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안 보이는 생태탕
강원도 어느 동네에서 생태탕을 먹었다. 2인분 기본에 25,000원. 토요일 아홉시 반쯤 되는 시각이었다. 손님이 하나도 없었는데 상을 차리자 가족으로 보이는 네 사람이 더 들어와 전부 여섯명이 드넓은 식당에서 썰렁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밥을 먹었다.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빨간 국물에 팔뚝만한 생태가 한 마리 들어있었다. 국물을 떠먹어보니 그야말로 달달했다. 어차피 흰살 생선 자체로는 국물이 나올리 없으니 멍석을 깔아주려면 꽤 많은게 필요한데 이거저거 다 덜어내고 조미료에만 열심히 기댄 맛이었다. 그러느니 차라리 물에 라면스프만 넣고 끓이는게 생태한테 덜 미안할 것 같은 국물이었다. 역시나 음식의 가격에 미안한 분위기의 플라스틱 접시에 담긴, 절반 이상은 있어도 없어도 그만일 반찬도 함께 깔렸다. 십 분 정도 지나고 네 명으로 기억하는 손님 한 무리가 밥 먹을 수 있느냐며 들어왔는데 주인은 영업이 끝났다며 내보냈다. 그리고는 다음날 아침을 위한 것인지, 일하는 사람들이 전부 달라붙어 솥의 밥을 공기에 나눠 담는 것이 보였다. 물론 나와 다른 손님 일행 앞에 깔린 밥은 그 전날 같은 시각에 똑같이 지어 나눠 담았을, 마르고 풀기 없는 것이었다. 사람 하나 없이 썰렁한 거리에 가득한 썰렁한 식당 가운데 그래도 당신네들 밥 먹겠다고 온 사람들인데, 부러 따뜻한 밥 지어줄 필요까지는 없어도 이왕 갓 지은 걸 줄 수는 없을까 의구심이 진하게 들었다. 대강 떠먹고 나가려 계산하는데 주인은 ‘일하는 아주머니들이 힘들까봐 손님을 더 못받았다’며 딱히 우리에게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했다. 그 동네는 굉장히 애매한 위치에 자리 잡고 있고 딱히 내세울만한 것도 없어 그 지옥같던 영동고속도로 정체에도 이미 그 시각에 유령도시처럼 한산한 곳이었다. 한 줄에 천 오백원짜리 김밥이나 서울 한복판 육천원짜리 백반이라면 큰 기대를 하지 않는데 적어도 부동산 가격이 훨씬 쌀 수 밖에 없는, 서울에서 몇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객단가 만원을 훌쩍 넘어도 음식에 아무런 생각도 마음도 안 담겨 있기는 마찬가지다. 회사를 ‘적당히 일해서 돈이나 벌고 남는 시간에 내 취미활동이나 해야지’라는 마음으로 다녔다가는 일도 제대로 못하고 도태되어버리기 딱 좋은 사회에서 살겠다고 죽어라 일해봐야 그로 인해 고픈 배는 결국 이런 음식으로밖에 채울 수가 없다. 음식장사하는 사람들 너무 날로 먹으려 드는 것 아닌가? Hospitality(이거 참 우리말로 옮기기가…) 없으면 음식장사는 정말 안 하는게 낫다.
# by bluexmas | 2013/03/13 21:06 | Taste | 트랙백 | 덧글(6)
밥의 경우엔 식대 상관없이 사명감.고집이 있는 식당을 고르는게 중요합니다. 몇만원~십만원씩 내도 제대로 안내오는 데는 안내옵니다..
‘손님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 이라고 길게 늘여 볼 수 있을까요?
위에 글을 보니 모 터미널 식당에서 먹었던 순두부 찌개가 떠올랐습니다.
순두부 찌게를 무척 좋아해서 이곳 저곳에서 많이 먹어 봤는데.. 6천원이였나? 멀건 국물에 야채라고는 파 쪼가리, 그리고 순두부 위에 후추가 잔뜩 뿌려진. 도저히 먹을수 없는 그런 음식이였죠.
많은 식당들이 자식 까지는 아니더라도 귀한 손님에게 대접한다는 마음으로 식사를 내어 주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