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이 말해주는 수준 사이의 괴리
사람을 만나기 위한 자리라거나, 내 돈을 내고 먹는 음식이 아닌 경우에는 그에 대한 글을 쓰지 않는다. 대접한 사람의 성의를 무시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원칙을 깨도록 만드는 음식도 종종 만난다. 지금 하려는 이야기는 어차피 맛보다는 형식에 대한 것이다.
얼마 전, 전망이 아주 훌륭한 서울 시내 한복판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다. 아무개 호텔에서 위탁 운영하며 일식과 중식의 “퓨전” 을 낸다고 했다. 음식도 괴악했지만 마지막에 나온 디저트, 아이스크림이 정말 가관이었다. 사진을 보라. 분명 넙적한 숟가락으로 대강 뜬 모양새다. 딱딱할때 그냥 퍼 담았을 것이다. 호텔 이름을 내세웠으니 스스로를 고급이라고 생각하는 레스토랑에서 이렇게 대강 담은 아이스크림을 낸다. 뭐 거기까지는 그런가보다, 생각했다. 괜찮은 건 당연히 아니지만 이런 경우를 하루이틀 보아온 게 아니기 때문이다.
어차피 뱃속에 들어가면 똑같지 않은가? 라고 생각하며 대강 퍼먹고 화장실을 가는데, 길목에 냉장고가 있더라. 유리로 훤히 안이 들여다보이는데, 저런 꼬라지로 미리 담아놓은 아이스크림 그릇이 여러 개 있었다. 표면이 마르거나 얼음 결정이 생길 것이다.
동네 떡볶이집에서 공짜로 주는 아이스크림이라면 사실 어떻게 담아 줘도 상관없다(어차피 셀프 아닌가?). 하지만 스스로 격식을 갖췄음을 내세우고, 그걸로 비싼 가격을 매기는 곳이라면 저런 부분에도 당연히 신경을 써야 한다. 내가 먹은 점심이 얼마짜리인지 모른다. 딱히 중요하지도 않다. 홈페이지의 메뉴에는 이십 오만원짜리 코스도 올라있다. 거기에도 저렇게 막 담은 디저트를 주는지 궁금하다(물론 250,000원 내고 확인하고 싶지는 않다). 실수라면 그냥 넘길 수도 있다. 저건 알건 모르건 의도적인 것이고 따라서 틀렸다. 분명히 이런 레스토랑을 기획하는 사람들도 회사돈 써서 외국에 나가 먹고 올텐데, 분명 그런 곳에서는 저런 식으로 아이스크림을 내지 않을 것이다.
아이스크림을 담는데도 격식이 있다. 가장 많이 쓰는게 ‘quenelle’형으로 담는 거다(바로 위의 사진). 저렇게 미리 담아 놓지 않고, 나갈 때가 되면 아주 뜨거운 물에 숟가락을 담가 몸쪽으로 밀어 퍼 담아서 모양을 잡아준다. 마침 예전에 디저트리 취재할때 찍어 놓은 손 사진이 있다. 숟가락 두 짝으로 모양을 잡는 방법도 있다.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좀 걸리지만,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기본적인 테크닉이다. 만약 저렇게 할 수준이나 여유가 없다면 아이스크림 스쿱을 쓸 수도 있다. 이 레스토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의 방산시장에서 5~6000원이면 산다. 크기도 다양하다. 역시 뜨거운 물에 담갔다가 퍼 올리면 깔끔하게 모양을 만들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기준이 없다는 점이다. 나의 돈으로 품을 수 있는 기대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소비자가 감을 잘 못잡는다. 그래서 서울에서 땅값 가장 비싼 동네 가운데 한 군데에 있는 무한리필 음식점에서 소스가 “수제”가 아니라고 불평한다. 기대가 너무 높은 경우다. 아니면 저런 아이스크림이 나와도 맛있다고 먹는다. 반대로 너무 낮은 경우다. 물론 이 글을 쓰는 일차적인 목적은 그런 소비자를 비난하려는게 아니다.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려는 것이다. 음식을 입에 넣었을때 느끼는 맛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가격 등이 빚어내는 기대나 형식을 만족시켜야만 맛이고 뭐고를 따질 맥락이 생긴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라는 속담이 있는 것처럼, 우리도 분명히 그런 부분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말할 수 있다. 저런 잘못된 것이고, 따라서 소비자가 지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달라진다.
# by bluexmas | 2013/05/22 14:00 | Taste | 트랙백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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