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라 두스-의미없는 장식, 안전한 선택

조리학교 졸업장, ’00 레스토랑 출신’이라는 미사여구는 여전히 먹어주는가. 생각해봐야할 문제다. 분명히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는데 주인이 바뀌었는지, <라 두스>의 파티셰는 부숑 베이커리 “출신”이란다. 웨딩케이크만 하는줄 알았는데 아니라길래 가보았다. 쇼케이스 뒷편에 메달과 액자에 든 졸업장이 보기 좋게 걸려있다. 솔직히 그에 비해 파는 것들은 평범하다. 마카롱과 크레이프 케이크, 도지마롤을 닮은 롤케이크가 있다. 어디에서나 먹을 수 있는 메뉴다. 그리고 매장에서 플레이팅해 주는 크림브륄레와 초콜릿 수플레가 있다. 역시 이곳이 아니라도 먹을 수 있는 메뉴다. 초콜릿 수플레를 매장에서 먹고(7,000), 크레이프 케이크와 롤케이크를 하나씩 포장했다(각 6,500).

가운데가 녹아 흐르는 몰튼 케이크와 컵케이크의 중간 정도 촉촉함을 지닌 초콜릿 수플레는 지극히 평범했다. 물론 맛도 모양도 깔끔했지만 말했듯, 애초에 이곳이 아니어더라도 기대할 수 있는 완성도와 맛이었다. 촉촉한데 초콜릿 맛, 그걸로 끝이었다. 문제는 맛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 장식이었다. 위에 얹은 초콜릿도, 아이스크림과 케이크 사이에 곱게 져며 끼운 사과도 눈에는 그럴싸하지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걸 문제로 받아들였다. 노력을 시간으로만 환산하는 건 다소 무리수지만, 이렇게 평범한 맛의 디저트에 그럴싸한 모양을 불어넣는게 왠지 속임수 같이 보였다. 간단하게 말해 콘셉트도, 그에 바탕한 맛도 없다고나 할까? 부숑 베이커리는 어찌 보면 다소 투박하달수 있는 빵이며 케이크류를 내놓지만 맛은 이보다 훨씬 더 다양한 표정을 지니고 있다.

집에 가져온 크레이프 케이크와 롤케이크도 마찬가지였다. 안 그런 디저트가 어디 있겠느냐만 질감이 굉장히 중요한데, 걸리는 곳 없이 부드러웠다(물론 크레이프는 그보다 더 얇을 수 있다고 본다). 다만 그냥 ‘밀가루+계란’에 우리나라의 보통 디저트에 비해 살짝 더 단 크림이 들었을 뿐이다. 조금 과장을 보태서 말하자면, 눈을 감고 맛보면 구별 못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온갖 학벌과 출신 레스토랑을 내세우는 경향이 못마땅한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거기에서 배운 걸 내놓는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유는 몇 가지로 꼽을 수 있다. 이름만 따오고 정작 배우지는 못할만큼 짧게 머물렀거나, 안전한 선택을 하거나. 먹어본 것에 기대어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전자가 더 많다고 본다. 그리고 또한 전자는 단지 음식에서만 드러나는 문제점도 아니다.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외국, 특히 미국물 먹은 그 자체만 내세우며 아무 것도 기여하지 못하고 있는가? 다들 배웠노라는 좋은점 한 가지씩만 풀어놓으려 노력해도 이 따위의 현실을 살아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한편 후자도 못마땅한 건 마찬가지지만 이건 어떻게든 드러나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바닐라 딸기 초콜릿이 “보링”하다고 내놓고 말하는 아이스크림 가게 주인은 혹시 그 “보링”한 바닐라가 원산지-타히티, 마다가스카르, 멕시코 등-에 따라 향이 뚜렷하게 다르다는 것을, 그래서 보통의 바닐라 아이스크림도 얼마든지 개성 넘칠 수 있다는 것을 알까? 초콜릿은? 딸기는? 모르면 모르는 만큼만 볼 수 밖에 없다.

하여간 나는 의도가 궁금하다. 이것은 그저 안전한 선택인가. <치카리셔스>의 경우처럼 더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는데 정말 “대중”을 위해서 이쯤에서 자제하는 것일까. 물론 음식은 나에게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정해보자. 책이든 음악이든 음식이든 뭐든, 자기를 쪼개어 파는 사람은 언제나 물음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왜 나를 사야만 하는가?’ 음식에 적용시킨다면 ‘우리 가게의 개성은 무엇인가?’로 바꿀 수 있겠다. 그래서, 여기에 어떤 개성이 배어 있을까? 나는 읽지 못했다. 게다가 이젠 스타벅스에서조차 먹을 수 있는 마카롱을 뺀다면 나머지 디저트는 사람들이 들먹이는 부숑 베이커리와 딱히 상관도 없다. <맛이 차이나>에 가면 팔선 출신임을 내세우는 셰프가 정말 흡사한 짜장을 낸다. 하지만 <라 두스>의 디저트에는 부숑 베이커리나 미국식 디저트의 켜켜이 쌓인 맛 등이 없다. 그래서 더더욱 궁금하다. 이 미친 부동산과 건물주와 프랜차이즈의 시대에 평범 무난한 것으로 왜 장사를 하려 들까. 정말, 조리학교와 출신 레스토랑의 언급 만으로도 사람들이 찾아와줄 것이라 믿어서? 이래도 망하고 저래도 망할 것이라면, 당신은 어느 편을 선택하겠나? 하고 싶은 걸 짧고 굵게 하다가 장렬히 산화하겠나, 아니면 슬금슬금 눈치나 보면서 묻어 가다가 차츰차츰 쪼그라들겠나? 전자는, 생각과 달리 마음만 먹는다고 될 일도 아니다. 아무리 봐도 후자밖에 할 능력 없는데 ‘아니야, 전잔데 그냥 후자 하는거야’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대체 왜 이리도 많은 건가.

 by bluexmas | 2014/01/24 15:46 | Taste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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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ed at 2014/02/07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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