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지마 롤, 명성에 거품은 없나?
여차저차-설명 생략-해서 다녀온 후쿠오카 여행기를 날짜별로 정리하려다가, 그 명성만큼 따로 대접해줘야할 것 같아 따로 글을 쓴다. 도지마롤 이야기다. 아무 생각없이 들른 한큐 백화점 지하에 ‘몽셰르’의 매장이 있어 반쪽짜리(680엔)을 사와 좁은 호텔방에서 먹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케이크의 밀도가 생각보다 높다’였다. 비교가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유튜브에 돌아다니는 레시피로 흉내를 내보려다가 참담히 망한적이 있는데, 그때도 머랭을 올려 따로 더하는 케이크치고는 밀도가 높다는 생각을 했다. 무겁지 않은 크림을 감안한다면 케이크의 밀도가 조금 더 낮아도 좋겠다. 한편 단맛 또한 100이라면 60~70정도가 케이크에 몰려있었다.
한편, 먹고 나서 상자의 성분표를 보니 생각보다 많은 재료가 나열되어 있었다. 일단 한자로 유화제, 안정제 등을 확인하고 모르는 일본어를 물어보니 재료 목록은 다음과 같았다: (우)유 등을 주요원료로 하는 식품 (크림,식물유지,우유,그외), 설탕, 달걀흰자, 달걀노른자,밀가루, 버터, 식소금, 젤라틴가수분해물, 전분분해물, 유화제, 안정제(증점다당류, 카제인Na, 메타린산Na)… 미리 ‘도지마 롤’임을 밝히지 않는다면 여느 프랜차이즈의 롤케이크와 별 다를게 없는 목록이다.
물론 덮어놓고 ‘첨가물이 들었으니 나쁘다’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일단 아는 한도 내에서 첨가물의 역할을 따져보자. 크림이야 그렇고, 식물유지와 함께 묶어 놓았다면 케이크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크림이 100% 동물성이 아니라고 추정할 수 있다. 비율은 모르지만, 대량생산 제과제빵류에서 동물 및 식물성 크림을 섞는 이유는 일단 안정성 때문이다. 동물성만으로, 그것도 유화제나 증점제 등의 첨가물을 더하지 않으면 크림이 잘 올라오지 않고, 형태도 쉽게 무너진다. 그래서 특히 레이어드 케이크의 겉면에는 식물성 크림을 섞어 쓴다고 알고 있다. 여기에 소량의 젤라틴을 섞기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니 재료 목록의 ‘젤라틴 가수 분해물’ 또한 그런 맥락에서 넣은 것이 아닌가 보인다. 유화제나 안정제인 카제인나트륨, 메타인산나트륨은 계란, 특히 머랭의 기포 등을 유지해줘 반죽의 식감을 향상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첨가물의 역할을 따져보면, 일단 유효기간 설정에 의문을 품게 된다. 4월 14일 저녁에 산 케이크의 유통기한은 상자에 붙은 딱지에 의하면 다음날인 15일까지였다. 그럼 하루 또는 최대한 많이 잡았을때 48시간이라는 의미인데, 이렇게 짧게 잡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물론 유제품의 비율이 높지만 냉장보관할테니 48시간 안에 상할리는 없다. 그렇다면 크림이 무너지거나 수분(유청?)이 빠져나와 케이크에 수분이 배고 보기 흉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넣을만큼 넣은 첨가물은 과연 그 정도의 열화를 최대 48시간도 막아주지 못할까?
그래서 생각하게 된다. 이 도지마롤이 지닌 명성의 근원은 무엇인가? 맛? 비싸지 않고, 누가 일본 케이크 아니랄까봐 깔끔하게 잘 만들었지만 나에게는 줄을 서서 먹을만큼 뛰어난 느낌은 아니었다(물론 본점과 분점의 차이를 감안해야할지도 모르겠지만, 첨가물은 결국 생산 및 유통에서 평준화를 위한 수단일테니 크게 의식할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유지방의 비율이 높다면 크림이 풍부-느끼함이 아닌. 우리는 웬만하면 다 느끼하다고 평가하니-할텐데 딱히 그렇다는 느낌도 안들었을뿐더러, 비율은 모르지만 식물성 크림을 섞었다면 그걸 따지는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비법’같은 걸 믿지는 않지만 맛있는, 또는 인기를 얻는 음식이라면 비결이나 요령 정도는 궁금해진다. 도지마 롤의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 솔직히 읽기가 어려웠다. 평범한 맛에, 첨가물은 대량생산 및 유통 관리에 적합한 노선을 따랐음을 말해주는 동시에 판단하기 쉽지 않은 재료의 수준이나 의미를 본의 아니게 가린다. 먹을만하지만 특별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는데, 아무래도 내가 뭔가 놓치고 있는 것 같다.
EDIT: 일본에서는 ‘상미기한’ 또는 ‘소비기한’이라는 표현을 쓴다는 제보를 받고 다시 보니 도지마 롤의 딱지에는 ‘소비기한’을 4월 15일까지로 밝히고 있다.
# by bluexmas | 2013/04/26 12:16 | Taste | 트랙백 | 핑백(1) | 덧글(11)
Linked at The Note of Thir.. at 2014/02/05 14:28
… 도지마롤, 명성에 거품은 없나? 좋은 음식의 성패는 여운에 달렸다고 믿는다. 와인이나 위스키 등을 평가하는 항목에 ‘피니시’가 존재하는 것도 같은 이유라도 믿는다. 입에 막 넣었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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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되면 사먹어볼까~하던 마음이 사라져갑니다. ㅠㅠ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도지마 롤은 생크림을 가득 채워 시트로 감싼다는 느낌이고
그 발상을 히트로 이끌어낸 것이 유명세의 원인이 아닐까 생각해요
요즘은 아무나 다 하지만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던 것도 있구요
이제는 원조 로서 팔리는 느낌이랄까요
도지마 라는 곳이 유명하다는 것을 알기 전에도 코롬방(일본) 같은 대량 생산 케이크 가게나 혹은 그래도 나름 비싸고 잘한다는 곳들의 롤 케이크 에 비해서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맛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최고라고 하긴 그렇지만 그 정도의 롤 케이크를 한국에서 만드는 곳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고요.
고베와 나가사키 쪽 제과점들을 한 번 가 보았으면 하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예전만큼의 희소성은 없지만 그냥저냥 먹을만한 수준은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언급하셨던 인기의 원인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고 당도한 결론은, 전략적 마케팅과 그에 충실히 반응해준 소비자 탓이라는 겁니다. 도지마 롤이나 도쿄 바나나가 일종의 ‘일본여행 증명품’ 처럼 소비되는 현상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요. 특정집단이 향유하는 것에 대한 동경과 열망. 거기에 일본에서만 먹을 수 있는 한정된 자원이라는 점도 한몫 거들테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