉트가 잘못되었다면 그렇다. 매체에서 이 돔페리뇽 2004 빈티지 빙수에 대한 기사를 보았을때도 그렇게 생각했다. 잘못된 고급화 전략이기 때문이다. 무수히 많은 방법이 있겠지만, 설사 없더라도 맛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재료 하나에 ‘몰빵’하는 고급화는 가장 원시적인 방법론이다. 한때 유행이었던 캐비아 버거/피자 등이 그렇다. 물론 캐비아 한 숟가락을 얹으면 맛이 조금 더 나아질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캐비아의 존재는 전체의 금전적 가치를 올려주는 것만큼 맛의 조화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냥 돔페리뇽도 모자라 빈티지(샴페인이 빈티지, 즉 연도 표시를 했다는 건 여느 해보다 더 좋은 결과임을 의미한다)를 썼다는 이 빙수는 사실 그 자체로 ‘나는 실패의 길을 기본으로 걷는다’라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생각이었음에도 혹 건질만한 것이 있는지, 아니면 그 실패의 정도가 어느 만큼인지 궁금해 동대문의 JW 메리어트 호텔에 가보았다.

굳이 고급화까지 가지 않더라도 이 빙수의 설정은 여러 모로 긍정적이지 않다. 따져보자. 일단 샴페인의 성질 자체부터 걸린다. 돔 페리뇽은 드라이하고, 바삭하다(crisp) 못해 버석거린다. 거기에 신맛까지 감안하면 사실 입맛을 돋워주는 식전주지, 식후주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술이 아니다. 실제로 레스토랑에서는 식전주로 이렇게 드라이한 발포 와인을 마신다. 빙수와 함께 먹는다면 단맛을 다 씻어가 되려 디저트에 방해가 되는 술이다. 일단 그 맥락 자체가 돔 페리뇽을 살려주는 방향이 아니다. 그리고 알코올은 단단하게 얼지 않으므로 소르베를 만들어도 금방 녹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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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재료의 선택이다. 복숭아를 선택한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게 너무 단단하고 아삭거리며 신맛이 강하다면 문제다. 설사 잘 익어 즙이 많고 달더라도 돔페리뇽의 버석거림이 깎아 낼텐데, 되려 그와 신맛의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디저트에서 기대할 수 있는 풍성한 맛을 전혀 선사하지 않았다. 게다가 얼음과 닿은 부분은 얼어버리니, 아삭함을 넘어 단단해진다.

문제는 심지어 직원마저 ‘제철이 아직 아니라서 그렇다’라고 인정할 정도로, 복숭아에 대한 사전 인식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럼 대체 왜 이 설정을 고집해야 할까. 물론 돔페리뇽의 향과 복숭아가 죽이 잘 맞지만, 그 둘 사이에만 한정되는 상황도 아니다. 향은 물론이거니와 껍질에서 나는 씁쓸함까지 감안한다면 살구나 자두 등 핵과류와는 모두 궁합이 잘 맞는다. 복숭아의 제철이 돌아오지 않았다면 살구도 있고, 자두도 있다. 게다가 신라호텔에서 내는 애플망고처럼 다소 조리를 한 듯한 질감의 과일이 아니라면, 이렇게 생과일을 다량으로 턱턱 얹는 건 현명한 판단이 아니다. 조리가 무엇인가. 물론, 이 빙수의 복숭아는 익혀서 맛을 빙수에 더 적합하게 만들 수 없을 정도로 시고 단단한 것이었으니 큰 차이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뜯어보면 이 빙수에서 호텔 수준의 고급 조리라고 여길 수 있는 부분은 사실 맛에 큰 영향도 없고, 되려 얼음 때문에 딱딱하게 씹히며 이에 달라붙는 초콜릿 링 뿐이다.

물론 긍정적인 구석은 있다. 75,000원짜리 빙수-원래 2인 기준-를 시키면 같은 돔페리뇽 2004 빈티지를 6만원 추가금에 두 잔 마실 수 있다. 난 혼자 간 터라 3만원에 한 잔은 안되느냐고 물었는데, 안된다고 해서 그냥 6만원에 두 잔을 열심히 마셨다. 두 사람이 135,000원을 내고 엄청난 양의 빙수와 더불어 덤으로 돔페리뇽 빈티지를 마시는 경험을 가진다면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만 머리를 써도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 빙수와 돔페리뇽 빈티지는 처참한 실패요 낭비다. 대안? 많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샴페인은 어차피 식전주이므로, 차라리 오후 티 코스와 같은 설정으로 돔페리뇽+짠맛 위주의 핑거푸드(savory finger food, 카나페 등)+ 양을 적당히 줄인 디저트 개념의 빙수와 같은 세트 메뉴도 가능하다. 빙수에 담긴 생각 없음을 조금만 덜어낸다면 135,000원의 범위 내에서 충분히 실현 가능하고, 되려 더 다양한 경험도 할 수 있다.

그리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생각해보면, 아무리 생각해봐도 돔페리뇽은 이 맥락에 전혀 어울리는 술이 아니다. 생각해보자. 왜 우리나라에서 특히나 잘 팔린다는 모스카토 다스티는 안되는가? 고급으로 골라 두 잔+모스카토 다스티 셔벗과 같은 술에 조린 과일을 얹은 빙수정도라면 되려 디저트로는 훨씬 나을 것이다. 왜 그런 카드를 놓아두고 하필 돔페리뇽일까? 그것이 더 고급화에 직접적으로 먹히는 카드이기 때문에? 굳이 소매가 30만원에 가까운 샴페인을 따서 디저트에 쓰겠다면, 그걸 활용하는데 원동력이 되는 생각 또한 그 수준에 맞아야 한다. 늘 말하지만, 음식의 가격이 비싸질 수록 그 가격은 정신과 철학을 위한 것이어야만 한다. ‘육체는 정신을 지배한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좋은 재료와 그 맛의 궁합을 찾고, 적합한 손질을 거쳐 조리해 보기 좋게 내는 그 모든 행위를 감독하는 정신을, 이 비싼 빙수에는 초콜릿 링에 덕지덕지 붙여놓은 금가루 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서울이 이렇게 생각없는 졸부 놀음이 먹힐 정도의 수준 밖에는 안된다는 말인가?

3 Responses

  1. JY CHOI says:

    정말 저랑 똑같은 생각을 갖고계신분이 있다니 놀랍습니다!! 남편소개로 사이트 놀러왔다가 정독하고 갑니다~ 앞으로도 촌철살인 같은 리뷰 기대하겠습니다~

  1. 09/11/2017

    […] 위에 올린 과일은 더 딱딱해진다. 몇 년 전 먹었던 동대문 매리어트 호텔의 돔페리뇽 복숭아 빙수가 아주 좋은(혹은 나쁜?) 예였다. 별 맛이 없는 소위 ‘딱복’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