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없어서 맛있는 사과와 지나친 과일의 단맛
이런저런 사이트 등에서 비싼 것들도 사다 먹다가 아예 요즘은 동네 수퍼에서 떨어질 때마다 조금씩 사다 먹는다. 사과 이야기다. 사진으로도 볼 수 있겠지만, 이 사과는 썩 맛있지 않다. 동네 수퍼에서 대강 포장해서 파는게 아주 좋은 품질일 수는 없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맛이 없기 때문에 맛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과일을 평가하는 기준을 따져 보자면 ‘맛없는 과일=달지 않은 과일=싸구려’기 때문이다.이 사과는 지나치게 달지 않고 그래서 맛있다(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먹을만 하다’).
과일이 단맛만 지니는 건 아닐텐데, 요즘 우리가 먹는 건 막말로 단맛에 쩔어 있다. 과일의 평가 또한 거의 대부분 단맛을 기준해 이루어진다. 각종 마트에 가면 당도를 나타내는 단위인 ‘브릭스(brix)’ 정보를 반드시 표기하고 있다. “이런 저런 사이트”에서 파는 비싼 사과도 장점이라고 첫머리에 내새우는게 ‘높은 당도’다. 물론 간단하게 수치로 표기해 우수함을 증명하기에 그만큼 좋은 지표도 없을테지만 토마토 같은 “채소”에도 당도 표기를 해놓는 것은 물론, ‘토마토가 달지 않아서 맛없다’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현실마저 되었다(모 레스토랑에 처음 갔을때 거기 셰프가 ‘프랑스에서 먹은 토마토는 무슨 디저트처럼 달더라고요’라고 말하는 걸 듣고 사실 좀 놀랐다. 단 토마토가 정말 토마토인가? 아니면 우리나라에는 그런 토마토가 없나?).
맛의 균형이라는 측면에서, 단맛이 지나치게 센 건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신맛과 향이 그만큼 죽기 때문이다. 얻는게 있다면 잃는게 있으니 단맛을 얻는다면 상큼함을 주는 신맛이나 향을 잃는다. 달지 않은 과일은 아예 향이나 신맛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름 참외에서는 이제 그 특유의 풋내를 맡을 수 없다. ‘스테비오 OOO’등의 딱지를 붙여 나오는 딸기도, 냄새만으로 침이 줄줄 흐르는 특유의 향은 없다. 한편 원래 설탕으로 단맛과 수분을 불어넣는 케이크를 비롯한 디저트류는 조금만 달아도 간이 센 음식 먹는 것처럼 난리를 치면서 이렇게 단맛이 지나친 과일은 대부분 ‘꿀’ 또는 ‘설탕’ 수박/참외/귤/사과 등등이라고 딱지를 붙여 판다. 단맛의 성질이나 필요를 바르게 이해한다면 원래 설탕을 쓰는 디저트가 가장 달아야 하고 과일에는 꿀이니 설탕이니 하는 딱지를 붙이면 안된다. 그러나 현실은 완전히 뒤집혀 있다. 단맛을 원하면 설탕을, 그 외의 것들을 함께 얻고 싶다면 과일을 먹으면 되는데 이젠 설탕에서 얻을 수 있는 걸 과일에서 그대로 얻을 수 있다. 이게 이익인지 손해인지도 이제 헛갈린다.
# by bluexmas | 2012/12/14 16:09 | Taste | 트랙백 | 덧글(23)
예전에 먹던 귤은 좀 더 시원한 맛이 있었던 것 같은데,
최근 사먹는 귤들은 너무 달기만 하고, 예전의 그 상큼한 느낌이 줄어들어서..
그게 좀 아쉬워요 ㅠ_ㅠ
왜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설탕을 혐오하게 됬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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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맛은 어디가고 달콤한 맛만이…(..홍옥같지 않은..)
물론 생산자도 주지하는 사실입니다. 일반 소비자한테 당산비라는 말을 꺼내면 얼마나 알아들을까요..? 그냥 와닿기 쉬운 용어를 우선 쓸 뿐인데, 이게 또 파는 사람은 생산쪽으로는 전혀 무지하기 때문에 당도만 높으면 최고인줄 알기에 벌어지는 해프닝이죠… 홍옥은 특히 신맛이 강한 품종이긴 한데, 세월이 지났다고 유전자가 바뀌었을 리는 없으니 먹는 사람 입맛이 달라졌거나 기후가 달라져서 그렇거나 둘중 하나일 겁니다. 요새 신거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끔 찾는고로 홍옥이 동네 과일가게에 가끔 나오곤 하네요. 아오리는 숙성이 빠른 녀석이라 파는 기간도 짧을 수 밖에 없습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