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단의 변

친절하고 싶지 않고 그럴 이유도 없으니 간단히 언급하고 넘어가겠습니다. 대꾸할 가치가 없는 이야기도 너무 많네요. 님보다 훨씬 많이 아는, 현업 이탈리안 셰프에게 조언을 구했음을 미리 밝힙니다.

1. 생파스타

– 죄송합니다. 타야린이 뭔지 저도 압니다. 심지어 제가 번역한 책에도 레시피가 나옵니다. 반죽에 파르미지아노 치즈를 넣는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봅니다.

– 우유를 넣는 레시피는 저도 처음 써봅니다만, 어디에도 설명이 나오지 않아 의아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반죽이 뻣뻣해진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밀가루 반죽에 넣는 지방류는 글루텐 발달을 방해해 반죽을 부드럽게 만드는 용도로 쓰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세요. 부드러움을 위해 노른자 위주로 반죽을 만드는 상황에서 다시 뻣뻣하게 만들기 위한 재료를 넣겠습니까?

– 중국집에서 짜장면 시켰을때 자기들이 뽑은 면을 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거랑 파스타 생면이랑 차이가 무엇일까요? 계란이 들어가는 걸까요? 칼국수니 짜장면 같은 생면이 있으니 굳이 생파스타로 엄청난 것처럼 유난 떨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 크림이나 버터가 “훠어어어어얼씬(‘어’의 개수를 그대로 옮기기 위해 복사-붙여넣기 했습니다. 누가 보면 제가 과장한 줄 알까봐.)” 고급이 아니면 생파스타를 만들면 안되는 거군요. 버터야 그렇다 쳐도 크림은 별로 고급이 없으니 만들지 말까요? 

 

– 최근 <이코노미스트>에서 우리나라 맥주가 북한의 대동강보다도 맛이 없다고 그래서 제조업체들이 화를 내고 민속주 개발인가 뭔가 하신다는 분이 감싸주는, 말도 안되는 글도 쓰셨죠. GDP 순위를 들여다보다가 아무리 밑으로 내려도 안나와서 포기했는데 북한이 우리나라보다 말도 안되게 못살지만 대동강만은 우리나라 맥주보다 맛있는 게 사실입니다. 사실 우리가 무시하는 동남아 국가 맥주가 다 우리나라 것보다 맛있죠. 우리보다 못사는데 왜 맛있을까요? 못 살아도 맛있는 음식 먹을 수 있습니다. 기후나 토양 조건 덕분에 농수산물이 풍부하면 가능합니다. 또 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으면 가능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맛없는 음식이 대부분인 이유가 이탈리아보다 못 살기 때문일까요? 음식이나 조리에 대한 관심까지 수치로 환산할 수 있을까요? 

 

-고급 올리브유 이야기 하셨는데, EU의 규정에 따르면 병입만 했을 경우 자국산이라는 딱지를 붙일 수 있기 때문에 북아프리카 같은 곳에서 탱크에 담아 배로 들여온 올리브 기름을 병입해 이탈리아산이라는 딱지를 붙여 파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경우 가격만큼 고급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 수치를 근거로 삼는데는 헛점도 따릅니다. GDP대비 농수산물에 쓰는 비용으로 식생활 수준을 가늠할 경우, 나라마다 다른 물가 수준의 보정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기후와 토양이 엄청나게 좋아 식자재가 말도 안되게 싼 지역은 어떨까요? 농수산물에 쓰는 비용이 말도 안되게 낮으면서도 맛있는 걸 먹을 수 있지 않을까요? 보통 음식에 대해서 잘 모르는 매체 기자들이 자기 주장에 자료를 끼워 맞추기 위해 통계며 사회적인 시각 등등을 쓰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만…

– 재료 사서 자기가 음식 만들때 식당에서 먹는 것보다 비싸게 먹히는 나라도 있습니까? 

 

2. 포르케타

– 이걸 참조하세요. 제가 참조한 레시피입니다. 님이 시비를 거는 사항에 대해 저보다 더 잘 설명해줄 것입니다. 

 

– 애저로 만들지 않는 포르케타가 미국 이민자 스타일이라… 이걸 보고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단지 미국 이민자들만 포르케타를 그런 식으로 해먹는게 아닙니다. 이걸 보시죠. 제이미 올리버의 스승 제나로 콘탈도의 레시피입니다만, 이 사람 이탈리아가 고향입니다. 이런 기사도 있으니 한 번 읽어보시고요. 저는 애저로 만드는 고전적인 포르케타와 그렇지 않은 것이 공존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이탈리아를 너무나도 사랑하시는 나머지 그걸 도저히 인정 못하시는 모양이네요. 

 

– 회향씨를 쓰지 않아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애저를 쓰지 않아 이탈리아의 정통성을 한 번 죽인 것으로 모자라 회향씨도 빼먹었으니 두 번 죽인 셈이네요. 요즘은 ‘그냥 웬만하면 있는 거 쓰자’ 주의라서… 회향씨가 없다고 삼겹살 말다 말고 뛰쳐나갈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제가 이태원에 사는게 아니니 집 앞 수퍼에서 바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아, 저의 자문역께서는 “찾아보니 마르케에서는 마늘과 후추, 딜, 화이트 와인을 쓰던데?”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쓰는 양념 또한 지역마다 다르지 않겠습니까? 혹시 요즘에는 ‘spice police’, 또는 ‘fennel police’등이 돌아다니면서 A라는 음식에 특정 향신료를 쓰는지 마는지 단속하고 그럽니까?  제가 이탈리아에 마지막으로 간게 10년도 더 전의 일인데 그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물론 강산이 바뀔만한 세월이니까 가능도 하겠습니다만… 님 말씀마따나 “망해가는 나라”라면 인심이 박해져서 그럴 수도 있겠네요. 

 

– 장작 오븐 좋지요. 그런데 아파트에서 쓸 수 있습니까? 금방 이사했는데 그런 아파트 있었으면 그리로 갈 걸 그랬습니다. 이탈리안 정통 장작불 포르케타도 굽고, 이탈리아식 정통 피자도 구울 수 있겠네요. 이탈리아에 정통하시니 혹시 요즘 00밀가루가 수입되는지, 그것도 아시는지요? 본지가 오래입니다. 세몰리나도요. 

 

– 고기의 조리는 궁극적으로 ‘콜라겐->젤라틴으로의 변화 + 마이야르 반응’으로 알고 있습니다. 즉 장작불이나 전기 오븐이나 저온 조리 모두 길은 달라도 목적지는 하나라는 말씀입니다. 제가 집에서 고전 재현한다고 마루라도 뜯어서 때야 되겠습니까? 그리고, 왜 기술이 발달합니까? 저온조리니, 콤비 오븐이니 하는 것이 왜 나옵니까? 물론 장작불에 불때어 만드는 전통 음식, 훌륭하지요. 하지만 기술의 힘을 빌어 인력의 수고를 줄이는 것 또한 의미있습니다. 왜 이메일 보냅니까? 마음과 정성이 담긴 손편지 좋습니다. 그 둘의 의미가 같습니까? “이메일 빠르고 좋은데 왜 손편지 써 불편하게?”라는, 아니면 그 반대의 비난이 의미있습니까? 

 

– 태국 음식점에서 이런 요리를 먹었습니다. 튀긴 삼겹살을 볶았다고 설명하던데, 그럼 이 요리에서는 무슨 맛이 날까요? 튀김 삼겹살 맛? 튀김에서도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납니다. 즉, 팬에 지지나 오븐에서 높은 온도로 구우나 기름에 튀기나 결과는 마이야르 반응입니다. 

 

– 가공육의 기준이 무엇일까요. 훈연향? 그건 훈연 또는 훈제의 부수효과입니다. 원래 목적은 연기를 쐬어 표면에 한 켜 입힘으로써 미생물의 번식을 방지하는 것입니다. 가공육이 왜 나왔는지 생각해보셔야죠. 두고 먹기 위해 보존이 목적이라 미생물의 번식을 막기 위해 소금, 지방 등의 조건을 극단적으로 조성합니다. 연기를 쏘이는 목적 또한 거기에 있고요. 정통 포르케타는 귀한 잔치 음식이고 그날 바로 먹을텐데 이게 왜 가공육입니까?

찾아보니 대학 와인 동호회를 거쳐 와인 수입회사에 다니시더군요. 그럼 이탈리아, 특히 포도주 양조장에 가실 일이 있겠죠. 솔직히 저도 직장생활 해본터라 나이를 바탕으로 직급 계산해보면 ‘이탈리아, 이탈리아!’할 정도로 뻔질나게 드나드실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어쨌거나 그를 바탕으로 한 귀중한 의견 존중하고 주시는 거 감사할 일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새로울 게 별로 없을 뿐더러 이게 좋은 글을 쓰라는 조언인지 얕은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내놓는 자랑 겸 훈장질인지 헛갈립니다. 후자면 당연히 사양합니다. 님 말고도 훨씬 더 많이 아는 분들이 훈장질 아닌 조언을 베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찾아보니 다른 사람들 음식 해놓은데 덧글로 ’00 밥숟갈 몇 개’라는 식으로 훈장질하고 대접받으시더군요. 이왕이면 대접 받으시는 쪽에서 활동에 전념하시라고 배려의 의미에서 덧글 못 쓰시게 했으니 참고 바랍니다. 사실 저는 내 블로그에 글 써서 주장을 펼치는 것과 남의 블로그에 덧글로 훈장질하는 것이 아주 많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아, 님 블로그에서 본 것에 대해서 별로 언급하고 싶지 않습니다만, 설마 그 노란 딱지 발사믹 식초 쓰시는 것 아니겠죠? 저도 그거 이러저러 한 서너병 있었습니다만 먹지 않아서 결국 다 버렸습니다. 발사믹 식초가 얼마나 정통 이탈리안인지도 모르겠고, 그 식초 자체가 싸구려인데다가, 그거 아니고도 좋은 식초는 많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시간과 노력이 아깝다는 말씀 드리며 물러갑니다. 제 블로그는 님이 비빌 언덕 아닙니다.

 by bluexmas | 2013/04/23 15:16 | Tas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