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격이라고는 없는 ‘매식의 품격’
어제 새벽에 일을 하면서 무심코, 그것도 간만에 책 제목으로 구글 검색을 했다가 어두운 책상에 앉아서 육성으로 뿜었다. 큭. ‘매식의 품격’이래, 크하하하. 즐거울 것 없는 요즘, 간만에 박장대소했다. 평소처럼 아랫집 남자가 나의 끊임없는 지랄에도 담배를 피우러 창문을 열었다면 ‘저 남자가 드디어 미쳤나?’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아아, 넘겨짚을 사람들이 있을 것이므로 미리 못박아두겠다. ’00의 품격’이란 표현이 내 책 <외식의 품격>에서 처음 쓴 것도 아니다. 당연히 상표 등록 같은 것도 해두지 않았고 한다고 해서 받아줄리도 없다. 그러므로 저 글을 기획한 에디터나 쓴 이가 법적으로 책임을 질만한 도용이나 표절 같은 행위를 저지른 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짜증이 안 날리는 없다. 내 책이 저 기사를 기획하고 쓰는데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난 그럴리 없다고 본다. 출간 직후 각종 매체에 책을 보냈으니 매체에 안 갔을리 없으며, 자칭 “맛 칼럼니스트”라는 글쓴이가 내 책의 존재를 전혀 모를리 없다. 무슨 자뻑 아니냐고? 네가 뭐 유명한 존재라도 돼서 사람들이 책 내면 다 알고 찾아 읽어야 하는 거라고? 물론 그런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실 글에서도 드러난다. 글쓴이는 외식과 매식을 왜 굳이 구분하려 드는가? 그 차이를 나도 당연히 안다. 워낙 외식을 하지 않는 집에서 자라서, 우리 가족은 밖에 나가서 끼니를 먹을때마다 ‘외식’과 ‘매식’의 차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게다가 ‘음식을 팔고 사 먹는 사람이 품격을 만든다. 어떤 일의 내력과 사정을 뻔히 알고 그 일과 관련된 상황에 익숙해져서’는 결국 내가 <외식의 품격> 머릿말은 물론, 기회 닿는 지면마다 이야기하는 ‘알아야 더 잘 먹을 수 있다’나 다름 없다.
만약 이 글을 기획하고 쓴 무리가 경험 별로 없는 에디터와 맛집 기행이나 다니는 어린 빠워 블로거라면야 그런가보다 할 수 있다. 최근에도 책을 그냥 동의없이 ‘복붙’해놓고는 “참고”했다고 밝힌 기사 때문에 작성한 기자와 서로 유쾌할 수 없는 이야기를 나눈적 있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이 그런 건가? 담당 에디터는 이 바닥에 전혀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알 수 있는, 독특한 문체의 창시자가 아니냐는 이야기를 듣는 베테랑이다. 한편 글쓴이는 위에서도 밝힌 것처럼 자칭 “맛 칼럼니스트”로 종편 방송 같은데도 출연한다. 뭐 에디터야 얽힐 사람도 아니니 그런가보다 하지만, 난 글쓴이에게 정말 화가 난다. 여태껏 나는 그가 386 운동권의 정치논리를 글에 음식의 본질보다 앞세워 써 인지도를 얻었으며 그걸 발판 삼아 알맹이 별로 없는 책을 잘도 냈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그의 전직이 농업 매체 담당 기자이므로 작물과 품종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 있으며, 그 점은 높이 사야 한다고 기회 닿을때마다 말해왔다. 물론 진심이었다. 그러나 그가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벌써 몇 명의 장인 수준 전문가들에게 ‘그 사람 왜 방송에 나와서 자꾸 틀린 이야기 하는가?’라고 들었는지. 바로 며칠 전에도 강원도에 갔다가 그런 이야기를 듣고 같이 웃었는데 이런 말도 안되는 글을 보니 참 웃기지도 않다.
다 좋다. 뭐 남의 책에서 따오든 그렇지 않았든. 하지만 ‘품격’이라는 단어를 입에 머금고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면 좀 잘 쓰던가. 저렇게 쭉정이 같은 글을 써놓고 전문가 행세를 하는 게 참 여느 욕먹는 386들과 전혀 다를게 없으니, 늘 그렇듯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사람은 못되어도 괴물은 되지 말자고. 사람으로 살거면 부끄러움이 뭔지는 좀 알고 살자고.
# by bluexmas | 2014/02/20 12:34 | Taste | 트랙백 | 덧글(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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