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맥주, 맛 차이 논란은 무의미하다

121230. 아직도 끝나지 않은 한국 맥주 이야기……

(*사진은 글의 내용과 큰 관련이 없다. 시간이 나면 글을 쓰겠지만, 히타치노 네스트는 생생하지만 전반적으로 너무 굵은 쪽으로 치우치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을 부쩍 하는 요즘이다)

<이코노미스트>의 국산 맥주 관련 기사를 접하고 동감했는데, 사실 맛보다는 더 좋은 맥주를 만드는데 걸림돌로 작용하는 제도에 초점을 맞춘다고 생각했던 터라, 맥주회사들이 항의 서한을 보내네 마네 하는 민감한 반응을 보인게 오히려 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적반하장까지는 좀 그렇고, 자격지심 정도는 되어 보였다. 물론 회사의 입장에서야 전략적으로 그렇게 반응할 수 있지만 만드는 사람들의 한 길 마음 속에는 정답이 들어앉아 있으리라 믿는다. 90과 100의 차이라면 모를까, 50과 100 정도라면 너무 뚜렷해서 느끼지 않기가 오히려 어렵기 때문이다. 그쯤되면 그 잘난 ‘입맛은 주관적’이라는 말을 해봐야 더 구차해지기만 할 정도의 차이다. 그걸 structure라 할지, 아니면 clarity라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대동강 맥주는 국산 맥주에 비해 훨씬 더 표정이 뚜렷하면서도 디테일이 생생하다. 물론 가격 차이 등을 평가에 고려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렇게 따진다면 어차피 국산 맥주와 비교할 수 있는 수입 맥주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러나 이마트 등에서 직접 들여오는 1,500원짜리 캔맥주도 안타깝지만 국산 맥주보다 맛있다).

맛의 측면에서 참 미안하고 가슴 아픈 이야기지만 우리 맥주는 별로 할 이야기가 없다. 유명하시다던데 솔직히 나는 모르는 분이 한국일보에 -이걸 읽고 귀찮지만 글을 써야 되겠다고 생각했다-을 쓰셔서는 ‘술이 만들어 지는 물리적 환경과 기술적 상황을 감안해 볼 때 현실적 여건상 그럴 수 없다고 판단된다’라는 주장을 펼치셨던데, 그렇게 따진다면 북한은 차치하더라도 우리가 후진국이라고 생각하는 아시아 여러 국가의 맥주가 왜 훨씬 더 맛있는지 되묻고 싶다. 물론 트랙백한 까날님의 글에 잘 설명되어 있는 것처럼 여건 탓도 있지만, 우리 맥주는 애초에 그냥 잘 만들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없이 만드는 결과물 같다는 느낌 밖에 주지 않는다. 2010년 여름, 월드컵과 관련해 치킨과 맥주에 관한 기사를 쓸 일이 있었는데, 혹 공장에서 바로 나온 것은 좀 나을까 싶어 전주의 하이트 공장 견학까지 부랴부랴 신청해서 가보았지만 시간과 노력을 들여 부러 가서 마실 만큼은 아닌 신선함이 조금 더 두드러질 뿐이었다. 프리랜서라 대주지도 않으니 기름값이 아까웠다.

물론 외국 맥주라고 해서 다 맛있는 건 아니다. 내 경험 내에서만 따져보아도 미국의 버드와이저 같은 맥주는 국산 맥주와 별 차이 없는 수준이다. 그래도 다양성 덕분에 그런 맥주의 존재가 딱히 사람을 짜증나게 하지는 않는다. 물론 아주 비싼 맥주들도 얼마든지 많지만, 아주 큰 가격의 차이 없이도 괜찮은 맥주를 얼마든지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음식도 마찬가지지만, 국산 맥주에게도 다양성의 확립 또는 확보가 가장 시급한 과제다. 원래 맛없는 맥주의 변종만 만들거나, 그것마저도 못해서 괜히 캔에 야구팀 로고 찍거나 휴지, 소맥컵 등등을 끼워 팔 생각은 이제 좀 그만하고 가격대를 다양하게 조정해서 지금보다 더 좋은 맥주도 내놓아야 한다. 이름만 라거인 라거만 내놓거나 억지로 마무리를 좁혀 놓은 듯한 드라이 맥주만 내놓을게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다른 종류의 맥주를 만든다는 생각을 하고 이미 많이 들어와 있는 에일이나 기타 다른 맥주도 보다 더 적극적으로 개발해야 한다. 지금 들어와 있는 다양한 가격과 맛, 품질의 수입 맥주로 이제 소비자에게도 다양하게 비교하고 선택할 수 있는 안목이 생겼다. 심지어 국산 맥주에 만족하지 않는 사람들은 직접 맥주를 만들어 나눠 마시기도 하는 현실이다. 국산 맥주가 맛없어서 싫지만 그렇다고 걱정하기까지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다. 너무나 자명하므로 맛 논란은 제발 좀 그만 두고 이제 좀 멀리 봐줬으면 좋겠다. 무슨 대표라는 분이 그렇게 설명하는 시설이니 ISO 9000 따위가 잘 갖춰졌다면, 그걸 바탕으로 좀 비싸도 좋으니 맛있는 맥주를 만들어 달라. 그만큼 열심히 마셔주겠다.

 by bluexmas | 2012/12/31 00:59 | Taste | 트랙백 | 덧글(10)

 Commented by 번사이드 at 2012/12/31 01:22 

맥주도 좋은 건 참 맛있는 건데..정부도 회사도 국민도 음식,맥주를 참 우습게 봅니다..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 동남아 것보다 훨씬 못한 맥주가 그득한 곳에 묶여있어야 하는건지 ㅠ.ㅠ

 Commented by bluexmas at 2013/01/01 23:41

어휴 맥주도 훌륭한 술이죠. 왜 싸구려 알코올처럼 낙인찍혔는지 모르겠습니다.

 Commented by sf_girl at 2012/12/31 05:01 

올해 여름에 두 시간짜리 맥주 수업을 들었어요. 겨우 두 시간이었지만 뉴욕산 맛있는 맥주 리스트도 받아오고 하여간 재미있었는데 선생님이 이렇게 울분을 토하시더군요. 와인은 맛없는지 맛있는지 품평을 하는 사람들이 왜 맥주는 행주빤 맛-_- (그런 표현을 썼던 것 같아요 본인이)이 나도, 맥주가 원래 이런 술이지, 하고 넘어가느냐고.

저 오키나와 맥주, 일본 식료품점에서 팔긴 파는데 꽤 비싸더라고요. ‘ㅅ’

 Commented by bluexmas at 2013/01/01 23:41

블로그에 포스팅 올리지 않으셨나요? 보았던 기억이… 뉴욕에도 훌륭한 맥주 많잖아요. 가까이 브루클린에서 나오는 것도 있고 쿠퍼스타운 가는 길에 오메강인가도 있는 걸로 알고 있고요. 굳이 히타치노 네스트 비싸게 사 드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삼별초 at 2012/12/31 07:37 

아직도 목넘김으로 승부할려고 하니…주세법에 대한 계정이 빨리 이뤄져서 지금의 틀이 좀 깨어졌음 좋겠습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3/01/01 23:42

도수가 낮아서 그렇지 사실 목넘김이 좋지도 않습니다;

 Commented by 닥슈나이더 at 2012/12/31 09:00 

그래서 세븐브로이를 마시는거죠…

 Commented by bluexmas at 2013/01/01 23:42

그래도 잘 관리하면 좋은 생맥주들 많습니다…

 Commented by 술마에 at 2012/12/31 09:06 

그래서 만들어먹죠.

 Commented by bluexmas at 2013/01/01 23:42

한 번 마셔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