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P, J
건축에 관한 글을 쓰다가 착잡해짐과 동시에 옛날 생각이 나서 다녔던 회사 홈페이지를 간만에 들여다 보았다가 첫 사수 J의 부고를 들었다. 12월 31일에 세상을 떠났는데, 마지막 사수인 또 다른 J에게 물어보니 폐암이 사인이란다. 향년 55세.
원래 그런 걸 잘 물어보지 않으므로 직접 들은 적은 거의 없지만 그는 심장 이식 수술이 실험 단계였던 30년 전, 그 수술을 받고 오늘날까지 살아 성인 심장 이식 수술 환자로는 수술 이후 가장 오래 산 사람으로 기록되었다고 한다. 딱히 건강에 집착하는 사람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무관심한 사람은 더더욱 아니라 사인을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여기에 자세히 쓰기는 그렇지만 그동안 먹어왔던 약이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들었다.
쉰 다섯이었던 그는 주로 기술적인 측면이나 디테일 담당이어서 나처럼 갓 들어간 인턴(임시직이 아니라, 건축사 면허를 따기 이전 건축가들에게 붙이는 통칭)들과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가 스케치로 단면 상세 등을 그려주면 인턴들이 그걸 도면으로 옮기는, 가장 전형적으로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결합된 건축회사의 전형을 따르는 일이었다.
아직 채 십 년도 안 된 이야기라 꺼내기 좀 그렇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최악의 상황이었던 시기에 회사에 들어갔고 그래서 (이제와 돌이켜보니 그렇게 생각이 들지만) 적응도 못하고 일도 잘 못했다. 그래서 그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가 결국 입면 하나의 좌우를 바꿔 그리는 실수를 했고, 그게 낙타 허리를 부러뜨린 마지막 지푸라기가 되어 소장단에게 나를 자르자고 요청했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지금하기 좀 그렇고… 어쨌든 한 4년 버티다가 결국 잘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상황을 잘 넘겨서 그럭저럭 버텼고 이후에는 일도 그럭저럭해서 그와도 바람직한 관계를 유지했다. 아예 다른 스튜디오로 옮겨간 뒤에도 건축사 면허 자격 취득을 위한 감리일 때문에 일을 도와주었고(바로 이 포스팅. NFL팀 Atlanta Falcons의 홈인 Georgia Dome이다), 그게 마음에 들었는지 학교(그와 나는 대학원 동문이다) 미식축구 경기와 시카고-두비브라더스 콘서트에 데려간 적도 있었다.
회사 사람들은 물론 애틀랜타에서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에게도 거의 일부러 연락을 안하고 산지도 오래라 소식을 잘 모르고 있었는데, 재작년 8월에 메일을 한 번 주고 받은 적이 있다.
ANY ONE ALIVE OUT THERE
I hear rumors that you are a famous blogger in Korea. What is up with you.
그래서 나는,
SORRY THEY ARE ALL DEAD
Hey J, wonder who said that. I do blogging but I am known as a freelancer writer. My specialty is architecture and food. I have been writing for magazines and have my own book and stuff. What is up with you? Still working for ###? Are they still in business?’
라고 받아쳤다.
그 뒤로 또 메일을 받지는 못했고, 이렇게 홈페이지를 통해 그의 부고를 들었다. 생각난 김에 메일을 뒤져보니 회사에서 정리해고 당하고 돌아오던 시기에 주고 받은, 자기 심장 수술 이야기를 하면서 담당 의사로 짐작되는 사람이 해줬다는 ” Tough Times don’t last tough people do”라는 말을 인용한 메일도 있더라.
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당시만 해도 심장 이식 수술이라는 것이 획기적인 일이라 그는 필 도나휴 같은 토크쇼에도 출연하는 등 유명세를 탔다고, 생각난 김에 찾아본 지역 부고 및 신문 기사에 쓰여 있더라. 그의 부고를 접하고 나니 그렇지 않아도 찔끔찔끔 나던 옛날 생각이 우수수 쏟아져, 어제는 하루 종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원래 그는 미시건 호숫가의 어느 동네 출신이라 장례식은 그쪽에서 치르고, 아마 우리 시간을 지금쯤 애틀랜타에서 추모 예배를 치른다고 한다. 미국에 있으면 가겠지만 그렇지 않은지라, 생각도 난 김에 또 다른 J에게 오랜만에 메일을 보내 대신 추모든 안부든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그와도 정말 오랜만에 연락했는데, 전혀 들어본 기억이 없는 둘째, 아들을 보았다고 들었다. 나와 그가 단 한 번에 지나지 않더라도 연락을 주고 받는 것처럼 그의 죽음이 오랫동안 닿지 않던 사람들을 본의 아니게 연결시켜줄 거라 생각하니, 이런 게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죽음인가 싶어 기분이 묘했다. 어쨌든 그의 명복을 빈다.
# by bluexmas | 2013/01/13 01:07 | Life | 트랙백 | 덧글(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