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지마롤-나쁜 여운, 노련한 포장, 스타일의 섭취
좋은 음식의 성패는 여운에 달렸다고 믿는다. 와인이나 위스키 등을 평가하는 항목에 ‘피니시’가 존재하는 것도 같은 이유라도 믿는다. 입에 막 넣었을때 좋다고 느낄 수 있는 건 좋은 여운을 가지도록 만드는 것보다 쉽다. 맛의 매개체가 지방이라는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달리 말하면, 방법이야 엄청나게 많겠지만 좋은 지방을 잘 다루는 것만으로 좋은 음식을 만드는데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는 의미다.
국내에 들어온 도지마롤을 어제서야 먹어보았다. 신세계 강남점에 간만에 갔다가 줄이 짧기에 한 조각(4,000) 사왔다. 세 조각까지 들어가는 상자에 한 조각을 담을 경우 일본의 경우처럼 단면이 타원형으로 만 두꺼운 도화지를 채워넣어 케이크가 흔들리게 하지 않는 건 좋다. 들여오려면 역시 이런 문화까지도 들여와야 한다. 롯데호텔에서 피에르 가니에르 이름을 붙여 파는 케이크를 재작년 여름인가 샀을때, 맞는 냉장팩도 상자도 없이 케이크를 내주는 걸 겪고 참으로 웃기다고 생각했다. 얼마를 주고 이름을 모셔오는지 모르겠지만, 그 피에르 가니에르가 이걸 참아 넘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적어도 자기 이름이 더럽혀지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하여간, 먹어보면 드는 생각은 그렇다. 도지마롤은 참으로 노련한 음식이다. 비교적 깨끗하다고 할 수 있는 크림과 케이크의 단맛이 입을 금세 압도한다. 하지만 그에 비해 여운이 참 나쁘다. 한마디로 말하면 찝찔하달까. 여느 대량생산 음식 또는 디저트류를 먹었을때 입에 남는 딱 그맛이다. 그리고 사실 도지마롤은 원래 그런 음식이다. 한 조각에 4,000원이라는 가격도 합당하다. 다만 거기에 이것이 일종의 스타일을 섭취하는 효과를 주기 때문에 다른 대량생산 케이크와 똑같은 대접을 받지 않을 뿐이다. 얼마전 포스팅을 했던 <라 두스>에서도 똑같은 케이크를 판다. 도지마롤을 먹으며 비교해보니 맛이 거의 흡사하지만 대신 뒷맛은 깔끔하다. 하지만 6,500원이고, 도지마롤이 아니다.
어제 먹고 그런 결론을 내렸다. 도지마롤은 적어도 내게, 음식을 먹는 즐거움을 안겨주지는 못한다. 그게 나에게는 스타일보다 중요하므로, 앞으로 이걸 굳이 우리나라에서 사먹으려고 시도-줄서기-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많은 사람들에게 전자보다 후자가 중요하므로, 도지마롤은 앞으로도 잘 팔릴 것이다. 구성을 최대한 단순화하고 앞에 압도하는 맛을 불어넣고, 잘 포장해서 손님에게 내밀며 당일 소비 및 냉장보관의 중요성까지 강조하고… 이 모든게 결국은 노련함의 산물이니 이 수준조차 스스로 끌어올리지 못하는 업자는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까뒤집어보면 특별할 것 하나 없는데 잘 팔아먹고 있으니까. 나에겐 큰 의미없지만 분명 배울점은 있다. 하다못해 분명 큰 돈 들이지 않고 가능한 포장과 그거라도 일궈내려고 하는 철학이라도. 대강 만들어 대강 내는 음식이 넘쳐나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 by bluexmas | 2014/02/05 14:22 | Taste | 트랙백 | 덧글(25)
노력에 대한 대가는 있다는 거군요.
생생한걸 먹으니 크림은 수분가득, 빵은 크림의 수분을 흡수하지 않아 부드럽게 녹아내리고..
크림과 빵이 자연스레 사라지더군요. …감동 ㅠㅠ
..그거 먹고 한국와서 먹으니 빵이 수분을 우걱우걱 먹어 텁텁해진체 눌러앉아있었죠 ㅠㅠ
뭐, 크림은 괜찮았지만, 빵이 마무리를 못해주고 적으신거처럼 뒷끝이 별로인 상태가 되더군요
촉촉한 크림과 부드러운 빵이 포인트인만큼 맛이 피크인 상태가 그렇게 오래가진 않는듯…
저도 일본가서 한번 더 먹었는데.. 역시 늦은 시간에 사 먹으니 그냥그렇던..
..하지만 한정판 도지마롤(밤맛) 은 맛있었습니다 (우걱우걱!)
맛도 나쁘지 않았고, 유명세를 느끼는 것도 컸습니다.
또 사러 갈지는 잘 모르겠구요. ^^
https://twitter.com/dual_blue/status/430984831468437504
트위터에 소개했습니다. ^^
냉장팩을 넣어주면서 2시간 안에 먹으라고 하더군요. 냉장팩이 있는데도
왜 2시간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사고 바로 먹으니 정말 맛있었습니다.
저는 생크림 케익 안 좋아하는데 도지마롤은 맛있더군요.
먹고 나도 좀 어이없어서 블로그에 남기고 싶었는데
여기 딱 좋은 표현이 있네요. 여운이 별로.
맛은 분명 있는데
엄청난 허기와 더불어 먹었음에도 계속 당기는 느낌이 아니더라구요..
주인장이 재일교포 3세이고 또 조총련계 조선대학교 출신이라는 점도 한국에서 많이 알려지게 된 이유중에 하나라고 하더군요.
오사카 출장 가면 한번씩 들러서 이것 저것 사먹는데 고베의 제과점들이 내는 비슷한 타입의 롤 케이크들이 좀 더 크림이 순하더라고요.
크림에 관해서는 각자의 취향이 있겠지만 약간 짭쪼롬한 뒷맛이 있다는 것은 제 느낌만이 아니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