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피칸 파이
하여간 자신의 수준을 정확하게 파악 못하는 게 음식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의 총체적인 문제다. 식당 음식도 그렇지만 아마추어들 또한 자유롭지 못하다. 아무거를 아무렇게나 섞어 또한 아무렇게나 조리한다고 언제나 음식이 되는 건 아니다. 그걸 또 스스로 맛있다고 추켜세우는 거야 말로 추하기 이를데 없다.
그래서 실패한 이야기나 할까 한다. 피칸 파이를 처음 구워보았다. 위에는 껍데기로 덮지 않으니 그렇지만, 여전히 파이라는 음식의 난이도는 꽤 높다고 생각한다. 버터 알갱이가 너무 작아도 바삭함이 떨어지고, 반죽을 지나치게 치대면 부드러움이 희생 당한다. 게다가 바닥판만 있는 경우라면 이를 일단 한 번 거의 익힌 다음 속을 채워 다시 구워야 하는데, 이 과정이 번거로운 데다가 실패의 위험도 여럿 따른다. 그렇다고 귀찮아서 건너 뛰면 바닥에 질척해질 것인데, 재수없으면 미리 굽더라도 질척해질 수도 있다. 한 겹짜리도 이러니 뚜껑을 씌우는 사과파이 정도에 이른다면 이게 대체 왜 미국의 가정식을 대표하는 건지조차 의심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두 가지에 실패했다. 첫 번째는 바닥. 반죽을 만들어 최소한 한 시간 동안 냉장시켜 식히는 동시에 수분이 골고루 퍼져 적당한 글루텐을 발달시킨 다음, 밀어 접시에 얹고 모양을 잡은 뒤 한 시간 더 식힌 뒤 굽는다. 이 과정에서 분명히 파이껍데기용 돌멩이를 얹었음에도 바닥에서 떠 틈이 생겼다. 속을 채우면 그 무게에 의해 무너지는 게 당연하니 위에서 보면 멀쩡하지만 단면으로는 완전히 난장판이다. 대개 포크 등으로 구멍을 내는 방법(docking)도 병행하는데, 이게 효과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종종 파는 피칸 파이를 먹어보면 시판품인 프랑스식(접어 만드는) 파이지로 만들었는지 질긴데 단면을 보면 가운데 켜는 익지 않은 것들이 있다.
두 번째는 속이다. 레시피에 의하면 “젤라틴처럼 꿀렁꿀렁할 때까지” 익혀야만 하는데 온도와 시간을 조절했음에도 이미 기포가 생길 정도로 부글부글 끓어 익었다. 그 결과는 흑설탕과 계란의 혼합물이 다소 지글지글(grainy)했다.
결론은 그렇다. 실험을 통해 검증된 레시피를 구해서 따라 가더라도 문제는 반드시 생긴다. 이건 같은 과정을 되풀이해서 자신의 여건(온습도 및 오븐의 상태 등등)에 맞게 보정을 해야 나아진다. 둘 중 하나만 안해도 결과가 신통치 않고, 둘 다 없으면 음식 자체가 안되는 경우가 많다. 이걸로 돈을 벌겠다는 사람이야 하루에 두 판씩 한 석 달 구우면 되겠지만 어쩌다 하나 구울까 말까 하는 아마추어라면 영겁의 세월이 걸린다. 정보가 있어도 이러니 아무거를 아무렇게나 섞어 아무렇게나 조리하면 결과는 실패일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사실 이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자기가 좋아서 뭐든 하겠다는데 거기에 왜 잣대를 들이대나. 게다가 시작이라면 정말 뭐라도 해야 발을 내디딜 수 있으니 오히려 적극 장려한다. 다만 그것이 진짜 능력의 산물인 것처럼 인식받기 시작해 권위를 낳기 시작하면 그때서부터는 문제가 된다. 착각하는 사람들이 참 많은데, 세상 만사가 뭐 하나라도 그렇게 간단치 않다. 음식으로 돈 벌어 먹는다는 식당에서도 먹지 못할만한 게 나오는데, 가끔 불 앞에 서는 사람이 자기 말처럼 늘 맛있는 음식을 정말 만들 수 있느냐는 말이다.
# by bluexmas | 2013/08/29 13:02 | Taste | 트랙백 | 덧글(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