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데까지 간 레스토랑 예약문화-공멸의 길
트위터에서 ‘노쇼’에 화가 난 레스토랑 관계자가 장본인들의 실명과 전화번호를 공개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보았다. 안타까웠다. 작년 말인가 올 초 다른 레스토랑의 셰프가 예약해놓고 연락없이 오지 않은 손님(단체였다)의 실제 명칭을 언급하는 걸 보고 곧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했다. 그때도 나의 태도는 비난보다 걱정에 가까웠다. 잠재적인 손님의 발걸음을 끊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약 문제에 관한 한, 나는 기본적으로 레스토랑의 편이다(물론 편들지 않고 싶은 레스토랑이 너무나도 많지만). 말도 안되는 손님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좀 다르다. 그럴만큼 화가 나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법적 문제 여부를 떠나서 그런 식으로 드러내놓고 반응할 필요가 절대 없다.
맞다, 레스토랑 운영자도 사람이다. 당연히 열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손님에게 그러한 모습을 보여서는 절대 안된다. 이건 단지 그런 매너로 예약해놓고 나타나지 않은 특정인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손님 모두에게 적용되는 논리다. 모든 손님이 그러한 태도를 자신을 향한 것이라고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접객업이 어렵다. ‘간 쓸개 빼놓고 장사해야 한다’라는 말이 부정적으로 들리겠지만 그런 식으로 대응해봤자 당장 기분은 좀 나아질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부정적인 영향밖에 미치지 않는다. 차라리 가면을 쓰던가 아예 그럴 소지가 있는 비공식 SNS를 하지 않는 편이 낫다. 셰프들은 종종 ‘hospitality, 즉 음식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다는 마음은 선천적이다’라는 말을 한다. 접객업에 맞는 사람이 분명히 따로 있다는 의미다. 없다고 할 수는 있지만 적성에 맞는 일이 존재하고 그걸 택하면 더 잘, 즐겁게 할 수 있다. 접객업도 마찬가지다. 이건 다른 화제지만 아무런 교육도 준비도 없이 음식장사에 뛰어들면 서비스는 당연히 질이 낮을 수 밖에 없다. 이는 또한 우리나라에 지나치게 높다는 자영업 비율과도 맞물려 있다(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글을 쓰겠다).
이렇게 극단적인 예외 상황을 빼놓는다면 레스토랑 예약에 대한 문제는 기본적으로 손님의 잘못이다. 접객업이므로 ‘손님이 왕’인 것은 맞다. 하지만 단지 지갑만 연다고 해서 손님이 저절로 왕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 이유만으로 군림하려 든다면 그건 그냥 폭군이다. 손발 오그라들게 역사까지 들먹이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성군도 태평성대도 그저 옥좌에 앉아있는 것만으로 찾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대접받고 싶다면 대접해줘야 한다. 예약을 준수하는 것도 바로 그 대접의 핵심에 속한다. 소위 말하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은 아무 생각 없는 오후 네 시쯤 ‘아 오늘 각잡고 코스나 한 번 먹어볼까?’라는 생각에 뚜벅뚜벅 가는 곳이 아니다. 물론 ‘워크인’도 가능하고 레스토랑은 그런 손님을 반기겠지만 지갑을 여는 마음가짐 자체가 그런 손님은 거의 없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마저도 전화를 걸어 확인하고 가는게 레스토랑은 물론, 헛걸음을 막아주므로 손님에게도 좋다. 게다가 그런 레스토랑에서 내는 음식은 대부분 서양식이니 삼겹살처럼, 보통의 우리나라 식성을 가진 사람에게 매일 생각나는 음식도 아니다. 요는 레스토랑 방문을 위해 예약하는 것이 전부 계획에 의한 것일테니, 나타나지 않고 연락도 안하는 것 자체가 지극히 의도적인 행위이고 손님, 그도 아니라면 약속이라는 것을 한 사람의 도리에 어긋난다는 의미다. 물론 못갈만한 사정은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분명 전화해서 구차한 소리 늘어놓는게 싫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약속이니 지켜야하고, 그럴 수 없다면 그 정도 구차한 일 정도는 감수하는게 배려다. 만약 그것도 못한다면 손님으로서 서비스 받을 자격이 없다.
그도 아니고 크리스마스나 밸런타인데이 같은때 아예 의도적으로 복수의 레스토랑을 예약하는 사람들이 있다던데, 가장 악질이다. 그게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이런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블랙리스트에 올려 관리해야 된다. 오픈테이블 같은 온라인 예약시스템이 사실 이런 문제에는 가장 효과적이다. 300달러짜리 저녁을 먹어야 한다면 온라인을 통해 예약하고 150달러 정도를 미리 걸어야 한다. 물론 부득이한 사정 때문에 예약을 지킬 수 없다면 일정 기간 안에 손해보지 않고 얼마든지 취소가 가능하다. 하지만 이러한 시스템이 우리나라에 정착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무엇보다 이 복잡한 카드 결재 시스템 때문에 번거롭기도 하거니와, 사기의 가능성도 절대 배재할 수 없다. 단명하는 레스토랑도 많으니 양식을 내는 레스토랑들만을 대상으로는 묶기가 어려워 보인다. 차라리 단위 금액을 정해 예약금을 온라인 송금하는 제도를 도입하고 이행할 경우 음식값의 일정 비율(5~10%)를 할인해주는 제도가 실현가능성 높다고 보는데, 이 또한 단체 손님 등을 위해 요구할때 기분나빠하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하니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다 늘어놓고 나면, 언제나 똑같은 결론에 이르지만 정말 답이 없다. 그러나 정말 더 많이 생각해봐야 한다. 수요가 많은 재화의 경우 예약을 통한 소비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 및 정착된다. 영화가 좋은 예다. 주말에 편하게 영화를 보기 위해 사람들은 기꺼이 예약한다. 여기에 스마트폰을 통한 이동통신 환경까지 더하니 영화 한 편 보는데 예약을 안할 이유가 없다. 심지어 매년 봄마다 한정으로 운영한다는 고급 호텔의 딸기부페에도 예약이 가득찬다니 그 대상이 비싼 음식이라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이미 많은 분야에서 예약문화가 잘 이루어지고 있는데 왜 음식, 특히 파인 다이닝 분야에서는 예약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길까? 원인을 하나하나 꼽다가 지친다. 그래서 일단 한 가지만 말한다. 대접 받고 싶으면 대접해줘라. 존중은 일방통행이 아니다. 이렇게 가다가는 분명 공멸한다. 이미 그리로 가고 있다.
# by bluexmas | 2013/03/15 12:03 | Taste | 트랙백 | 핑백(1) | 덧글(27)
Linked at 키세츠, LNR의 이글루스 경.. at 2013/03/15 16:35
… 것보단 예약을 선호하며 가급적 예약이 되지 않는 곳이라면 잘 가지 않는 편이기 떄문이다. 노쇼하는 사람이 증가할 수록 공멸할 뿐이라는 ( http://killjoys.egloos.com/4786144 ) 의견에도 적극 찬성하고 있다. 그렇지만 “잘못을 저지른 이를, 내가 더 큰 잘못을 저지르면서까지 응징해주겠어!”라는 … more
에의가 어느 하나가 차린다고 해서 한순간에 바뀔수 있는건 아니지만, 이런 경우에서는 누가 먼저 했어야 하는지는 분명한거 같아요.
예의에 대한 이야기가 좀 더 보편화 되면서 시스템적으로도 보완될 수 있는 부분이 발전해야 겠네요.
글 감사합니다:)
결재가 외국처럼 카드번호/CVS로만 되면 이렇게해도 전혀 문제가 없을텐데 별별걸 다 깔아야하다보니 참 난감합니다.
대체 뭔생각으로 사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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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건 덤 -> ../pds25.egloos.com/pds/201303/15/31/e0019531_5142e2f12e8c3.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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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업장에선 40만원짜리 단체 예약을 해놓고 통보도 없이 오질 않아서 빡친 기억이 나네요 -_-;
적어도 저는 아예 몰랐으면 모를까 그런 주인의 사고방식을 알고서는 그 레스토랑에 갈 일을 없을 것 같군요… 그래서 두번째 문단이 참 와닿았어요.
예약시간에서 15분 이상이 지나면 그 전에 좀 늦는다고 연락이 없었던 손님이라면 그 테이블은 예약없이 온 손님에게 넘긴다던가 하는 방법도 있었을텐데 한시간씩 비워두는 건 좀 인력낭비 같아요. (그런데 문제는 워크인 손님이 많이 없어서 이 방법도 자리가 없어서 예약 못한 손님을 놓친 업주에겐 속이 상할 일이겠네요) 음.. 해결방법은 정말 많이 생각하고 고민해봐야겠어요.
아니면 예약일 전날에 컨펌 전화를 한다거나.. 해서 24시간 안에 re컨펌 연락이 없으면 테이블을 저절로 취소한다던가.
개인적으로 단체예약은 몇만원이라도 미리 돈을 걸어야한다고 생각해서, 그게 가게 policy라고 설명해도 그것때문에 기분나빠서 예약 안할 손님이면 안올 확률도 높은거 아닌가 싶어요. 부담되지 않게 예약금으로 몇만원 정도만 걸어도 되면 진짜 올 손님이면 별로 개의치 않을 것 같은데..
저보다 레스토랑 관계자들이 더 열심히 고민하고 그래도 안되니까 이런 일도 생긴거겠지만 그냥 답답한 마음에 몇 자 적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