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동] 세컨드 키친-느끼함과 신맛, 짠맛의 부재
‘느끼하다’는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가? 사전은 ‘greasy’나 ‘oily’와 같은 뜻에 ‘비위에 맞지 않을만큼 음식에 기름기가 많다’는 뜻이라설명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맛이 밋밋한 상태 또한 느끼하다고 표현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예를 들어 누군가 바리스타 교육을 받았던 이야기를 하며, ‘내가 만든 바리에이션 음료를 다 맛봐야 했는데, 계속 마시니 느끼했다’라고 표현한 걸 들은 기억이 있다. 바리에이션 음료라면 우유를 섞었을텐데, 그 양 자체가 지방 함유량이 정말 greasy또는 oily하지는 않다. 다만 우유가 깔아주는 두터움의 균형을 잡아줄 신맛, 단맛, 또는 짠맛이 부족해 밋밋한 것을 느끼하다고 표현하는 것 뿐이다.
실제로 느끼하다고 말할 수 있는, 지방을 넉넉하게 쓴 음식 또한 마찬가지다. 반드시 식초나 소금, 설탕을 충분하게 써야 물리지 않고 먹을 수 있다. 물론 이 세 가지만 지방의 균형을 잡아주는 건 아니다. 차나 와인의 떫은맛(탄닌), 와사비의 쏘는 맛 또한 비슷한 역할을 한다. 우리 음식으로 치자면 장류나 김치, 새우젓의 신맛이 같은 역할을 하는데, 분명히 우리 음식에도 이런 맛의 균형을 이루는 관계 및 요소가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서양 음식을 먹으면 그 요소만 쏙 빠진 경우를 많이 맞닥뜨린다. 그 결과 음식의 균형이 깨져 정말 느끼하다. 원인이 무엇인지 정말 궁금하다. 손님들이 싫어할까봐 일부러 그렇게 설정하는 것인지, 아니면 서양 음식 맛 자체를 이해하지 못해 그러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요즘 잘 나간다는 한남동 ‘세컨드 키친’의 음식도 그랬다. 그나마 긍정적이라면 지방을 앞세운 풍부함만은 아쉽지 않았다는 점인데, 거기에서 신맛과 짠맛을 빼니 그 맛이 단편적이고 부담스러웠다. 샐러드와 주요리, 쿠키와 커피가 나온다는 점심 세트(30,000)을 먹었다.
먼저 깍지콩 샐러드. 메뉴에서 설명하고 있지 않아 새우튀김이 나오는 줄 몰랐는데, 아쉽게도 반죽이 조금 덜익어 속이 축축했다. 겉의 색이 잘 든 것으로 보아 혹 기름의 온도가 맞지 않았나 싶었다. 요즘은 미국 요리에서도 우리가 흔히 쓰는 빵가루 ‘팡코’를 많이 쓰니 굳이 ‘콘 독(corn dog)’류의 묽은 반죽을 안써도 된다고 생각했다. 혹 우리가 흔히 보는 새우튀김과 다르게 보이기 위해서 쓴 것이라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지 않을까? 한편 깍지콩은 보통 양쪽 끝 모두를 다듬는데, 한쪽 끝만 다듬었길래 딱히 이유가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프로슈토는 딱히 어울리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이 모두를 커민(?)향 두드러지는 기름에 버무렸는데, 그 양이 넉넉한데 비해 짠맛과 신맛이 하나도 나지 않았다. 비니그렛이라기 보다 그냥 기름에 버무린 느낌이었다.
주요리였던 목살찜. 목살도 바닥에 깔린 으깬 감자(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물기가 많아야, 즉’soupy’해야 한다)도 두터웠지만 그에 비해 역시 소금간이 부족했다. 양파 덕분이 신맛은 어느 정도 보태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양이 좀 부족해 따로 시킨 와인이 아니었더라면 즐겁게 다 먹기가 조금 부담스러웠을 것 같다. 그냥 삶은 것인지 수비드로 저온조리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비트 또한 소금을 조금 더했더라면 그 자체는 물론 요리 전체의 균형에도 훨씬 더 좋았을 것 같다. 고명으로 얹은, 세로로 얇게 저민 아스파라거스는 단가 높은 장식이라는 생각에 딱히 반갑지 않았다. 시중의 아스파라거스가 딱히 맛있지도, 싸지도 않다는 걸 감안한다면 얽매이지 않고 다른 재료를 생각하는 게 음식 만드는 사람의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교과서가 기본을 가르쳐준다면, 그걸 바탕으로 응용하는 건 배운 사람의 몫이다.
그래도 앞의 두 요리가 지나치게 못마땅하지는 않은 가운데, ‘직접 굽는다’며 종업원이 다소 자랑스럽게 이야기한 사블레는 엉터리였다. ‘사블레(sable)’는 프랑스어로, ‘sandy’와 같은 뜻이다. 바삭하지만 ‘crunch’라기 보다’ crisp’하고, 부드러우면서 이름처럼 부슬부슬하게 부서져야 한다. 저 쿠키는 모래보다는 자갈이나 돌멩이에 가까웠다. 어떤 레시피를 쓰는지 모르겠으나 대개 사블레에는 계란 노른자만 쓴다. 흰자는 수분만 보탤 뿐더러 많이 치대면 글루텐이 발달한다. 아마추어가 쿠키를 구울때 기본 가운데 하나인 사블레를 저렇게 구워놓고 ‘직접 굽는다’고 말하면 곤란하다. 저걸 먹으니 생각이 나 한 30년만에 해태제과 사블레를 사먹었는데, 말도 안되는 맛이긴 해도 그 이름값은 했다.
디저트가 궁금해 따로 시켜봤다. 가게의 대표 디저트인데 이름은 ‘untitled dessert’라고 했다. 이것저것 섞고 뿌렸는데 원래 그 조합이 그러니 먹을만은 하지만 왜 굳이 대표여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이런 건 집에서 아이스크림에 먹다 남은 과자를 부스러뜨려 섞어도 흉내낼 수 있다. ‘무엇이 들었는지 맞춰보라’는 의미에서 이렇게 만들고 이름붙였다는데 솔직히 재미없다. 미국 다이너에서나 팔 것 같은 케이크들도 메뉴에 올려 놓았던데, 훨씬 손이 많이 가는 그런 것들 보다 이게 더 음식점의 정체성을 드러낸다는 의미인가? 한편 비싸거나 생과일로는 구하기 어려운 블루베리/산딸기/블랙베리 등을 단단하거나 냉기가 가시지 않은 것 그대로 내는 곳이 많은데(물론 완전히 해동되면 물기가 나와 쭈글거린다), 올바른 접근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생과일을 쓰거나, 없다면 그냥 제철과일 등으로 대체하거나, 굳이 그 맛을 빌어와야만 하겠다면 젤리든 콤포트든 소스든 뭐라도 만들어야 한다. 사각거리고 차가운 냉동과일을 그냥 써서는 안된다.
나쁘지 않다. 이보다 더 괴악한 곳이 어디 한둘이어야지. 바로 길 건너의 ‘glorified family restaurant’인 에드워드 권 뭐시기보다는 좀 낫다. ‘두 번째 주방(second kitchen)’ 이지만 ‘2류 주방(second-rate kitchen)’은 다행스럽게도 아니다(아마도 간발의 차?). 그래서 한두 번 정도 들러서 ‘요즘 이런 곳이 유행이군’이라며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좋지도 않다. 그래서 좋은 음식과 술이 생각날때 가게 될 곳은, 적어도 나에게는 아니다. 점심에 혼자 5만원 이상 쓴다면 이보다 좋은 음식을 내야 한다. “캐주얼”한 분위기를 표방하는 곳이 많은데 흔히 농담으로 ‘그래도 가격은 캐주얼하지 않다’라는 이야기를 한다. 이 문제를 놓고 생각을 많이 한다. 원칙적으로는, 음식이나 분위기가 캐주얼하다고 가격마저 캐주얼해야만 할 필요는 없다. 좋은 재료를 비롯해 돈이 들어갈 여지는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도 캐주얼한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이 적절히 공존하고, 또 캐주얼한 곳에서 그 분위기를 핑계로 삼지 않을때 의미가 있다. 떨어지는 디테일이나 콘셉트의 부재를 가리기 위한 수단이 “캐주얼”인 경우가 많아 그 말 자체를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사실 ‘동방예의지국’이니 뭐니 해가며 예의 따지는 나라에서 음식은 맨날 캐주얼 따지는 것도 좀 웃기기는 하다. 사회 분위기는 좀 더 캐주얼하게 가고, 음식은 예의 좀 따져 가며 먹는 편이 차라리 낫겠다. ‘캐주얼’이라는 말은 면죄부가 아니다. 분위기가 캐주얼하다고 음식, 또는 조리를 대하는 자세까지 캐주얼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음식이 그렇다. “캐주얼”이라는 말의 의미를 너무 캐주얼하게 받아들인 탓일까?
# by bluexmas | 2013/05/27 14:21 | Taste | 트랙백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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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 gravy 와 같이 내는 mash 또한 side 로 pasta/rice 대신 먹는 것입니다. 내오는 방식이 다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