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산 2012
일 하나를 주섬주섬 해서 떠나 보낸 뒤 저녁을 먹겠다고 밥을 안치고 찌개를 끓였는데, 둘 다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잠시 고민하다가 전화를 걸어 치킨을 시키고, 그 사이 진창을 꾸역꾸역 걸어 편의점에 가 맥주를 사왔다. 어째 오늘 하루 이 기분이 지난 1년의 축약판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뭔가를 하려 애쓰지만 결론은 그냥 ‘닥치고 치킨이나 시켜, 맥주도 빼먹지 말고…’랄까.
며칠 동안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올해는 어떤 시간이었을까… 몇 가지 키워드가 떠올랐지만 <지랄>보다 압도적인 단어는 없었다. 그렇다, 올해는 지랄의 한 해였다. 그만큼 정말 부단하게 지랄했다. 때로 내가 할 수 있는 건 마치 지랄 밖에는 없는 것 같다는 지랄 같은 생각에 젖어 유치원때부터 느꼈던 피해의식까지 모두 끌어올려 처절하게 지랄했다. 일단 얼마 없는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거의 모두 빠짐없이 지랄하다 못해 그 짧은 시간 동안 말도 안되는 돈 받으면서 일하다가 어느 순간 뻥터진게 너무 짜증나 부업 갑님에게도 지랄했으며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모 케이블 방송국 어린 피디들을 속도 모르고 데리고 나오신, 그들의 상관인 아는 분께도 섭섭한 소리를 막 늘어놓았다.
물론 지랄은 오프라인에만 국한된 행동강령이 아니라서 블로그를 통해 혹세무민이니 뭐니 읊어가면서 특정 및 불특정 다수에게 지랄해댔으며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안 지랄하면 섭섭하다는 듯 지랄했다. 그러고도 모자라서 한 해의 마지막 날인 오늘마저도 누군가에게 싫은 소리를 해야만 했다. 지난 달에 잡지에 짧은 글을 실었는데 원고를 보낸 이후로 연락을 못 받았고 책이 오지 않아 당연히 안 보내주는 거라 생각하고 1차로 싫은 소리를 했는데 알고 보니 배송 사고 때문에 책이 오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다시 보내준 책을 붙잡고 열심히 기사가 실린 지면을 찾아보았으나 없길래 다시 찬찬히 살펴보니 내가 기고한 책은 12월호, 받은 건 1월호였다… 굳이 오늘일 필요는 없지만 책을 다시 보내달라는 메일을 쓰며 이렇게 지랄할 수 밖에 없는 팔자를 피할 수 절대 피할 수 없는 건지, 만약 그 슬픈 예감이 사실일 수 밖에 없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보았다. 그냥 ‘내 팔자 지랄 팔자’려니 생각하고 이젠 마음 놓고 시원하게 지랄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아니면 ‘이런 나는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인간’이라고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채찍질해가며 지랄의 욕망을 거부해야만 하는 걸까? 그냥 보신각종이 울릴때까지 코스트코에서 사온 싸구려 프로세코나 마셔가며 생각해보기로 했다. 참, 거의 보지 않기 때문에 신청 안해서, 아마 텔레비젼을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참 올 한 해는 지랄가지고 지랄같이 지랄했다.
# by bluexmas | 2012/12/31 22:58 | Life | 트랙백 | 덧글(8)
모든 것이 나아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