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와 “로도스”의 지적 유희 -강신주의 터무니 없는 냉장고 유해론
트위터 타임라인이 냉장고로 시끄럽기에 뭔가 찾아봤더니 양대 “진보” 신문사에서 각각 냉장고에 대한 글을 실으셨다. 둘 다 음식에 대한 글 쓰는 사람의 시각으로 보았을때 참 안타깝다. 냉장고는 무엇인가? 음식을 저장하는 가전제품이다. 그럼 음식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는데 없다. 철학만 알고 음식은 모르면, 기사는 쓰는데 맛은 모르면 언제나 이런 기사가 나온다. 원래 매체에서는 음식에 대해 모르니까 늘 ‘여름 냉면 단가에 비해 너무 비싸다’와 같은 기사나 쓰고, 나도 그러려니 한다. 하지만 이런 기사가 버젓이 매체에 주장이랍시고 실리면, 이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공격받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정말 음식이며 맛에 대해서는 개뿔도 모르면서, 그게 그야말로 “먹고 사는”일이니까 너도나도 남의 밥상에 숟가락 놓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먼저 경향신문의 글부터 살펴보자. 이 글을 쓴 분, 유명한 철학자라고 알고 있는데 아무래도 철학을 공부하시느라 음식은 잘 모르시나보다. “자본주의적 삶의 폐단은 모두 냉장고에 응축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아마도 본인 가정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냉장고의 이야기를 한다. 미안하지만, 우리집의 냉장고는 그렇지 않다. 물론 문제는 저 양반과 내 냉장고 내용물을 비교하는게 아니다. 넘어가자.
멧돼지 이야기를 꺼낸다. 원시시대의 똘똘이와 조선시대의 돌쇠가 자신이 애써 잡은 사냥감을 기꺼이 나눠주었단다. 정말? 말도 안되는 억지다. 나는 지난 1년 가까운 기간 동안 서양 음식의 레퍼런스 가이드 비슷한 책을 쓰고 있다. 피자, 파스타, 스테이크 등, 우리에게 비교적 익숙한 서양 음식 20가지 전부를 아우른다. 그 가운데 1/3에서 절반 가까이가 저장식품에 관한 것이다. 치즈, 가공육 등이 그것이다. 이런 저장 및 가공 식품이 탄생한 이유는 간단하다. 냉동 냉장 기술이 없던 시절, 잉여를 저장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있을때 먹고 없을때 굶을 게 아니라, 있을때 남겨서 없을때 먹기 위한 생존 수단이었다. 그래서 치즈와 햄, 소시지가 탄생했다.
냉장고 없이 오래 보관 가능한 음식을 만들기는 했지만, 이게 최선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신선한 재료와 다른 맛의 음식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부패의 원인인 세균 번식을 막기 위해 수분을 빼고 염도를 높이는 등, 극단적인 환경을 조성해야만 한다. 게다가 발효 등을 거치므로 맛이 압축되어, 현대에 이르러서야 별미지만 당시에는 꼭 필요한 영양소를 제공해 생존을 위한 음식 수준이었다. 이런 음식에만 의존하지 않을 수 있던 건 바로 그 “자본주의 삶의 폐단”인 냉장고 때문에 가능해졌다.
백번 양보해서 가정의 냉장고를 없앤다 치자. 상업용 냉장고는 없앨 수가 없다. 전국이 이제 일일 생활권인 우리나라에서도 요즘 같은 여름 날씨에서 하룻동안 멀쩡할 식품이 드물다. 냉장기술에 의존하는 재래시장이나 동네 마트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저 철학자라는 양반은 동네 수퍼마켓에서 장을 보셨는지 그걸 모르겠다. 정육과 유제품, 과일과 야채 몇 종류만을 체면치레로 냉장보관한다. 늘 예로 드는 것이 계란이다. 상온에서의 하루가 냉장고에서의 일주일이다. 대개 냉장유통하는 제품의 유통기한은 한 달로 찍혀 나온다. 그렇게 따지면 대부분의 마트에서 상온에 내놓는 계란은 1주일이면 간다. 현실도 이런데 만약 상업 냉동기술을 전부 들어내버리면? 원시시대처럼 대책없이 먹고 죽는 수 밖에는 없다. 남대문 시장 좌판에서 요즘 날씨에 냉장고 없이 내놓은 식재료들을 보셨는지 모르겠다.
그런 동네 마트든 어디든, 음식을 만들어 먹여야 하는 사람의 쇼핑은 언제나 전혀 즐겁지 않다. ‘우와 오늘 우리 가족에게 뭐 맛있는 걸 먹일까~’라고 즐겁게, 여유만만하게 쇼핑하는 주부가 과연 몇이나 있을까? 조리는 물론, 체계적인 메뉴 계획이나 더 나아가 주방 자체의 운영에 대해 배우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다. 이런 사람들에게 ‘냉장고에 의존하지 마라?’라고 말하는 것이 현실적인 설득력을 지니는가? 절대 그럴 수가 없다. 나에겐 그저 장 한 번, 밥 한 끼 차려 자기 입에 넣어보지 않은 사람의 배부른 소리로 들린다. 필요 이상으로 큰 냉장고를 끌어 안고 사는 사람들에게 진짜 필요한 건 ‘로도스’니 ‘자본주의가 인간의 삶을 위태롭게 한다는 것, 그것은 이제 상식이다’라는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니라, 현재 가지고 있는 냉장고를 얼마나 현명하게 쓸 수 있느냐다.
그런 차원에서 한겨레 신문의 기사는 조금 낫다. 그러나 이 기사 또한 냉장고와 대형 마트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데 지면을 전부 할애한다. 까놓고 물어보자. 그런 이유를 사람들이 정말 모를까? 그런 이유를 늘어놓는 탓에 꼭 필요한 이야기는 마지막 단 한 단락이 전부다. 그마저도 나에게는 딱히 석연치 않다. ‘동네상권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왜 동네 수며 과일가게, 정육점을 놓아두고 마트로 가는지를 읽어야 한다. 정말 그게 꼭 편해서인가? 적어도 나에게는 아니다. 나는 이제 마트도 거의 가지 않지만, 믿을만한 동네 장사가 없어서 못간다. 다시 계란 이야기를 해보자. 집 1km 반경의 마트 가운데 계란을 냉장고에 보관하는 곳은 단 한 군데 있다. 바로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롯데 SSM이다. 그럼 나는 어디에서 계란을 사겠는가? 당신은? 답이 나온다. 다른 물건도 마찬가지다. 동네에서 가장 큰 과일 가게에서는 모든 물건에 가격표를 붙여놓지 않는다. 물어보기도 싫고 내놓는 가격을 믿지도 못한다. 카드도 잘 안 받고 가장 중요한 물건의 질도 별로다. 자신들도 큰 시장에 가서 아무 생각없이 떼어오니까 그 정도 수준 밖에는 되지 않는다. 큰 그림, 즉 시스템도 문제지만 그보다 나는 개인의 의지 없음을 언제나처럼 더 큰 문제로 본다. 그나마 내가 유일하게 물건을 사는 곳이 한 마트의 정육점인데, 이곳 또한 객관적으로 놓고 보면 내가 늘 고기를 사는 곳보다는 질이 떨어진다. 하지만 언제나 동네 사람들이 꼭 필요한 물건을 합리적인 가격에 갖춰놓고, 응대도 아주 잘 한다. 정말 그뿐이면 되는데, 그것도 못하는 동네 마트에서 기분 나쁜게 어디 어제 오늘 이야기인가? 맨날 동네상권, 동네상권 부르짖는 기자들은 자기 손으로 시장 볼 일이 없어서 현실을 모르나?
결론은 간단하다. 냉장고는 절대 없앨 수 없다. 게다가 냉장고와 자본주의, 로도스를 한데 버무려 자신을 알리고 그로 인해 저작물 등등을 팔고 매체에 기고해 입지를 드넓히고 그로 인해 소득을 얻는 건 자본주의 아닌가? 하여간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만약 냉장고를 줄이는 것을 사회나 체제의 문제로 인식해 정말 행동으로 옮기도록 만들고 싶다면, 두 매체 모두 방법이 틀렸다. 로도스니, 동네 상권이니 들먹이는 케케묵고 뜬구름 잡는 방식보다, 현실적이고 상세한 방법론을 다뤄야 한다. 바로 냉장고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식이다. 냉장고 좋다는 게 뭔가? 1주일에 한 번만 장을 봐도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문제는 무슨 식품을 어떻게 써먹을 것인가다. 방법이야 엄청나게 많지만, 주간 단위로 단백질+섬유질+탄수화물의 고른 조합 메뉴를 짜고, 적어도 주말 하루 정도에 시간을 들여 손질한 최소한의 재료로 최소한의 조리 시간을 들여 먹을 수 있는 메뉴와 방법을 소개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양념 위주의 음식을 만드니 중심이 되는 양념(불고기, 찌개 등등) 몇 가지에 단백질을 조리하는 법만 소개해도 중심 반찬이 나온다. 나머지는 김치와 (나는 먹지 않지만) 밑반찬으로 해결이 가능하다.
물론 현실을 감안하면 이마저도 ‘어렵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나온다. 그 또한 충분히 일리 있는 주장이다. 매일, 최소한 저녁이라도 사람처럼 밥 먹는게 하루 종일 집에서 일하는, 또한 음식 만드는게 비교적 익숙한 사람에게도 어렵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은 인스턴트에 기대는 수 밖에 없다. 나는 그 또한 개인의 선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자체를 부정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만약 현대인의 삶이 이러하다면 여기에다 로도스 따위를 들먹이여 냉장고를 버리거나 줄이자고 말하는 발언 자체가 대체 얼마나 악하도록 ‘나이브’한 것인지 의견을 낸 사람 본인은 대체 아는지, 난 그걸 좀 묻고 싶다. 음식은 육체가 아닌 생각으로 만든다. 미국의 음식 전문 작가이자 정식 교육과 수련을 쌓은 조리사인 마이클 룰만은 <조리의 스무가지 원칙>에서 <생각>을 제 1로 꼽는다. 단지 끼니를 채우기 위해 억지로 만드는 음식이 조리 솜씨를 닦는데 생각보다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정말 어쩔 수 없이 인스턴트에밖에 기댈 수 없는 현실이라면, 단 1주일 이내에 ‘워프’해서 냉장고 자체의 존재 의미에 대해 보다 진지하게 생각하는 방향으로는 절대 갈 수 없다. 그것도, 자기 먹겠다고 음식 좀 만들어보면 금방 알아차린다. 철학도 좋지만, 종종 당신 손으로 끼니 한 번 좀 해 드실 것을 권한다. 만약 해 드셨음에도 저런 주장을 늘어놓는다면 그건 더 심각한 문제일테고.
냉장고, 로도스, 지적유희, 자본주의, 강신주,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 by bluexmas | 2013/07/23 06:18 | Taste | 트랙백(2) | 핑백(1) | 덧글(68)
제목 : 백석의 맛 이란 책을 보면
냉장고와 “로도스”의 지적 유희 -강신주의 터무니 없는 냉장고 유해론시인 백석에 대한 책인데백석이 살던 지역에 혼례 같은 잔치 한번 있으면 사람들이 무더기로 죽어나간느 애기가 나온다왜?너무 많이 먹어서 배탈이 나서….일리는 없고더운 날씨에 음식이 쉬이 상해상한 음식 먹고 무더기로 죽어나가는데그래도 그게 계속 반복,,,,냉장고가 없다면 지금도 생길 일이지,저런 어이없는 글이 신문에 실리는ㄴ 건 어떻게 해석해야 할가 싶다….more
제목 : 그들의 마지막 도피처, 손가락
냉장고와 “로도스”의 지적 유희 -강신주의 터무니 없는 냉장고 유해론 “저기 달이 있다!” “저게 가로등이지 달이냐 멍청아.” “손가락 말고 달을 보라고! 너는 달이 뭔지 모르냐?” 손꾸락을 확 분질러 버릴라…more
Linked at 케이 : 쓸 것 at 2013/07/28 07:51
… 강신주 비판, 댓글들 http://killjoys.egloos.com/4817279 냉장고, 강신주, 댓글들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www&artid=2013 … more
저사람은 음식이야기를 한게 아닙니다^^
?
비공개 덧글입니다.
비공개 답글입니다.
그냥 독자들의 지적 허영을 충족시켜주기 위한…
해당 인물은 무려 대학교 학부 전공이 공학입니다.
2.
해당 인물은 도가철학 전공자인데도 철학 인문에 정통한 양 아는 척을 지나치게 많이 하고 있으므로, 양식 있는 철학 연구자들에게는 조소받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3.
해당 인물은 반자본주의 소신을 설파하지만, 정작『나 혼자 산다』출연을 포함하여 돈 되는 일은 대단히 열심히 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는 슬라보이 지제크나 오쇼 라즈니시나 우 석훈처럼 반자본주의 개똥철학을 설파하여 그 자신의 금전으로 전환 가능한 문화자본을 열심히 축적하는 존재일 뿐입니다.
4.
비판하신 글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 저자들이 모두 남자이어서인지 젠더 평등의 중요성을 망각하였다는 현실입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음식의 준비는 아직까지도 여자들이 전담하는 경우들이 허다한데, 냉장고가 없어지면 여자들의 여가시간이 크게 줄어들게 됨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5.
이 원재의 글은 한겨레신문사가 기획하여 진행중인 하이퍼마켓들 매도 계획의 일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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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에 고정칼럼 연재하길래 쭉 읽어봤는데, 답이 안나옵니다.
냉장고는 상생의 정신을 잊게하는 하나의 상징일뿐인거죠.
달을 가리키니 손가락을 본다더니.. 아쉽네요.
만약에 어려운 주제를 더 어렵게 꼬아서 쓰고 옛다 읽어라~ 이러는건 변태행위죠..
과거에 대한 이상한 착각에 빠져서 현실에 맞지도 않는 정신나간 소리를 지껄이는거 보니 동양철학 공부할때 이 양반 책 사는데 돈을 쓴게 후회 되는군요 이런 찌질한 작자에게 인세나 제공하다니…
아! 내가 호구다.
돌아오니 딸기잼은 잘 발효되서 술이 되어 있었습니다. 냉장고에 안넣었더니 말이죠.
웬만한 음식이 지금 그모냥 다 되는데 그 철학자는 아주 참 잘 사시는 분인가 봐요.
딱 이 말부터 하고 싶네요
‘그럼 니가 하던지’
실제로 그렇게 해서 몇달이나 하는지 보고 싶군요.
이것만 읽어도 똘똘이가 고기를 그냥 줬다는 말은 못 할 텐데;
저 철학자는 단란주점도 안 가본 누구처럼 동물 의 왕국이나 오지 탐험 물 하나도 안보고 산 모양입니다.
사자나 개 하이에나 같은 사회를 이룬 동물도 서열이 있고
호텐토트 같은 부시맨들도 마을의 장로와 먹이를 사냥한 사람에게 우선권이 있어서 좋은 부위를 가져 갔는데…
꿈속의 공산사회… 결코 이루어지지 못하고 이루어 본적도 없는 그런 세상을 꿈꾸나 봅니다.
그래도 자기 출연료나 월급은 알차게 챙기겠지요?
현대 남한에는 아직도 ‘남자는 부엌에 들어가면 안 된다’ 는 사고방식을 고수하는 남자들이 많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냉장고가 없어지면 그런 남자들에게 종속당한 여자들은 그런 남자들을 먹이려고 엄청나게 고생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하지만 저는 자본주의로 돈 많이 벌겠습니다(?)
굳이 냉장고에 국하하지 않고, 우리의 소비가 진정 과잉인지 돌이켜보고, 그렇다면 그것이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 고민해보는 정도로 정리하면 좋을거 같네요.
다른 경우로 전에 한번은 ‘옷’ 을 매개로 과잉소비를 비판한 적이 있는데, 이는 패션업계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우리가 필요 이상의 옷을 구매하게 된 근원을 생각해보는 단초로만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본인은 자본에 기생하며 자본을 비판한다는 얘기가 많은데 그런류의 지적은 올바른 비판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자본주의 이전에 돈없이는 살수없는 삶이니까요. 그는 노동에 의한 돈벌이를 비판하고 수도승으로 살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거대 자본의 이익을 위해 우리의 인간성이 상실되가는 상황을 비판하는 것이니까요.
그러므로 그의 예시가 잘못되었다면 그 부분을 지적하고, 그의 주장자체가 잘못되었다면 그 부분을 지적하면 족할것입니다.
2. 주장자가 자신의 주장에 충실한지가 주장 자체에 대한 반박은 안될지라도, 그 자체로 비판의 대상이 되기에는 충분합니다. 맨날 국방 운운하는 사람이 자기 자식 병역은 빼돌리는게 왜 문제가 되는지 생각해 보면 답은 자명하리라고 보입니다만. 그리고 굳이 화폐가 아니더라도 인간이 경제적 행위와 그 대가 없이 생존할 수 있었던 적은 자본주의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것이므로 돈없으면 못 사는 세상이라는 건 변명거리가 되지 못합니다.
따라서 저는 주인장님의 마지막 문단이 와닿네요. 실제 음식 해먹고 살면 저런 예시 절대로 못 들죠. 지금 이 칼럼에 반발하는 분들은 죄다 그걸 까는 거고요.
옷과 냉장고는 아예 차원이 다릅니다. 동일선상에서 놓고 이야기 할 꺼리조차도 못 되죠.
냉장고가 어떤지 따지지 말자는 것이 아니고, 내장고가 소비를 부추기는 측면도 있다는 거죠.
그리고 강신주씨가 거대자본의 이익에 부합하게 행동하면서 글은 저런 글을 쓴다면 비판해야 겠지만, 자기 생각을
칼럼으로 쓰고 돈을 받는것을 비판하면 맥락이 잘못됐다는 말입니다.
님 말씀대로 자본주의 이전에 인간은 생활을 위해 돈을 벌며 살아왔기 때문이죠.
반발은 이해하지만, 감정적으로 대응할만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2. 냉장고 사용이 자본주의에 부합하는 행위라서 비판의 대상이 된다면, 강신주의 대중 매체 기고 행위 역시 자본주의에 부합하는 행위라는 비판이 충분히 가능하겠죠. 해당 글 정도의 논리라면 대중 매체야말로 자본주의를 돌아가게 하는 필수 요소이고 따라서 대중 매체 없애버리자! 하는 주장도 가능할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그런 대중 매체를 애용하는 강신주에 대한 비판은 적어도 그런 구조의 모순을 생각해보게 하는 단초 정도는 될 수 있겠네요.
냉장고를 은유라 한것은, 인류가 저장수단을 갖게 되면서 욕심이라는 것이 구체화되고, 필요이상의 자원을 소비, 보유하기 시작한것에 대한 예시라는 뜻입니다. 허나 냉장고는 자원을 저장하는 기능을 넘어 생필품의 수준이기에 저도 그다지 좋은 예라고는 생각 안합니다. 혹 누가 핸드폰이 사색의 시간을 빼앗아 가기에 핸드폰을 없애자고 하면 우선은 말도 안되는 소리지만 일견 타당한 면은 있다. 이 정도로 넘어갈수도 있는 문제라는 거죠. 거기에 대고 핸드폰이 이러이러한 좋은 기능이 있고, 필수품이라고 하는것은 조금 핀트가 엇나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자본주의와 돈을 버는 행위는 동일한 개념이 아닙니다. 말씀드렸다싶이 강신주씨가 자본주의의 폐단을 심화시키는 행동을 하면서 말을 저렇게 하면 문제지만, 나름의 생각으로 문제를 지적하는것을 두고 넌 공산주의자니까 아예 돈도 벌지 말라는건 감정적 대응이라는 겁니다.
달을 가리키려면 똑바로 가리키든지 손이라도 씻어서 달 보는데 지장이 없게 해야죠. 여기서 달이 안 보이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근데 항상 손가락 주인들이나 그 옹호자들은 자기들만 달이 보이는 줄 알죠.
손가락 씻을 생각이 없으면 그냥 손을 주머니에 넣고 ‘저기 달 떴네’ 한마디만 하세요. 눈이 있으면 알아서 찾아다 볼 테니까요.
또 하나의 비약을 들자면 아무도 강신주가 공산주의자라고 하지 않았고 그러니 돈벌지 말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행위에 자신의 주장의 논리를 갖다대면 똑같이 비판받을 만한 행위가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 거죠. 자본주의와 돈벌이가 동의어는 당연히 아니지만 그 거리는 자본주의와 냉장고 사이보다는 가까울 겁니다.
Bluegazer님도 지적하셨듯 사람들이 강신주가 글을 쓴 의도가 무엇인지 이해 못해서 비판하는게 아닙니다. 의도는 알겠는데(그 자체도 이미 진부한 떡밥이지만) 그딴 식으로 주장해선 안된다는 거죠. 수준 이하의 글을 보고 언짢은 표현을 했다고 감정적 대응이라고 할 수는 없죠.
감정적으로 대응하고 싶었으면 ‘와 강신주라는 철학자는 개쓰레기나 저게 말이 돼?’라고 간단히 한마디 하면 그만입니다. 소비가 과잉인지 아닌지, 그 원인이 무엇인지 사람들이 고민을 안해서 이런 반응을 보인다고 보십니까? 제가 쓴 글을 읽으셨는지, 아니면 덧글들만 보셨는지도 잘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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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아무 말씀이 없으시네요 ^^
비공개 덧글입니다.
비공개 답글입니다.
버려지는 식량이 줄어들어 식량문제가 극적으로 해결되고
식량이 안전하게 운반돼서 오늘날의 거대 도시가 형성될 수 있었죠.
여기에 백신저장, 약품저장, 피 저장..현대의학은 냉장고 위에 세워졌으니깐요.
뭐, 글쓴이는 가정용 냉장고가 문제라고 생각했나 보네요…
그럼 슈퍼마켓 냉장고를 개인용 냉장고처럼 쓰자란 말인가요?? 아니면 항상 외식하자? 뿌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