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영혼의 성지 경리단길] 맥파이- 맥주와 안주

오랜만에 맥주를 마셨다. “자유 영혼의 성지” 경리단길의 맥파이는 서너대여섯번 간 것 같은데, 어제 마시면서 이것저것 생각이 들었다. 정리해보자.

1. 맥주

채 여덟 시가 안된, 이른 시각에 갔는데 자기네 에일이 없다고 했다. 오늘 입고된다고 했는데, 한 시간쯤 지나고 손님이 많아지니까 나오더라. 오늘 낼 것을 미리 풀었는지, 그 시각에 가져왔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이번 포함 한 절반 정도 그네들의 맥주가 없는 상황을 겪었다. 생산 가능한 양보다 수요가 많은지 어쩐지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없으면 손님은 실망한다. 모든 사업자가 손님에게 제공해야만 하는 꾸준함은 무엇보다 질에서 가장 중요하지만, 그것 또한 존재 자체가 보장되어야 따질 수 있다. 달리 말해 물건이 없으면 질이고 뭐고 따질 상황조차 아예 생기지 않는다는 것. 손님과 약속한 휴일 아닌 때 쉬지 않는 것, 영업시간을 지키는 것, 파는 물건이 떨어지지 않도록 재고관리 하는 것 모두 굉장히 중요한 전제조건이다.

가격(5,000/파인트)까지 감안할때 맥파이의 이름을 붙여 파는 맥주에 전혀 불만이 없지만, 대개 함께 파는 수입 맥주보다는 살짝 아쉽다. 원인이 정확하게 재료나 양조 과정의 한계인지, 아니면 최종적으로 맛을 확인하는 관리자가 그 정도까지를 추구하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갈때마다 수입 맥주가 조금씩 바뀌는데, 중상 정도의 상태나 품질이라면 그들의 맥주를 마시며 아쉽다고 느끼는 구석을 채워준다. 어제도 메뉴에 오른 세 가지를 다 마셨는데 밀 맥주는 그런 종류에서 항상 기대하는 시트러스 향 등이 별로 없이 탁했지만, 8도 가까이 되는 또 다른 페일 에일은 높은 도수가 큰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두툼함을 채워줘 만족스러웠다. 공간은 언제나 침침하고 시끄러워 파는 맥주와 어울린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전반적으로 떨어지는 구석은 없다. 다만 이 정도의 수준은 굳이 영어로 치자면 ‘one of something’이어야 맞는데, 농담이라고도 믿기 어려운 “자유 영혼의 성지”와 같은 말마저 꺼내는 것처럼 이런 곳들을 무슨 ‘one’처럼 떠받들면 곤란하다. 이만하면 만족스럽지만 더 나아지기를 멈출 이유는 없다는 말이다.

2. 안주

피자 말고 다른 안주가 있는줄 몰랐다. 일행이 뭔가 안주거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물어봤더니 아몬드와 치즈가 있다는 것. 사진과 같은 걸 오천원에 팔았는데, 훌륭했다. 아몬드는 구워서 카이엔 페퍼와 소금 등등에 버무렸는데, 아무래도 매운맛과 맥주의 쌉쌀함이 좀 충돌하지만 자기들이 내는 맥주맛과는 아주 잘 어울린다. 치즈도 마찬가지. 엄청난 건 아니지만 최소한 가공치즈는 아니다. 게다가 둘 다 탄수화물 위주도 아니라는 점에서도 점수를 줄만하다. 다만 아몬드의 경우 기름에 한 번 살짝 버무려준다면 양념이 훨씬 더 잘 붙어 접시 바닥에 깔리지 않을 것이다.

정말 별것 아닌 오천원짜리 안주 한 접시지만, 먹으면서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왜 이런 걸 찾기가 힘들까. 엄청난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말도 안되는 언론플레이나 해대는 국산 맥주보다는 훨씬 나은 에일 한 파인트에 오천원, 그걸 두 사람이서 서너잔은 마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안주 한 접시에 오천원. 이런 걸 만들어 파는 사람들은 외국인. 이 엄청나지 않은 걸 실행에 옮기는 것도 이 땅에 살고 있는 외국인이 해야 한다면 대체 우리는 뭘 잘 할 수 있는 것일까. ‘이건 외국 음식이고 외국 문화니까 외국인이 잘 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니냐’고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말이 안되는 것이, 1. 한국인의 외국, 또는 서양 문화의 노출도는 만만히 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이게 무슨 삼대에 걸쳐 가업으로 이어온 맥주가 아니며, 안주는 그냥 파는 아몬드에 양념만 해서 구워 파는 치즈를 썰어낸 것 뿐이다.  2. 그럼 한국 사람이 한식은 잘 알고 있나? 늘 먹는다고 해서 아는 것도 아니고, 또한 늘 먹지도 않는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어쩌면 착각일 수 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이다. 누구에게 돈을 내든 그에 맞는 대가만 얻어낼 수 있으면 큰 상관이 없다. 하지만 가끔은 뒷맛이 씁쓸할 때가 있다. 홍대의 ‘마카롱’이랄지 이런 맥주 가게들, 심지어는 그 나라 사람들을 불러다가 만드는 태국이나 베트남 음식까지 생각해보자. 맛있다며 떠받드는 곳 가운데 상당수가 현지인의 손을 거친 음식을 내놓는다. 물론, 누구에게든 무엇이든 배울 수 있으면 배워야 나아지기는 한다. 하지만 정말 배우고는 있는지, 또 배울 마음은 있는지, 그도 아니면 이런 게 그렇게 엄청나게 어려운 것인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맥주든 뭐든, 이 정도 수준으로 만드는 게 엄청나게 어려워서 발전이 안되고 있나? 세상에 쉬운 것 없고, 음식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폭격이라도 맞은 듯 포괄적으로 수준이 낮기도 어렵다. 그럼 대체 그 원인은 무엇인가? 누군가는 오천원에 오천원짜리 안주를 내놓는데, 어딘가에서는 만 오천원에 가공치즈를 담은 삼천원짜리 안주를 내놓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게 그저 단순히 영업 철학의 차이일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by bluexmas | 2014/04/18 13:26 | Taste | 트랙백 | 덧글(5)

 Commented at 2014/04/18 15:4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14/04/18 21:4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Chelsea Simpson at 2014/04/18 22:54 

깊이 공감합니다. 외식할 때 자주 드는 생각이었는데 bluexmas님께서 꼭 집어 말씀해주셨네요.

 Commented by 맹한 북극여우 at 2014/04/18 23:20 

언제한번 작가님이랑 맥주한잔 하고싶어지는 글이네요. 잘봤습니다

 Commented at 2014/04/19 00:59 

비공개 덧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