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분히 동어반복: (음식) 평론가와 현실

-1. 나 자신을 평론가라고 칭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0. 평론가가 현실을 모른다고? 그럼 과연 어떤 현실, 또는 현실의 어떤 부분을 모른다는 의미일까?

1. 다른 분야 모르고 빠와블로거 가득한 우리나라 현실 더 모르나, 대부분의 음식 평론가들은 조리 기술에 대한 기본 지식을 갖추고 있다. 최소한 자기 밥 끓여 먹을 수 있는 수준은 넘는다. 뉴욕타임즈의 음식 필자 마크 비트만은 <How to Cook Everything>이라는 요리책 및 앱도 냈다. 정확하게 평론은 하지 않지만 마이클 룰만은 CIA에서 정식 교육도 받은 요리사다. 이 밖에도 조리학교를 나와서 글을 쓰는 사람들이 많다. 음악이나 미술에서는 얼마만큼 생산자가 비평가로 전환하는지 잘 모르겠으나, 음식은 그 규모랄지 삶과의 관계 때문에 보다 접근 자체가 더 쉽다(물론 수준을 쌓기는 딱히 더 쉽지 않지만). 나의 원작자이신 제프리 스타인가튼도 실험을 위한 조리 기술을 충분히 갖춘 사람이다.

2. 이 부분을 알면 됐지 또 어디까지 알아야 할까? 주방 경영 등, 완전히 조리사의 영역에 속하는 것들? 거기까지 아는 것이 문제는 아니겠지만 오히려 너무 알아서 객관적인 평가가 불가능해지는 상황도 생긴다. 블로그에 글도 쓴 바 있는 이 은 현업 종사자의 의견을 바탕으로 쓰였는데, 대부분이 ‘알지만 너무 많이 알지는 않는’ 필자를 선호한다고 밝힌다. 궁금하면 책 사서 읽어보시라. 도움 된다.

3. 물론 현실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객관적인 평가의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현실이 정확하게 너의 현실이어야 한다’는 주장을 혹시라도 펼친다면 그건 좀 곤란하다. ‘식당 해보지 않았으면 음식에 대해 말하지 말아야 한다’는 요식업자의 주장은 미안하지만 한심하다. 그럼 소설가는 전부 자기가 겪은 것만으로 소설 써야만 할까? 자꾸 그런 식으로 이야기가 뻗어 나가면 결국에는 각자의 영역 또는 역할 구분이 없어진다. 교집합은 있으되 둘은 분리되어야 한다. 지난 번에도 이야기했듯 만드는 사람의 역할, 쓰고 평가하는 사람의 역할이 따로 있다. 쉽게 말해 나도 빵이나 쿠키를 구울 줄 알지만 가게를 차려서 장사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나의 조리는 1. 자급자족; 2. 이치의 이해를 위한 것이지 주방 경영 등을 통한 이익 추구 활동을 위한 것이 아니다. 한편 그런 의미에서 나는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자칭 요리사들의 음식 에세이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본다. 간단히 말해 이도저도 아니기 때문이다. 라이프스타일의 뼈대에 음식의 껍데기를 예쁘게 씌워 팔지만 그 둘 가운데 어느 것은 물론, 글마저도 제대로 독자에게 선사하지 못한다. 스스로 요리사라고 생각한다면 갖춰야 할 조리 기술은 말할 것도 없다. 늘 말하지만 ‘1. 기름을 데운다 2. 적정 온도가 되면 재료를 넣는다 3. 재료가 떠오르면 건진다’를 튀김 조리법이라고 책에 버젓이 싣는 사람은 요리사가 아니다. 그일주일에 튀김 한 번도 안 해먹는 나조차도 블로그에 레시피 올린다면 그보다 더 말이 되는 걸 올릴 수 있다. 궁금하면 한 번 아마존을 뒤져보기를 권한다. 요리책 따로 있고 셰프들의 자서전 따로 있다. 그 사이의 어딘가에서 둘 중 아무 것도 아닌 무엇인가를 내는 나라는 여기 밖에 없다. 심지어 딱히 나을 것 없는 미국 요리블로거들도 자기 책 내면 레시피 같은 걸 만들어서 올린다. 이런 자칭 생산자가 많은 현실에서 평가하는 사람이 현실을 모른다고 말하는 건 좀 무리가 아닌지? 역할 분담과 편 가르기 또는 친구 먹기는 다르다. 당신이 원하는 건 무엇인가. 목표는 결국 맛있는 음식 아니었나? 게다가 우리가 먹는 맛없는 음식의 원인은 상당수 그 “현실”의 영역에 발을 걸치지도 못한다. 그런데 왜 계속해서 달리 존재해야만 하는 세계가 본디 하나여야만 한다고 고집하는가.

 by bluexmas | 2013/08/09 12:51 | Taste | 트랙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