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교동] 빙빙빙- 작은 생각없음과 (팥)빙수의 태생적 한계
아예 전반적으로 생각이 없어도 총체적 난국이라 문제지만(바로 어제 글의 경우처럼), 사소한 생각없음이 생각하게 만드는 경우도 많다. 지난 주에 먹었던 <빙빙빙>의 빙수가 그랬다. 우유(분유?) 얼음에 미수가루(콩가루?)를 솔솔 뿌렸는데, 먹는 내내 사레가 들려 힘들었다. 미수가루를 탄 얼음을 갈아 주기를 바라는 건 당연히 아니지만, 맛을 불어넣고자 한다면 이보다 더 나은 방법이 분명 있을 것이다. 시럽 생각이 바로 나는데, 그럴 경우 분명히 뿌려서 내는 것보다 많은 양을 써야할 것이므로 미미하나마 단가의 차이가 생길테니 이게 굳이 생각없음의 결과는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지난 번에 먹었던 옥루몽의 빙수와 비교하자면 우유 얼음은 덜 텁텁했지만 밀도나 간 정도는 못한 수준. 고명으로 얹은 찹쌀떡은 ‘leathery’라는 형용사가 딱 맞도록 뻣뻣해서 체면치레 같았다. 저항없이 씹힐 만큼 부드러워야 하는데 아마 그 정도 되면 오히려 쫄깃하지 않아서 이상하다는 반응을 보일 사람도 많을 듯. 물론 이 떡은 쫄깃하지도 않고 그냥 뻣뻣했다.
다소 단단한 알갱이 사이사이로 부드러운 팥이 섞인 것으로 보아 일부는 껍질째, 또 일부는 아예 거피를 해서 섞은 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랬다면 좋은 시도라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여전히 알갱이는 아주 살짝 단단했다. 껍질을 살린다는 전제 아래, 팥을 잘 삶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덜 삶으면 당연히 단단하고 너무 삶으면 껍질만 따로 빠져나와 이 사이에 끼어 먹기가 불편하다. 철 아닐 때 먹은 <동빙고>의 팥죽이 그랬는데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다. 이 팥은 단맛만큼이나 짠맛이 두드러져 나는 좋았지만 호불호가 갈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빙수 자체의 완성도를 따지기 이전에, 과연 이 팥빙수라는 음식이 차갑다는 것 말고 더위를 식혀주는 데 적합한지 자꾸 의구심이 든다. 일단 팥이라는 재료 자체의 밀도가 높으니 설탕이든 소금이든 그 맛을 잘 받아들이지만 결과는 언제나 무겁다. 백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비비빅>이니 <아맛나> 같은 하드만 생각해봐도 차갑지만 상큼하지는 않았다. 팥양갱은 또 어떤가? 달지만 가볍지는 않다.
게다가 요즘 추세가 우유 얼음인데 이것도 “레시피는 밝힐 수 없다”지만 지나치게 카라멜화한 맛, 즉 분유맛이 나니 먹는 도중에서도 텁텁하고, 먹고 난 다음에도 그 여운이 증폭되며 꽤 오래 간다. 팥빙수집이 갈수록 늘어가는데 과연 이 음식이 진정한 의미에서 계절의 열기를 식혀주는지, 나는 회의한다. 아예 팥을 빼놓고 가거나, 유지방이 안 들어간 <젤라띠 젤라띠>의 젤라토/소르베 류가 차라리 더 나은 대안이라 본다.
# by bluexmas | 2013/08/27 12:23 | Taste | 트랙백 | 핑백(1) | 덧글(19)
Linked at The Note of Thir.. at 2013/09/04 13:24
… 그런지 한산해 기다림없이 빙수 한 그릇을 먹었다. 일단 팥부터. 잘 삶았다. <빙빙빙>의 팥이 거피를 한 것과 하지 않은 것을 합친 것 같다고 이야기했었는데, 이건 그냥 한꺼번에 삶은 것이었다. 팥을 푹 삶을 경우 껍질이 거의 분리되다시피해 이에 끼거나 입천장에 달라붙어 짜증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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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겨울에 아이스크림을 먹고, 여름에 셔벗(소르베)을 먹는게 기능적으로는 맞다고…
팥이 체온을 내리는 효능은 있지만 우유 얼음이랑 같이 먹으면 그냥 입만 차가운 게 아닌가 싶습니다. 마치 맥주처럼…
물론 음식이라는게 효능만 따질 수는 없고, 맛으로 먹는경우가 더 많겠죠. 다만 먹는 사람의 입장이 아니라 만드는 사람의 편의나 단가 절약만 생각하다보면 여기저기 아쉬운 부분이 보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주인장께서 ‘나은 방법이지 않을 까’라고 제안한 방식은 제게는 ‘떨어지는 방식’이 될 거 같군요. 팥빙수에 가루 상태로 뿌려주는 것과 미숫가루 얼음을 갈아서 주는 건 식감이 꽤 달라질겁니다. 미숫가루 얼음은 미숫가루가 이미 완전히 젖은 상태에서 얼렸으니까요. 가루가 살짝 녹진하게 씹히면서 우유랑 어우러지는 것과 아예 우유에 충분히 불려져 액체 중 분산된 상태인 건 먹을 때 느낌이 많이 다른걸요.
특히나 저렇게 많이 쌓아준 상태에서 녹이거나 비비지 않았으니 문제다 라고 하는건 아닌거 같네요.
만약 기침을 유발하지 않고 맛있게 먹는 방법이 있다면 그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하겠구요.
글에서는 “미수가루를 탄 얼음을 갈아 주기를 바라는 건 당연히 아니지만,” 이라고 되어 있는데 그것을 대안으로 제안했다고 하시는걸 봐서 글을 잘 안 읽으신거 같아요.
그리고, 사레들림과 목메임은 구분할 줄 압니다. ‘빙빙빙’의 빙수는 먹어보지 않았고 사진으로 봐선 어느 정도로 많이 뿌렸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코코아 가루로 장식하듯이 체로 살짝 뿌리되 넓은 범위를 뿌린 건지, 두텁게 쌓일 정도로 뿌린 건지 저 사진으로 구분할 능력은 없으니까요.
애초에 미숫가루를 좋아하지 않지만 저런 상태보다는 차라리 미숫가루얼음을 갈아주는 것이 낫겠다고 쓰신 것이니, 제가 읽은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지적도 틀렸지요. 둘 다 싫지만 그 중 하나라면 이쪽이 낫다라는 식으로 쓰셨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