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의 이해(12) – 음식 이론 서적의 분류와 의미, 쓰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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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틀맨>이 첫 돌을 맞았다. 1년을 돌아보며, 맨 처음 썼던 원고를 열어 본다. ‘아는 만큼 먹을 수 있다’고 썼다. 그리하여 이 칼럼이 독자들의 먹는 즐거움에 보탬이 되어왔기를 바란다. 혹시라도 미진했던 구석을 짚고 넘어가기 위해, 이번 달에는 음식 관련 이론의 주요 가지를 한데 정리한다. 음식을 바라보는 시각과 보충을 위한 관련 서적까지 소개하는 자리다. 식문화 관련 서적의 현실은 음식 그 자체만큼이나 척박하다. 국내 서적은 지나치게 감성 위주며 해외 서적은 번역 소개가 원활하지 않다. ‘그림의 떡’이 지나치게 많아봐야 허기만 더해지니, 책을 고르는데 애를 먹은 것도 사실이다. 외서 위주로 골라봐야 실질적은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세상은 넓고 읽을 책은 많으니, 큰 수고 없이 손에 넣을 수 없는 것들 위주로 골라 보았다(원저자/역자/출판사 순. 뒤의 둘을  명시하지 않았을 경우 외서다).

미안하게도 딱딱한 이야기부터 꺼내야 되겠다. <과학>이다. 언급하면 예상보다도 더 부정적인 반응을 많이 접한다. 손맛과 반하는, 나아가 그 의미를 죽이는 개념으로 보는 탓이 크다. 그렇지 않다. 오히려 과학은 손맛에 접근하는 시간과 노력을 줄여주는 도우미 역할을 한다. 인과관계를 정확히 밝혀 반복이 가능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빵의 예를 들어보자. 우연히 발효를 발견하기까지 인류는 딱딱한 납작빵(flatbread)를 먹고 살았다. 덕분에 한결 나은 빵을 먹었지만, 그 원인이 효모며 당을 먹는 신진대사 덕분이라는 걸 밝히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덕분에 이제는 배양시킨 효모로 보다 균일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한편 진짜와 가짜를 가리는데도 도움을 준다. 스테이크가 좋은 예다. 겉 지지기(searing)는 순전히 맛에만 공헌한다. 육즙을 가둔다는 이론은 이미 80년 전에 반박 당했다. 그러나 서울에는 아직도 그런 이야기를 하는 스테이크 전문점이 있다. 굳이 맛을 볼 필요도 없다.

게다가 그 과학이라는 게 엄청나게 복잡한 이야기도 아니다. 중학교, 후하게 쳐 봐야 고등학교 수준이다. 김치를 절이면 왜 짜질까? 소금 때문에 삼투압 현상이 일어나 내부의 수분이 빠져나오기 때문이다. 딱 그 수준이다. 지레 겁을 먹을 필요가 없다. <음식과 조리(해롤드 맥기/이희건/백년후)>가 증명한다. 이 책에는 오해가 많이 얽혀있다. 첫 번째는 쓰임새다. 처음부터 읽는 책이 아니다. 금방 흥미를 읽을 확률이 높다. 빵이면 빵, 스테이크면 스테이크, 알고 싶은 부분을 찾아 읽는 레퍼런스나 가이드로 활용해야 한다. 죽 읽기에는 오히려 <아인슈타인이 요리사에게 들려준 이야기(로버트 L.월크/이창희/해냄)>이 낫다. 두 번째는 역할이다. 알파되, 오메가는 아니다. 이 한 권 덜렁 갖추고 전문가적 지식을 갖췄다고 마음 놓으면 곤란하다는 이야기다. 종종 그런 경우를 본다.

보다 가벼운 주제로 넘어가보자. 편의상 <주방>이라 이름 붙이겠다. 일반인이 잘 모르는 레스토랑 주방의 세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가벼운 이해를 돕는다. 스타 셰프 마리오 바탈리의 전기에 가까운 <앗 뜨거워 Heat (빌 버포드/강수정/해냄)>와 <180일의 엘불리(리사 아벤드/서지희/시공사)가 있다. 둘 다 장기 취재를 바탕으로 써, 재미있으면서도 배울 거리를 준다. 지은이가 직접 주방에서 몸 바쳐 일한 경험을 담아 보다 더 생생한 전자가 낫다. 같은 주제로 보다 더 진지한 읽을거리를 찾는다면 미국의 전문 필자 마이클 룰만의 CIA 체험기<셰프의 탄생(The Making of Chef)>도 있다.

다음은 <정치>다. 패스트푸드와 유전자 조작 콩 등, 이젠 힘의 논리가 먹을거리를 좌지우지하는 시대다. 그 논리의 인과관계를 알려준다. 한편 너무 뻔하고 즐거움 위주로 다루고 싶기에 본 칼럼에서는 크게 비중을 두지는 않는다. 하지만 식탁의 주체가 되려면 큰 그림 정도는 담아두는 게 좋다. 그를 위해 <식품주식회사(에릭 슬로셔/박은영/따비)>가 있다. 제목이 내용을 충분히 설명해준다. 한편 <잡식 동물의 딜레마(조윤정/다른세상)>를 비롯, 마이클 폴란의 책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때로 우리나라의 현실과 너무 멀어 보이지만, 식품 소비에 있어 보다 윤리적인 주체가 되기 위해 꼭 알아야하는 주제를 다룬다.

한편 <역사>와 <문화>도 있다. 맛 평가를 못하다보니 다들 이쪽에만 지나치게 매달리는 경향이 있어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바탕의 바탕을 다지는 분야다. <소금>이 아쉽게도 절판되었지만, 마크 쿨란스키의 책 가운데 <대구(박중서/RHK)>가 최근 개역 및 출간되었고 <맛의 유혹(이은영/산해)>가 건재하다. <Choice Cut>이라는 원제답게, 미식부터 단 음식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룬 역사 속의 주요 저작을 발췌해 담았다. 스스로 옮긴 책을 소개하기는 좀 낯간지럽지만 <모든 것을 먹어본 남자(북캐슬)>도 좋은 책이다. 역사 서문에 ‘음식 문화 비평서’라 정의 내렸듯, 변호사의 꼼꼼함이 한데 아우르는 과거와 현재가 읽는 이의 식견을 넓혀준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지만 꼭 추천하고 싶은 책으로 마무리하겠다. 캐런 페이지와 앤드류 도넨버그의 <The Flavor Bible>과 <What to Drink with What You Eat>이다. 레퍼런스 북으로, 셰프와 소믈리에 등 현업 종사자를 취재해 음식과 음료의 맛 짝짓기 원칙과 실례를 담았다. 서양 음식의 기본을 이루는 맛의 조합을 이해하는 데도 좋고, 후자는 웬만한 와인 가이드를 훌쩍 뛰어 넘어 한 권씩 옆에 둘만하다.

-젠틀맨 2013년 9월호

 by bluexmas | 2014/04/19 12:20 | Taste | 트랙백 | 덧글(2)

 Commented by 큐팁 at 2014/04/19 22:28 

‘맛의 유혹’은 어떤 책인가 해서 찾아봤더니 예전에 ‘음식사변’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것을 제목을 바꾼 것이더군요. 지금도 생각날 때마다 자주 꺼내서 발췌독하는 책입니다^^ <재료>라는 카테고리가 있다면 마귈론 투생 사마의 ‘먹거리의 역사’를 개인적으로 추천하고 싶네요!

 Commented at 2014/04/26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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