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너츠는 트라우마의 열매
사진에서 볼 수 있듯 이 도너츠는 실패작이다. 아주 오래전, 그것도 튀기기 귀찮아서 구워보려 했다가 처참한 실패를 맛본 후 그 트라우마를 안고 여러해를 살다가 이제는 벗어버리고 싶어 간만에 기름솥을 데워 시도해보았건만, 결과는 이전 트라우마 위에 한 겹의 트라우마를 덧씌우는 꼴이 되고야 말았다.
꼴같지 않지만 이 도너츠는 무려 발효 반죽으로 만든 것이다. 도너츠 믹스도 그렇고 대부분의 도너츠는 베이킹파우더와 소다를 이용해 부풀리는 일종의 퀵브레드지만 발효를 거쳐야 한다니 뭔가 더 고난이도 같아서 도전해본 것. 하지만 문제가 있었으니, 계란과 버터를 넣어 굉장히 부드러운 반죽이 두 번의 발효 과정을 거쳐 너무나도 가볍고 폭신해져, 발효시킨 베이킹팬에서 기름솥까지 옮기는 약 3cm의 대장정을 거치는 동안 모조리 꺼지고 비틀려버린 것이다. 그나마 사진 한 장 찍어보겠다고 개중 나은 놈을 골랐지만 그렇다고 아주 볼품있는 건 아니다.
한편 튀김 온도계 또한 문제의 근원이었다. 유리관 내부에 종이인지 플라스틱 필름으로 만든 온도 눈금을 넣어 놓았는데 이게 열을 받아서인지 아주 살짝 쭈그러들었는지 온도를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분명 190도에 맞춰 반죽을 넣었는데도 온도가 계속 올라가 진짜 눈깜짝할 사이에 도너츠의 색이 엄청 진해졌다. 만들어놓고 나니 군대 시절 단골 부식이었던 샤니 코코넛 도너츠와 색이 똑같아 이왕 이렇게 된 거 코코넛을 버무려 군시절의 추억에 젖어볼까 했지만 떨어졌는지 찾을 수 없어 그냥 계피 설탕으로 마무리했다. 이제 두 층이 되어버린 트라우마를 뚫고 도너츠에 재도전하려면 또 몇 년이 걸릴지..?!
# by bluexmas | 2012/11/07 15:59 | Taste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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