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khole
근 십 년에 가까운 미국 생활 끝에 남은 것이라고는 혹덩어리 같은 집 한 채와 그로 인해 얻게 된 국제적으로 하우스 푸어 놀음의 영광뿐이다. 그래도 누군가가 세들어 잘 살고 계신 덕분에 한참 별 걱정 없이 살았는데 오늘 메일이 날아들었다.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땅이 파였다고. 어느 정도 심각한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냥 흙만 덮어서는 될 문제는 아닌듯. 그쪽에서도 보수업체를 불러 일단 견적을 뽑아본단다. 여름에 피팔아 번 돈이 조금 생겨서 당분간은 생활비로 현상 유지할 만큼만 일을 하고 책 쓰는데 전념할 생각이었는데 호사마다라고 이런 상황이 또 떡허니 벌어져서 좀 황당하다. 많이 꿇어박을만큼 심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어째 잘 모르겠다. 인터넷을 좀 뒤져보니 플로리다에서는 종종 이런 구멍이 생기는데 집이 홀랑 가라앉은 경우도 있단다. 차라리 홀랑 다 가라앉아서 앞으로 걱정 안하고 살면 그게 더 나으려나??
요즘이 그 동네 날씨가 가장 좋을텐데 비보가 날아들어 자꾸 생각나게 만드니 두 배로 심난하구나. 그 시절의 기억 따위 별로 떠올리고 살고 싶지 않은데. 이룬게 없다면 지나간 시간은 떠올릴 필요가 없다. 그래봐야 속만 상하니까. 기억을 더듬으면 분명 마음 한 구석 어딘가에 저 구멍처럼 가라앉은 지점이 있다. 나는 그것의 존재를 부정하면서 살고 싶다.
# by bluexmas | 2012/10/12 00:40 | Life | 트랙백 | 덧글(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