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리단길] 포르케타- 소금과 돼지고기에 관한 이해 부족

1. 주문을 하려고 계산대에 섰는데 “담백하게 구웠다”라는 소개글을 보고 그냥 나갈까도 생각했다. 담백한 고기? 개인적으로는 oxymoron(아, 그 토마토 원래 끓는 물에 데쳐서 껍질 벗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적어도 파인 다이닝을 추구한다면요)이라고 생각한다. 담백한게 뭐 그리 좋은지 모르겠지만, 진짜 담백한 걸 먹고 싶다면 고기 말고 다른 걸 먹어야 하는 거 아닐까? 나는 담백한 고기 같은 건 먹고 싶지 않다.

2. 담백함을 추구한다고 해서 안 느끼했던 것도 아니다. 애초에 고기에 소금의 흔적이 없었으므로 느끼할 수 밖에 없었다. ‘느끼함의 진짜 이유는 소금, 설탕, 산의 인색한 사용 때문이다’라는 요지의 글을 썼는데, 공교롭게도 사진의 고기가 그랬다. 손님 사이를 오가며 음식에 대한 반응을 묻는 주인에게 ‘싱겁지 않느냐’라고 묻자 ‘소스랑 함께 먹으면 괜찮다’라는 요지의 대답을 했다. 하지만 사진의 고기는 간의 문제를 논하기 이전에, 재료 자체의 맛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소금을 쓰지 않았다.  재료 자체의 맛이 어우러지도록 만드는 소금과 간을 맞추는 소금은 좀 다르다. 껍데기쪽으로 소금간을 했다는데, 이런 고기를 덩어리로 구우려면 웬만한 소금간 정도로는 고기의 맛이 나지 않는다. 사람들의 생각만큼 돼지고기는 기름지지 않다. 몰려 있는 비계야 기름질지 몰라도, 정육부분은 퍽퍽하고 별 맛이 없다. 이런 고기에 맛을 최대한 불어넣거나 이끌어내려면 염지가 최선인데, 만드는 사람이 그런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는지 모르겠다. 돼지고기에 섞인 양파도 소금이 아쉬웠다.

3. 그래도 어느 정도 크러스트가 있었는데, 군데군데 말린 바질이 떡져있어 질척했고 그 향이 독해서 거슬렸다. 예전에도 마른 바질을 지나치게 쓴 돼지고기 가공제품을 먹고 놀란 적이 있는데, 이런 레시피들의 근거가 어디인지 궁금하다.

4. 오븐에 굽는 고기는 의외로 조리과정이 번거롭지 않다.  중간에는 낮은 온도로 은근하게 굽고, 앞이나 뒤에서 250도 안팎으로 올려 껍데기를 지져주면 된다. 얼핏 지나치며 보니까 콤비 오븐을 쓰는 것 같던데, 그 정도 오븐이라면 못하는 음식이 없다. 우리 음식에 오븐을 적용할 수 있는 가능성도 무궁무진하다. 조림이며 찜 종류는 모두 가스레인지보다 오븐에 훨씬 더 효율적으로 조리할 수 있다. 다만, 구워서 손님에게 내기까지의 유지단계가 중요하다. 낮은 온도의 오븐이나 부페 램프 등으로 온도를 유지할 수는 있지만 고기가 마른다는 단점이 있다. 여기의 고기는 아무런 장치 없이 공기에 노출되어 있고, 그래서 그런지 내가 먹은 건 좀 차가운 편이었다. 샌드위치를 만들면서 토치 쓰는 걸 보았는데 그 이유가 혹 고기 온도를 올리는 것이었다면 별 효과 없었을 것이다. 아니면 순간적으로 오른 것처럼 느끼게 만드려는 의도였을까? 토치는 처음 불을 당겼을때 불완전 연소된 가스가 새어나와 냄새가 밸 수 있으므로 신경을 써야 한다.

5. 패스트푸드라고 부르는 게 좀 그렇지만, 어쨌든 고기 잘라 빵에 끼워내면 되는데, 손님이 반도 안 찬 상황에서 10~15분 기다렸다. 음식의 정체성을 생각한다면 좋은 서비스라고 할 수 없다.

6. 8,000원인데 고기의 양이 150g은 될까 생각했다. 만 원이하의 음식의 가격에 웬만해서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데, 이 경우는 좀 그랬다. 질이 떨어지지는 않지만 체면치레 이상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샐러드는 차라리 빼고 고기를 한 조각이라도 더 줬으면 좋겠다. 게다가 이 고기는 어깨나 다리로 짐작되는, 비싸다고는 할 수 없는 부위다.

7. 그래도 고기가 마르지 않았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었는데, 정육 부분의 식감을 볼 때 처음부터 끝까지 오븐에서 조리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건 그냥 짐작 내지는 추측이다.

8. 체면치레라는 측면에서 소스 또한 왜 작은 종지에 눈꼽만큼 주는지 잘 모르겠다. 고기의 간을 맞춰서 먹는데 꼭 필요하다면 차라리 짜는 병에 담아, 윗뚜껑을 덮기 전에 손님에게 세 가지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고 하고 적당량을 뿌려주는 편이 설거지며 가게 유지 관리 면에서도 훨씬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머스터드 소스를 골랐는데, 말린 바질을 생각하면 바질 소스를 안 고른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9. 굳이 점수로 표현하자면 100점 만점에 65점이다. 60점이라고 생각했지만, 다른 데서 가져온다는 빵 때문에 65점이 되었다. 음식에 점수 매기고 싶은 생각 따위는 없는데, 먹으면서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째 음식에서 의식적이든 아니든,  ‘이만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이 묻어나는 듯했다. 한쪽 벽에 붙은 캐비넷의 위에 르 코르동블루의 심볼이 붙은 칼 가방이 있던데, 이 음식과 관련이 없었으면 좋겠다. 원래 ‘탄수화물+비계가 붙은 고기’의 조합이 함께 먹으면 대부분 맛있다고 느낄 수 밖에 없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 그 근처에 있는 어떤 커피숍이 인테리어 그대로 옷가게로 바뀐 걸 보고 만감이 교차했다. 카페라는 게, 커피라는 게, 그리고 음식이라는 게 그렇다.

 by bluexmas | 2012/09/11 18:35 | Taste | 트랙백 | 핑백(1) | 덧글(4)

 Linked at The Note of Thir.. at 2013/02/28 10:45

… 포르케타라는 이름의 맛없는 고기 샌드위치를 먹은 기억이 있다. 나중에 트위터로, 캐나다 토론토에 이와 거의 흡사한 가게가 있다는 이야기를 사진과 함께 들었다. 모든걸 삽으로 퍼와도 정작 가장 중요한 음식은 맛없어지 … more

 Commented by 애쉬 at 2012/09/11 18:42 

소금이 여기저기 돌 맞고 다니고 욕 듣고 왕따 당해서 참….

잘하는 것도 많은 아인데

없으면 안될 앤데 왜 이렇게 사랑을 못받고 사는 요즘인지

 Commented by bluexmas at 2012/09/14 01:27

네 소금이 무슨 죄겠습니까…

 Commented by 푸른별출장자 at 2012/09/11 18:49 

서양 음식은 짜다고 소금들 안뿌리고 밍밍하게 먹으면서

캡싸이신과 소금 MSG로 범벅을 한 찌개와 전골 국 이런 것에 열광하는 것은 뭐라고 할지…

 Commented by bluexmas at 2012/09/14 01:27

그건 뭐 당연히 모순이지요.