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발렌타인-누군가의 그것처럼 망한 관계

제대로 즐거운 영화도 훌륭하지만 또 그만큼 제대로 우울한 영화도 마찬가지다. 이런 삶에 웬만해서는 위로도, 또 아래로도 완전히 바닥을 치게 만드는 건 생각보다 흔치 않기 때문이다. 둘 다 ‘그래봐야 사는게 다 그렇지 뭐’라는 한 마디 말로 느끼려는 스스로를 부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튠스 스토어 금주의 99센트 영화라는 이유만으로 생각없이 보았던 <블루 발렌타인>은 제대로 우울해서 훌륭했는데, 그 이유가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래봐야 사는게 다 그렇지 뭐’이기 때문이었다.

영화는 과정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좋았다. 물론 우울하고 끔찍했다는 의미다. 현재를 먼저 보여주기 시작해서 그 현재가 끝으로 가는 시점 사이사이에 과거를 잘라 조금씩 끼워 넣는다. 사람들은 찌들었다. 남녀 둘 다 일단 표정이 썩었다. 거기에 남자는 머리숱이 현저히 줄어보였고, 몸에는 문신이 가득하다. 물론 찌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주지 않으니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굳이 알아야할 필요도 없다. 원인은 잘못된 선택이다. 종종 삶이 끔찍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단지 삶이기 때문에 ‘새로운 출발’이라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비를 가리는 것과 상관없이 상처는 남고 또 (안타깝게도) 잊히지 않는다. 모두 자기만 그렇게 못하고 있을까봐 잊은 척할 뿐이다. 그래서 생각했다. 두 사람의 삶은 망했다고. 나름 행복해보이는 과거지만 그마저도 끝에서는 ‘ㅈㅁ할 것 같다’라는 느낌적 느낌을 아주 강하게 받는데 그건 영화를 쭉 보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 아니면 ‘그래봐야 사는게 다 그렇지 뭐’이므로 충분히 짐작 가능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성별에 상관없이 나는 여자의 선택이 싫었는데 그러면 ‘네가 남자라 그런 것이지?’라고 반박하는데다가 아니라고 말해도 안 믿을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을 것이므로 그만 언급하겠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있다. 참아줘야할 게 많은 혹은 그래 보이는 관계는 망한다. 그런게 없어도 망하기 쉬운 것이 관계이므로. 망한 관계가 지은 덤불 속에 우두커니 앉아 살다보면 안 망하는 관계라는 것이 과연 있는지 그게 궁금해진다. 아니, 망했으나 자기 부정하는 그런 관계는 빼고, ‘모두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붙일 수 있는 그런 것. 진짜 별로 없다.

 by bluexmas | 2013/04/09 00:26 | Movie | 트랙백 | 덧글(2)

 Commented by ærlgray at 2013/04/09 05:12 

이 영화 촬영이 들어 가기 전 감독이 두 남여 주연배우를 한달간 같이 살도록 지시했다더군요.

그래서도 두 배우들이 삶에 찌들은, 서로에 대한 환멸.. 이런 표정을 더 리얼하게 재현해 낼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현실적이고,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고, 누구나 어느 선에서는 한번씩 겪었을법 한.

그래서 참 서글펐습니다..

 Commented at 2013/04/09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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